칼럼

1993년과 2008년

서의동 2008. 3. 25. 18:57
 “○○○차기대통령은 최근의 경기침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경제활성화에 국정운영의 최우선 순위를 두겠다고 밝혔다. ○차기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6~7%의 경제성장률이 유지돼야 할 것이라고 경제활성화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요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15년전인 1993년 1월27일 어느 신문의 머리기사다. 김영삼 대통령이 권력을 잡던 1992년말~1993년초는 성장률이 곤두박질치면서 경제위기론이 확산되던 때였다. 수출이 석달째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고용불안과 물가상승이 겹치면서 ‘한때 아시아의 네마리용 가운데 으뜸이었던 우리가 이제 미꾸라지로 전락했다’(1992년 11월16일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통령후보의 연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위기감에 휩싸였다.

 ‘80년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 늪’ ‘새정부에 경제현안 산더미’ 등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연일 신문을 장식했다. 당시 노태우 정부의 긴축정책을 옹호하거나 “새 정부가 단기적인 경기부양조치보다는 인기가 없더라도 경제체질을 튼튼히 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민간연구소들의 주장도 간간이 실렸지만 새 정부는 ‘경기부양을 통한 경제활성화’로 대세를 몰고 갔다. 

 이런 과정을 거쳐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신경제 100일 계획’이 탄생했다. 신문들은 ‘단기 경기부양 중점’ ‘부양 세부정책 찾기 고심’ ‘수출 제조업 주도 단기부양 전략’ 등 제목으로 이 계획의 주요목표가 경기부양에 있음을 가리켰다. 금리인하로 시중에 돈을 푸는 한편 전기·수도요금 동결 등 물가대책도 내놔 ‘성장’과 ‘안정’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것임을 천명했다. 경기가 바닥을 치고 회복국면을 지나고 있는 만큼 섣부른 부양책을 쓰지 않겠다던 전 정부의 경기인식과는 정반대였다. 우려하는 여론도 없지 않았지만 사상 첫 ‘문민정부’라는 무게감도 작용했던지 본격비판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신경제 100일 계획이 절반쯤 지나면서 여론은 싸늘해졌다. ‘피부에 와닿는 경기회복은 없는 대신 섣부른 경기부양책이 물가불안을 야기한다’는 논조의 기사가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고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전국경제인연합회 등도 조심스럽게 비판 목소리를 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던 ‘신경제 100일 계획’은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정책으로 귀결됐다. 이후에도 ‘신경제 5개년 계획’이 잇따라 발표되고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되는 등 경제개혁은 중단없이 지속됐지만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구호형’ 정책이 시행착오를 연발하면서 정권 말년 외환위기를 몰고 왔다.

 최근의 경제상황은 15년전 이맘때와 얼핏 닮은 데가 있다. 대외여건의 불안으로 경제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6% 경제성장을 이룩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는 점이 우선 그렇다. 

 하지만 그 15년동안 우리 사회는 무척 많이 변했다. 외환위기와 카드사태라는 값비싼 수업료를 내며 무리한 경기부양이 몰고올 폐해를 체험했고, 이 때문에 당시 거리낌없이 쓰이던 ‘경기부양’이란 용어가 ‘금기어’가 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4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3분의 2는 4~5%성장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지금 가장 시급한 사안은 물가를 잡는 것”이라며 ‘안정론’에 무게를 실은 것도 이런 변화를 수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돈의 위기  (0) 2008.05.17
중앙은행論  (0) 2008.04.17
서비스 리스크  (0) 2008.02.28
경제를 북돋우는 정치  (0) 2007.12.11
경제를 북돋우는 정치  (0) 2007.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