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통상교섭 조직도 바꿔라

서의동 2009. 1. 8. 18:59
2007년 3월2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는 협상단, 취재기자, 경찰병력 등 수백명이 뒤엉킨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끝장협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한·미 양측 협상단은 고도의 전략과 기싸움으로 8일간 밤잠을 설쳐가며 ‘한뼘의 땅’이라도 더 뺏으려고 백병전을 벌였다. 

미국 행정부가 의회에 협상결과를 제출해야 하는 마감시한을 불과 20분 남겨둔 4월2일 낮 12시40분쯤 대단원의 막이 내려졌고 한국은 자동차·쇠고기 등 핵심쟁점에서 예상보다 ‘선전’하며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김종훈 수석대표를 비롯한 협상단에 찬사가 쏟아졌다. 협상취재를 맡았던 기자는 통상 최강국인 미국을 맞아 어려운 여건속에서 지혜를 짜내 최선을 다한 협상단의 분투에 감동하기도 했고 ‘총성없는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통상교섭 현장의 치열함도 체감했다. 

그러나 ‘성공한 드라마’이긴 하지만 엄청난 저항을 불렀던 협상출범 과정, 통상교섭본부의 독주체제를 둘러싼 잡음 등 갖가지 문제가 불거진 것도 분명하다. 왜 이리 잡음이 컸을까. 협상에 직접 참여한 공무원들이나 통상 전문가들 중 상당수는 대외통상교섭을 총괄하는 조직이 외교부에 속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국내 본부와 해외공관 근무를 번갈아 하는 인사시스템에 따라 얼마 안가 자리를 뜨는 외교관들이 협상의 키를 쥐고 있는 데서 문제들이 파생된다는 것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FTA 협상 이후 주유엔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협상 당시 분과장들과 협상팀원들 중 상당수가 외국공관으로 떠났다. ‘386 출신’ 통상전문가로 협상과정에서 주목을 받았던 한 분과장은 최근 통상교섭본부를 그만두고 대학강단으로 옮아갔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웬디 커틀러 당시 한·미 FTA 수석대표는 재협상까지 마무리된 뒤에도 한국 쇠고기 시장개방을 위해 지난해 10월 한국을 찾았다. 그의 소속은 예나 지금이나 무역대표부(USTR)다. 협상이 끝나면 훌쩍 떠나는 통상교섭본부 공무원들과 달리 ‘협상이후’까지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협상에 참여했던 경제부처의 한 국장급 관료는 “미국 협상단은 USTR에서 수십년간 협상만 전담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노하우와 경험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며 “경험과 역량이 쌓일 때쯤 되면 외국공관으로 훌쩍 나가버리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때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통상교섭본부 공무원들은 협상을 이른 시일내 타결짓는 것이 업무실적에 직결되는 만큼 개별 분야에 대한 고려가 일반 부처보다 희박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협상이 결렬되거나 교착되면 무능한 것으로 비쳐지는 조직 분위기 때문에 조기타결을 지상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해당조직에 끝까지 남아서 ‘협상이후’상황까지 챙겨야 하는 개별부처 공무원들과는 체질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주도의 정부 조직개편 작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통상교섭 조직에 대해서는 별다른 검증과정 없이 현상유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 분위기다.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 중동국가 등과의 FTA가 줄줄이 예정돼 있는 이 시점에서 통상교섭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짚어봐야 한다. 미국의 리처드 크라우더 USTR농업담당대사는 40년이상 농업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온 67세의 백전노장이었다. 농업만 30년, 지적재산권 분야만 20여년씩 협상을 한 ‘협상귀신’들이 우리 정부에도 등장해야 한다. 대외개방을 통해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우리 처지에선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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