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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社史도 모범인 안철수연구소

서의동 2010. 9. 13. 15:59
이 책은 사사(社史)다. 사사는 회사의 허물은 감추고 장점은 부각시키는 경우가 흔하다. 안철수연구소 사람들이 지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안철수연구소>(김영사)라고 해서 허물을 100% 가감 없이 내보였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 책의 서평을 쓰기로 한 것은 안철수연구소의 이름값 때문이다. 

이 책은 창업자인 안철수가 1988년 의대 박사과정 시절 컴퓨터 모니터에서 ‘브레인’이라는 이름의 바이러스를 발견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보통 책자의 3분의 2쯤 되는 플로피 디스켓이 통용되던 시절부터 안철수는 바이러스와 씨름해 왔다. 박사과정과 군복무를 하는 동안 7년간 잠을 쪼개가며 백신 개발에 매달려온 안철수는 진로를 결정할 시점에서 망설임 없이 의대 교수직을 버리고, 백신 프로그램 개발자로의 험난한 여정에 뛰어든다. 

이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안철수보다 안철수연구소 임직원들이 겪었던 고락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회사의 15년간을 회고한다. 100명이 넘는 직원들이 등장해 장면 장면들을 회고하는 방송 다큐멘터리식 구성도 특이하다. ‘1인 리더십’이 아닌 전체 직원의 협력이 회사를 이끌어왔음을 강조하려는 뜻 같다. 

회사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을 일치시키려는 안철수연구소의 경영철학은 직원 눈높이에 맞춘 창의적인 조직운영과 만나 시너지를 발휘한다. 
대기업을 다니다 안철수연구소에 들어온 곽영욱은 “온갖 비밀과 비방이 난무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겉과 속이 똑같은 기업은 처음”이라고 회고했는데, 그리 자화자찬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안철수연구소는 기업윤리에 충실하면서도 이윤을 창출할 수 있음을 입증해온 국내의 몇 안되는 기업이다. 
경영학의 대가 필립 코틀러가 새로운 기업모델로 제시한 ‘마켓 3.0’의 정신에 꼭 들어맞는다. 

안철수연구소는 15년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눈앞의 이익보다 신뢰를 택했다. 벤처 거품이 부글대던 2000년 수많은 투자 제안에도 주식시장 상장을 하지 않았다. 눈앞의 이익보다 직원과 투자자들의 손실 위험을 먼저 생각해 내린 판단이다. 
일본 진출 초창기인 2000년 9월에는 V3Pro 2002 일어판 패키지에서 글자가 깨지는 오류가 발견되자 패치를 사용하는 임시변통 대신 2억5000만원어치의 제품을 모두 태워버리는 정공법을 택했다. 

안철수연구소의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협력사들이 전문영역에서 응용제품을 만들도록 하는 수평적 네트워크는 요즘 정부가 강조하는 ‘상생협력’의 모델로 검토할 가치가 있다.

창업자 안철수는 창립 10주년인 2005년 3월 자신의 청춘을 바쳐 일군 회사를 떠난다. 그는 퇴임사에서 “한국에서도 정직하게 사업을 하더라도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이뤄졌다. 안철수는 떠났지만 안철수연구소는 정보보안을 넘어 스마트폰, 소셜 네트워크 등 주요 정보기술(IT) 영역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기업의 ‘사사’를 판매용으로, 그것도 개정판까지 내가며 출간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안철수연구소 말고도 국내 기업들의 자부심 가득한 사사가 서점 한구석을 채울 날이 올 수 있을까. 
기업 경영자는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돈은 잘 벌지만, 존경은 못 받는 기업들이 수두룩한 우리 현실을 바꾸려면 우선 눈높이가 높아져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