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거 본거

요즘 경제와 책들

서의동 2010. 9. 23. 16:34

※기획회의 280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년이 지난 지금 세계경제는 외견상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2009년 초 동유럽 재정불안, 하반기 두바이의 신용경색, 올해 초의 남유럽 재정위기 등 간헐적인 여진(餘震)들이 있었지만 세계 각국의 대규모 경기부양 조치에 힘입어 경제는 ‘불안한 회복’ 단계에 놓여있다.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2008년 9월15일)을 계기로 금융위기가 본격화할 당시엔 1930년대 대공황의 재판이 되리라는 예측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대공황 이후 세계가 블록경제로 분열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몰고온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각국이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경기부양에 나서면서 ‘급한 불’은 꺼진 셈이다.
2년이 지난 지금 세계 경제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우선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여전히 경기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신흥국들은 견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브릭스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고,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슈퍼파워로 전면에 등장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경제가 여전히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달러를 기축으로 하는 세계 통화체제에 대한 변화 요구도 거세다. 중국의 위안화가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결제수단으로 등장하면서 달러-위안-유로화의 통화 블록화 양상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어떨까. 

최근 뉴스를 보면 ‘IMF, 한국 재정여력 선진국 최고 수준’ ‘G20중 가장 빠른 경기회복세’ 등의 찬사들이 잇따른다. 실제로 수출, 외환보유액, 성장률 등 거시지표만을 놓고 보면 나무랄 데 없는 성적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금융위기 이후 한국 정부의 위기대책이 대체로 적절했다는 평가도 많다. 이를 두고 정부-재벌-금융의 ‘삼각동맹’ 체제가 위기를 맞아 다시 신속하게 작동했기 때문(김상조 한성대 교수)이라는 분석도 있다. 

금융위기 직후 달러를 빌리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미국과 달러 스와프 체결에 나선 것은 자원이 없는 만큼 외환보유액의 확보가 지상과제라는 점에서 적절했다. 금리를 대폭 내려 신용경색을 막고 중소기업들에 유동성을 대폭 공급한 것도 긴급처방으로서 불가피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경제의 회복세가 두드러지면서 누리엘 루비니 미 뉴욕대 교수는 “브릭스 국가군(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에 한국이 포함돼 BRICK가 될 수 있다”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정교한 첨단기술로 무장한 경제대국으로 혁신적이며 역동적이고 숙련된 노동력을 보유한 국가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사진출처 : http://cafe.daum.net/doolleey


하지만 지표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제의 실제 모습은 칭찬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금융위기 이후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청년실업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들어 대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현상은 더 강화됐다. 정부가 뒤늦게 ‘상생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상기후 탓이 크지만 고공행진하는 체감물가는 서민들의 삶을 더 옭죄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최근 변화의 제스처를 보이곤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기업, 그것도 일부 수출대기업에 의존하는 한국형 경제시스템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미 효용을 상실한
건설·투자에 대한 집착도 여전하다. 고용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난 4대강 사업에 20조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붓고 있고, 이미 대세하락기에 접어든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총부채상환비율(DTI)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는 한편 그나마 평가를 받아온 ‘보금자리 주택’사업도 건설업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축소했다. SSM으로 골목상권까지 침범하는 대기업들의 탐욕도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정부의 ‘친서민·친중소기업’ 행보는 ‘악어의 눈물’이 아닌가 의문스럽다. 대기업이 잘되면 그 떡고물이 아래로 흘러 서민과 중소기업도 혜택을 본다는 ‘트리클 다운’논리는 효과없음이 이미 검증됐는데도 이 낡은 철학은 여전히 정부당국자들의 정책운용의 주요한 틀로 작동하고 있다.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한국경제와 세계경제에 대한 일반의 관심과 우려는 금융위기 직후에 비해서는 약해졌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세계체제의 핵심인 미국 경제가 ‘더블딥’이 우려되는 상황이고 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도 부진에서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몰핀’주사를 투여해 당장엔 움직이고 있지만 언제 다시 기력을 잃고 쓰러질 지 모르는 형국이다.
1929년 발생한 세계 대공황이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 10년 가량 지속됐다는 점으로 미뤄보면 2010년의 세계경제는 1930년대 전반부의 어딘가와 유사한 국면일지도 모른다. 

세계경제가 위기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인지, 방법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하는 우려들은 그런 차원에서 사그라들지 않는다. 서민들의 체감경기와 괴리가 커지는 한국경제의 현재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우리 경제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지도 다시 검토해 봐야할 시점이 됐다. 경제서적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대체로 이런 흐름일 것이다.

잠시 몇년전으로 돌아가보자. 2000년대 중반 금융권에서 가장 많이 쓰인 용어중 하나는 ‘레버리지’(leverage)였다. 

차입이라는 우리말을 놔두고 굳이 영어로 ‘포장’을 한 것은 “빚을 내 재테크를 해야 하는”는 사람들의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한 것은 아닐까.
어느 곳에 어떤 집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신분과 계급이 구별되는, 부동산을 통한 계급의 구분짓기가 급속하게 이뤄지던 한국사회에서 집에 대한 욕망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자신의 소득이나 자산이 얼마가 됐건 많은 은행에서 많은 돈을 끌어내 요지에 집을 사들인 이들은 승자가 됐고, 이런 승자들의 무용담이 회식자리 곳곳에서 회자됐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화제는 언제나 재테크로 흘러갔던 시절이었다.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면서, 자신의 소득보다 훨씬 더 많은 불로소득을 보장해주는 부동산에 대한 흔들림없는 믿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야성적 충동’에 휩싸이게 했다. 

과도한 레버리지가 몰고온 결과는 참담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사실 누구도 그들에게 서슴없이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하우스푸어>(김재영 지음, 더팩트>는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의 담당 PD인 저자가 과도한 레버리지의 후유증으로 신음하는 ‘부동산 피해자’들을 취재한 책이다.
은마아파트 4424가구의 등기부등본을 전수조사하는, 탄탄한 취재결과를 토대로 재테크에 휩쓸린 중산층들이 ‘하우스푸어’로 전락하는 상황을 밀도있게 그려냈다. 



책에 등장하는 어떤 이는 2006년 중반 가격이 7억원에 육박한 분당 신도시 33평 아파트를 4억이 넘는 빚을 내 샀다가 5억원대로 급락한 이후에도 매수세가 끊겨 팔지 못하고 이자만 물게 됐다. 현 시점에서 자산가치 하락으로 2억원 이상, 은행과 이자비용과 부동산 관련 세금납부로 1억원 이상을 손해봤다. 

이런 하우스푸어는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욕망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하우스푸어>는 이런 현상이 빈약한 한국의 사회보장 때문이라는 지적을 빼놓지 않는다.
한국 사회처럼 노후, 자녀교육 문제 등을 개인이 모두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서서 그나마 부동산이 버팀목이 되는 현실에서 이들의 행위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종신고용 체제가 무너지면서 언제 구조조정의 칼날이 자신을 향할지 모르는 직장인들을 재테크로 달려가게 만든 것은 단순히 부동산 시장의 문제가 아닌 사회전체의 책임일 수 있다.

하우스 푸어 현상은 좀더 따져들어가면 한국의 기형적 권력체제와도 관련이 있다. 5년 단임제하에서 집권한 대통령들은 재임중 성장률과 주가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호흡이 긴 정책들을 추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런 이유로 경기도 살리고 성장률도 높이고 관련기업들의 주가도 띄울 수 있는 부동산 규제완화에 대한 유혹은 커지게 마련이다.

은행도 공범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이 현금보유량을 크게 늘리면서 은행들은 돈을 빌려줄 곳이 없었다. 돈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에 대한 대출은 인색했다. 어떤 기업이 돈을 빌려줘도 될 장래성있는 기업인지를 가늠해낼 실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담보가 확실한 주택대출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냈고, 은행들은 너나 할 것없이 부동산담보대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사회전체의 탐욕을 키웠다. 많은 이들이 유명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아파트 광고속에서 자신들의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하며 은행이 쳐둔 ‘덫’에 걸려들었다.
<하우스푸어>는 대세하락기에 접어든 지금도 잔존하면서 현실을 호도하고 있는 ‘부동산 불패신화’의 허구성을 깨닫도록 한다.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김광수경제연구소가 펴낸 <경제특강>(더난)은 2008년말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 한국의 경제가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향후진로를 전망한 책이다. 각국 및 권역경제에 관해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한 분석 방법론에 근거해 구조적 분석을 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실 한국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누구나 세계경제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생활은 세계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부동산 못지 않게 열풍이 일었던 주식형펀드. 이 펀드에 가입하는 순간 우리는 고도화된 금융세계화의 회로에 접속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경기 안산에 사는 동물병원 수의사가 가입한 해외펀드는 미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멕시코계 미국인의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기반으로 만든 금융파생상품(부채담보부증권)을 기초로 만들어졌다는 식이다.
간단하게는 해외여행이나 출장 때 방문국의 환율움직임을 지켜본 뒤 가장 유리한 시점을 택하는 행위도 해당된다. <경제특강>이 내리는 한국경제에 대한 전망은 긍정적이지 않다. 한계상황에 이른 부동산, 청년인턴이나 희망근로 등 단기미봉책에 불과한 정부의 일자리 대책, 늘어가는 저소득층 등 환부 곳곳에 칼을 들이댄다. 올초 출간됐지만 경제특강에서 제시하는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세계 경제, 특히 금융위기와 관련해서 루비니 교수의 <위기 경제학>(청림)과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이번엔 다르다>(다른세상)는 금융위기가 2008년은 물론 그 이전에도 꾸준히 되풀이돼온 인류의 유산임을 확인시키는 책들이다.
책들은 금융위기가 인간의 탐욕과 망각으로 빚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에 “이번엔 다르다”는 착각은 새로운 위기를 격발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로고프 교수는 <이번엔 다르다>에서 2008년 금융위기 전에 제기됐던 우려들이 어떤 논리에 의해 묻혀버렸는지를 제시한다.

①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신뢰할 만하고 혁신적인 금융시스템과 가장 큰 자본시장을 갖고 있다
②개발도상국들은 자신의 자금을 안전하게 투자할 장소를 찾는다
③글로벌 금융통합으로 자본시장은 더욱 발전했고 각국 정부가 더 많은 부채를 조달할 수 있게 됐다
④새로운 금융신상품들은 새로운 채무자들이 모기지(주택대출) 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 몇가지 논리의 밑바탕에는 과학적 예측보다는 미신에 가까운 믿음들이 자리한다. 이는 얼마안가 신기루였음이 드러났고, 맹신의 대가는 엄청났다.

한국경제의 현상인 ‘하우스푸어’나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은 다를게 없다. 과다한 차입에 의해 쌓아올린 경제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단순한 명제다. 하지만 금융전문가나 고위관료들조차 “지금의 호황은 과거와 다른 요인들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강변하고, 자기논리의 포로가 되는 일들이 되풀이됐다.
로고프 교수는 얼마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융위기가 수년내 재발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그 이유가 걸작이다.
“사람들의 기억속에 최근의 위기가 너무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세계 금융위기는 몇가지 중대한 물음들을 던졌다. ‘시장이냐, 정부냐’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위험성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큰 정부가 나쁘고 ‘작은 정부’가 좋다는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맹목적인 규제완화로 이어지면서 위기를 잉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맹목적 시장주의 뿐 아니라 반대로 정부의 영역의 적정선은 어디까지인지도 고민해야 할 주제다.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도경제학의 대가 엘리너 오스트롬의 <공유의 비극을 넘어>(랜덤하우스코리아)는 이런 물음과 관련해 시사점을 제공한다. 

오스트롬은 경제학 이론중의 하나인 ‘공유의 비극’이 갖는 오류를 실증적인 연구사례를 들어 밝혀낸다. ‘공유의 비극’론은 지하수, 산림, 연안어장 등 공유자원이 사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에 의해 고갈돼 버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사유화되거나 정부에 의해 규제돼야 한다는 논리이다. 



기후변화 문제가 인류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히 고민해 봐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 오스트롬은 공유자원을 전통적으로 관리해온 집단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자치적 방식에 의해 풀어나갔는지를 추적했다. 그 결과 외재적인 권위나 제도없이도 참여자들 자체적인 방식으로 훌륭하게 해법을 모색해왔음을 확인한다.
자치와 자율이라는 원리를 활용해 경제나 환경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발상은 형식적 지방자치단계에 머물러 있는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심각한 고용불안의 현실  

경제위기의 고통은 늘 어렵고 가난한 이들에게 전가되게 마련이다.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의 당면현안은 역시 실업문제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후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 무산계급)나 프리터 등 불안정한 고용이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돼 왔다. 경쟁에서 밀려난 회사들에서 대량해고가 발생하고, 경기가 회복되면 그 빈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진다.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해야 할 청년세대들의 고용불안 현상은 어느 나라에서나 엇비슷한 풍경이다. 한편으로 첨단기술에 의한 자동화로 대규모 제조업 공장에서 사람이 불필요하게 된다.

제러미 리프킨이 1990년대에 <노동의 종말>을 통해 고용없는 경제의 미래상을 진단한 바 있지만 금융위기 이후 고용문제는 더욱 심각성을 띠고 있다. 하지만 제러미 리프킨은 물론 어떤 학자들도 이 문제에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고용문제는 기계에 의한 인간노동의 대체라는 세계 보편적 현상과, 국내 공장의 해외이전이라는 일국적 차원이 겹쳐 나타나는 중층적인 난제다.

이와 관련해 일본 민주당 정부가 고용문제에 대한 인식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고용정책연구회는 지난 7월 ‘성장이 고용의 토대’가 아닌 ‘고용이 성장의 토대’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고용대책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에는 1990년대 일본경제의 버블이 붕괴된 이후 비정규직이 증가하면서 내수부족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경제의 활력을 빼앗았다는 반성이 바탕에 깔려 있다.
보고서가 해법으로 제시한 개념은 ‘새로운 공공성’이다. 향후 일본경제의 새로운 주력은 제조·건설업이 아닌 사회단체와 사회적 기업이 돼야 하며 이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복지서비스에 종사하는 이들의 임금수준을 높여 이 부문에 실력있는 인재들이 투입되면 그만큼 복지서비스의 질도 좋아지고 좋은 일자리도 늘어나는 ‘윈윈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도로를 깔아 예산을 낭비하는 ‘구태’ 대신 사람에게 투자하는 새로운 길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과잉노동, 불안정 노동이 경제의 활력을 빼앗는 마이너스 섬 게임의 논리에서 탈피하려는 일본의 실험이 성공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한국의 고용현실은 일본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사회 도처에서 ‘불안노동’의 거대한 행렬들을 목격할 수 있다.
산업현장에서는 쓰다 버려지는 ‘일회용’ 파견노동자들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중요한 문제인데도 이를 다룬 대중서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기자들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인 <4천원 인생> 정도가 눈에 띄지만 이 역시 현상의 단편만을 다뤘을 뿐이다.
노동연구원 등의 전문가들이 정책제언을 위해 내놓는 보고서들은 지나치게 전문적이다. 올해는 물론이고 내년, 그 이후에도 일자리의 문제는 경제의 핵심쟁점이 될 것이다. 일자리 문제에 대해 보다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읽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책들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