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듣기만 해도 우울해지는 한미 FTA

서의동 2006. 2. 6. 19:28

한미FTA가 '급발진'했다. 정부는 출범이니 협상개시니 하는 용어로 설명하지만 내가 보기엔 불량자동차들이 갑자기 출발하는 식의 '급발진'에 가깝다. 스크린쿼터의 갑작스런 축소라든지, 미국의 일정(TPA 시한)에 맞춰 쫓기듯 협상을 선언한 것도 석연치 않다. 원래 급히 먹는 떡은 체할 수 있는데 국민여론 수렴절차라고 해서 선언당일날 번개불에 콩 구어 먹듯 치르려다 농민단체들의 제동으로 중단된 것은 앞으로의 험난한 일정을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정부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는 국책연구소들마저 우려하고 있듯이 한미FTA는 우리사회의 최대현안인 사회양극화를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 단적으로 말매 몇몇 잘나가는 업종들만이 수출로 이익을 볼 뿐, 농업을 비롯한 취약산업은 쇠퇴하면서 산업간 양극화가 심화될 우려가 짙다. 가장 큰 현안인 일자리 문제가 FTA로 좋아질 것 같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국책연구소들은 장기적 전망으로 일자리가 10만4000개가 늘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지만 앞서 멕시코의 사례로 미뤄볼 때 고용의 질은 더욱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

자기땅을 가진 농민들이 소작농이나 농업노동자들로 밀려나는 주변화 현상도 우려된다. 수출이 고용확대로 연결되지 않는 한국경제의 이상체질이 FTA로 더욱 심화될 수 있다. 1994년 체결된 미국, 캐나다, 멕시코간의 NAFTA이후 멕시코의 고용사정이 크게 악화됐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미국식의 노사관행을 강요할 가능성도 커진다. FTA의 체결은 광범위한 의미에서 경제통합이고 이를 위해서는 각기 가져왔던 경제적 규범과 질서를 수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식 스탠다드의 강요는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까. 가장 단적인 것은 '해고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영화에서 보듯 사장이 사장실로 불러 '당신 낼부터 안나와도 된다'는 식의 해고관행이 횡행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FTA는 사회적 약자는 더욱 더 빈곤화, 주변화되고 몇몇 잘나가는 기업들의 배를 불려주는 형태로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미국의 태도도 영 석연치 않다. FTA를 자기네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한국을 찍어놓고, 우리와 FTA를 하려면 선결조건이 필요하다며 미국산쇠고기 수입재개 문제,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 자동차 자동차배기가스 저감장치의무 완화 등 4가지 조건을 협상도 시작하기전에 우리정부로부터 양보를 받아갔다. 미국의 입장은 쉽게 말해 FTA협상을 하다 중간에 중단되더라도 별로 아쉬울게 없다. 이미 협상도 하기전 곶감 빼먹듯 실익을 챙겨놨기 때문이다.

협상은 출범했지만 아직도 시간은 없지 않다. 국가적 백년대계나 다름없는 한미FTA를 위해정치권, 학계, 노동계, 농업계 등 각 분야의 대표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거국적 논의를 해야 하고 그 과정이 여과없이 시민들에게 전달돼야 한다. 자신의 운명이 바뀌는 대사에 자신들이 참여할 수 없다면 그 또한 불행이자, 훗날 사회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제가 그냥 개인적으로 적어놓은 글입니다.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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