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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가방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유쾌한 데몬스트레이션

서의동 2010. 10. 22. 23:42

  <방가방가>의 주연 김인권을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처음 봤다. 공부도 그렇고 배경도 변변치 않은 1년 꿇은 복학생 역으로 나왔는데 수업중에 장군의 아들(유신시대에서 장군의 아들을 건드리다니 약먹었다)인 동급생의 뒤통수를 볼펜으로 찍는 장면은 정말 리얼했다. 

 이후 별로 영화볼 기회가 없었지만 이 '볼펜 마빡 찍기' 신은 워낙 강렬해서 잘 잊혀지지 않는다.

   김인권은 청년실업자가 외국인노동자로 위장취업하면서 겪는 소동을 그린 <방가방가>에서도 기대이상의 연기력을 보여줬다. 
 
웰메이드라고 하기엔 2% 부족한 영화지만 그의 연기는 군더더기 없이 리얼했다. 무거운 주제인데도 어깨에 힘을 빼고 만들었다는 점은 점수를 줄 만 하다. 외국인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든다면 코미디 영화가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물론 거슬리는 장면들도 꽤 있고 리얼리티도 떨어진다. 외국인노동자 회장에 즉석으로 선출된 방태식(방가방가)이 데모행렬을 노래방으로 이끌어간다든지, 주말잔업을 누가 할지를 정하기 위해 한국인 VS 외국인노동자 족구대회를 하는 장면을 꼽을 수 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매달 10만원씩 뗀 돈을 돌려 달라며 공장안에서 농성데모를 벌이자 근로감독관이 찾아와 공장장을 추궁하는 장면도 현실감이 떨어진다.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외국인노래자랑에 참가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영화는 코미디 터치를 유지하면서도 외국인 노동자, 청년실업 문제를 관객들이 곱씹도록 하는데 성공한다. 재미와 의미의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할까. 

 강제추방 위기에 몰린 동료 외국인노동자들과 마지막으로 노래자랑에 참가한 방태식이 김정태에게 신호를 보내 "단속떴다"며 관객석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이 와중에 동료들을 도망치도록 하는 마지막 신은 구성상의 한계를 드러내는 장면이지만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았다.(현실이라면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의 손아귀에 잡혀 전원 강제추방되는 잔혹한 결말이었을 것이지만)  
 
 하지만 아무리 발라내도 가시가 씹히는 청어처럼 <방가방가>는 보기 불편했다. 
 '고용난민 시대' 취재를 위해 읽었던 <4천원 인생>의 장면들도 떠올랐다. 마석의 가구공장에 취업한 한 기자가 외국인노동자들과 어울려 지내며 들었던 그들의 고단한 삶의 풍경들. 

 이미 100만명이 넘지만 아시아계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비가시적' 존재다.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들은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부르기 편하게 '마이클', '장미'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일본의 활동가 아마미아 카린은 사회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는 프리터들을 위해 사운드 데모와 노이즈 액션을 한다. <방가방가>도 존재감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유쾌한 데몬스트레이션'이다. "나 여기 이렇게 살아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