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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킥'의 그 체육코치는 어디로 갔을까?

서의동 2010. 11. 22. 15:13

잠시 드라마 이야기.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정준혁이 다니던 고교에 체육코치가 있다. 그는 준혁에게 뭘 갖다주러 학교에 갔던 세경이의 놀라운 운동신경에 감탄해 소프트볼 선수로 키우려 한다. 세경은 소프트볼 체육특기생으로 잠시 학교에 다니다 그만둔다. 그 코치의 계약기간이 끝나 소프트볼팀이 해산했기 때문이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박태환이 금메달 3개를 따며 선전하는 모습을 한숨을 참으며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새벽에 출근하자마자 운동장 쓰레기부터 줍는 ‘체육코치’들이다. 한 고교 코치는 쓰레기를 보고 지나치다 교장에게 ‘너 뭐하는 XX야’라고 욕을 먹었다. 

청운의 꿈을 꾸고 운동을 시작했지만 ‘용’이 되지 못한 수많은 학교의 체육코치들 중 상당수가 1년 계약직으로 중고교생들을 가르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감독이 될 수 없다. 교사자격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마주치는 교사들, 특히 교장에게 잘못 보이면 이 생활도 접어야 한다. 내가 열광했던 '지붕뚫고 하이킥'의 그 체육코치(사실은 코치인지 교사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도 비정규직이다. (세경을 주전으로 소프트볼팀을 이끌어보려던 그의 희망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고, 고교생이 되는 꿈에 부풀던 세경도 좌절했다)  

시중은행의 ‘빠른 창구’ 전담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금영미씨(가명)는 간단한 입출금과 동전교환만 하기로 한 원래 약속과 달리 점점 더 전문업무를 맡게 됐다. 심지어 판매실적에 따라 인센티브가 부여되는 펀드판매까지 맡게 됐다. 하지만 금씨 실적의 인센티브는 옆 창구 정규직원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비정규직에는 인센티브를 줄 수 없다는 회사규정 때문이다. 

시간당 8000원을 받는 금씨에게 돌아간 인센티브는 ‘제로’다. 

벼랑에 몰려있는 한국사회 워킹푸어의 현실과 문제점을 담아낸 <한국의 워킹푸어>(책보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프레시안>의 기자들이 사회 밑바닥에 있는 그들을 만나 취재한 연재 기획시리즈를 엮은 책이다. 고되고 신산(辛酸)한 삶이 가슴을 후벼판다. 하루하루 억울하고 답답해 미칠 것 같지만, ‘그래도 버티고 살아줘서 고마운’ 일상들이기도 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시간강사로 불리는 비정규직 교수, 금융회사 비정규직, 영화스태프, 드라마 보조작가, 비정규직 학교 코치, 이주노동자, 고졸 노동자 등이다.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지하철 청소는 화장실이나 역사로 끝나지 않는다. 지하철 운행이 끝난 뒤 야간 선로청소. 철로와 철로사이의 콘크리트 바닥에 세제를 뿌리고 물로 닦아내야 한다. 철로는 고압선이 든 호스를 이용해 기름때를 제거한다. 이 작업을 고령의 여성노동자 3명이 한다. 박연자씨(61)는 이 일을 하다 감전사고를 당했다. 

워킹푸어들이 한국사회에서 급증하는 것은 불안정 노동의 확산과 낮은 사회복지 지출 두 가지 때문이다. 이래서 경제는 호황인데 서민들의 삶은 더 힘들어진다. 

기업형슈퍼(SSM)가 골목상권의 서민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고, 납성분이 듬뿍 든 숄더크림을 반도체에 바르는 일을 하다 백혈병에 걸렸지만 보건당국은 산업재해 판정을 미루는 부조리가 바로잡히지 않는 현실 속에서 워킹푸어들에게 ‘공정사회’ 구호를 믿으라고 할 수 있을까.   
 
200만명이 넘는 한국의 워킹푸어들이 지하 688의 땅속에 갇혔던 33명의 칠레 광부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칠레 광부들에겐 세상의 관심과 구출될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한국의 워킹푸어는 절망을 안고 산다. 그들은 사회적 관심에서도 비껴나 있는 '비가시적 존재'다. 하지만 세상은 이들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발품을 팔며 찾아낸 진실의 기록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판타지는 있지만 제대로 된 르포르타주는 등장하지 않는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진자, 강자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주류언론에게 이 일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한국의 워킹푸어>는 빛이 난다. 취재기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