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영방송은 요즘 상업광고보다 공익광고들을 더 많이 내보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자막이 흐른 뒤 ‘쓰지 않는 전기제품의 콘센트를 빼고, 불필요한 전화메일을 삼가자’는 자막들이 화면을 채운다. 일본의 인기그룹 ‘스마프’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일본의 힘을 믿습니다’는 격려의 말을 던진다. 인사를 잘하자는 애니메이션 공익광고도 있다. 광고 끝에는 어김없이 ‘모두가 하면 큰 힘이 된다’는 자막이 등장한다.
도호쿠 대지진 이후 한동안 모든 광고시간이 이런 공익광고로 채워졌다. 2주일 넘도록 공익광고를 듣다 보니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생긴다. 물을 끓이려고 켜둔 주방의 전등에도 신경이 쓰인다. 생각해보면 대지진과 쓰나미로 수만명이 숨진 대참사 앞에서 이 정도쯤은 살아남은 이들이 해야 할 최저선일 것이다.
하지만 재난 이후 일본의 풍경을 좀 더 살펴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장면들이 꽤 있다. 대피소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 다른 지역으로 떠나려 해도 나중에 따돌림을 당할까 우려하는 난민들의 사연이 최근 신문에 등장했다. 마을의 자치회에는 “지금 떠나는 놈들은 다음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겠다”며 벼르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대피소가 비좁고 불편해서 일부라도 떠나는 것이 남는 이들에게도 분명 좋을 텐데….
결코 잘했다 보기 어려운 정부에 대해서도 의외다 싶을 정도로 비판을 삼간다. 체르노빌에 버금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대응은 낙제점이다. 정보를 제때 내놓지 않아 공포를 키우고, 작업 근로자들이 방사선 피폭을 당하도록 방치했다.
2주일이 넘도록 물자 공급이 안돼 피해지역 주민들이 사경을 헤매는 모습을 보면 외국인인 기자도 화가 치밀 때가 있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기묘할 정도로 조용하다. 20% 언저리에 머물던 간 나오토 총리의 지지율은 지진 이후 30% 중반으로 뛰었다. 진보진영에 속하는 일본 내 한 사회운동가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위기가 닥치자 정부에 의지하고 지원하려는 생각들이 강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비판을 하면) ‘비국민’ 취급을 받을 수 있다.”
일본은 잦은 재난과 위기를 단결로 극복해왔다. 하지만 뭉쳐서 모두가 불편해진 적도 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1941년) 70년을 맞아 NHK가 얼마 전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당시 정치가와 관료들이 국민을 얼마나 무책임하게 전쟁으로 몰아갔는지가 확인된다. 국민이 ‘메이와쿠(迷惑·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가 될까, ‘비국민’ 취급을 받을까 두려워 비판을 삼가면서 제동장치 없이 군국주의로 내달린 일본은 전 인류에게 엄청난 ‘메이와쿠’를 미쳤다.
패전 이후 일본은 관료들의 주도로 재건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불황을 겪으며 일본엔 빈곤이 확대됐고 국가부채만 잔뜩 늘어났다. 관료들이 ‘폴로 미(Follow me·나를 따르라)’를 외치고 국민이 따르는 시스템은 폐기 시점을 맞았다. 하지만 이런 정부에 국민은 침묵을 지켜왔다. ‘메이와쿠’를 싫어하는 국민성이 정부관료의 원전 부실관리를 방치해 전 세계에 ‘메이와쿠’를 끼쳤다고 하면 논리비약일까.
대재난 이후 일본인들의 놀랍도록 침착하고 질서정연함은 세계의 칭송을 받을 만했다. 하지만 정당한 주장과 비판을 삼가는 모습마저 ‘미덕’이라고 해야 할지 의문이다.
도호쿠 대지진 이후 한동안 모든 광고시간이 이런 공익광고로 채워졌다. 2주일 넘도록 공익광고를 듣다 보니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생긴다. 물을 끓이려고 켜둔 주방의 전등에도 신경이 쓰인다. 생각해보면 대지진과 쓰나미로 수만명이 숨진 대참사 앞에서 이 정도쯤은 살아남은 이들이 해야 할 최저선일 것이다.
일본 이와테현 야마다초의 한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생선국을 배급받고 있다. (출처: 경향신문 DB)
하지만 재난 이후 일본의 풍경을 좀 더 살펴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장면들이 꽤 있다. 대피소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 다른 지역으로 떠나려 해도 나중에 따돌림을 당할까 우려하는 난민들의 사연이 최근 신문에 등장했다. 마을의 자치회에는 “지금 떠나는 놈들은 다음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겠다”며 벼르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대피소가 비좁고 불편해서 일부라도 떠나는 것이 남는 이들에게도 분명 좋을 텐데….
결코 잘했다 보기 어려운 정부에 대해서도 의외다 싶을 정도로 비판을 삼간다. 체르노빌에 버금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대응은 낙제점이다. 정보를 제때 내놓지 않아 공포를 키우고, 작업 근로자들이 방사선 피폭을 당하도록 방치했다.
2주일이 넘도록 물자 공급이 안돼 피해지역 주민들이 사경을 헤매는 모습을 보면 외국인인 기자도 화가 치밀 때가 있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기묘할 정도로 조용하다. 20% 언저리에 머물던 간 나오토 총리의 지지율은 지진 이후 30% 중반으로 뛰었다. 진보진영에 속하는 일본 내 한 사회운동가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위기가 닥치자 정부에 의지하고 지원하려는 생각들이 강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비판을 하면) ‘비국민’ 취급을 받을 수 있다.”
일본은 잦은 재난과 위기를 단결로 극복해왔다. 하지만 뭉쳐서 모두가 불편해진 적도 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1941년) 70년을 맞아 NHK가 얼마 전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당시 정치가와 관료들이 국민을 얼마나 무책임하게 전쟁으로 몰아갔는지가 확인된다. 국민이 ‘메이와쿠(迷惑·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가 될까, ‘비국민’ 취급을 받을까 두려워 비판을 삼가면서 제동장치 없이 군국주의로 내달린 일본은 전 인류에게 엄청난 ‘메이와쿠’를 미쳤다.
패전 이후 일본은 관료들의 주도로 재건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불황을 겪으며 일본엔 빈곤이 확대됐고 국가부채만 잔뜩 늘어났다. 관료들이 ‘폴로 미(Follow me·나를 따르라)’를 외치고 국민이 따르는 시스템은 폐기 시점을 맞았다. 하지만 이런 정부에 국민은 침묵을 지켜왔다. ‘메이와쿠’를 싫어하는 국민성이 정부관료의 원전 부실관리를 방치해 전 세계에 ‘메이와쿠’를 끼쳤다고 하면 논리비약일까.
대재난 이후 일본인들의 놀랍도록 침착하고 질서정연함은 세계의 칭송을 받을 만했다. 하지만 정당한 주장과 비판을 삼가는 모습마저 ‘미덕’이라고 해야 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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