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일본 안전신화의 붕괴

서의동 2011. 3. 13. 11:45
‘도호쿠(동북) 대지진으로 일본의 원전안전 신화가 붕괴됐다.’
일본에서 1990년대 이후 크고 작은 원전사고가 되풀이됐지만 정부는 원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도호쿠 강진으로 원전폭발과 방사능 누출이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일본의 원전안전 신화는 붕괴했다. 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경험을 한 일본에서 원전사고에 대한 공포감은 상상을 넘는다.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의 사전대책 미흡과 늑장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후쿠시마 원전의 붕괴된 모습(경향신문DB)


원전안전 시스템의 한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노심용해 및 방사능 누출사고의 근본원인은 핵심 비상장치인 ‘긴급노심냉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던 데 있다. 지진 등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원전의 작동중단뿐 아니라 발열 중인 핵연료의 노심을 냉각시키는 조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진에 따른 정전으로 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핵연료가 고온에 녹아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고가 초래된 것이다. 노심냉각시스템이 어떤 상황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지 여부는 원전 안전성의 핵심이다. 일본 정부는 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원전 내진기준의 강화와 내진보강 작업을 벌여왔다. 하지만 원자로 본체의 안전에만 신경썼을 뿐 정전 가능성에는 대비하지 못한 것이 불상사를 불러왔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지진대국’ 일본에서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은 위험하다는 문제가 본격 제기되고 있다. 원전이 원자로는 물론 전력계통 등 부속시설이 워낙 복잡해 피해 예측이 어려운 데다 지진의 상존가능성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현재 전력의 약 30%를 원자력발전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향후 14기 이상의 원전을 신·증설해 발전비율을 40%까지 높일 계획이다. 일본은 현재 18개 발전소에서 54기의 원자로를 가동중이다.   
아사히신문은 “지진국 일본에서 어느 정도까지 원전을 증설할 것인지, 안전성을 담보할 방법이 있는지 등을 겸허하게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12일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원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아질 것”이라며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늑장대응 불신 초래  
정부의 늑장대처도 도마에 올랐다. 요미우리신문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발생 5시간 후에야 이뤄지면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불만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폭발사고는 12일 오후 3시30분쯤이었지만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이 발표한 것은 오후 5시45분이었다. 하지만 에다노 장관은 폭발 원인과 원자로의 파손 여부에 대해 ‘전문가가 분석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정부의 상세한 설명이 나온 것은 폭발 5시간 만인 오후 8시30분이 넘어서였다.

주민대피 지시는 물론 정보전달 면에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방사능 누출 우려가 일자 지난 11일에 반경 3㎞ 이내로 했던 대피명령은 12일 반경 10㎞로 확대됐고, 다시 20㎞로 범위를 넓혔다. 정부 관계자는 “총리실이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지 않는 바람에 문제가 악화했다”고 질타했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 지역의 방사선량이 법적 한계치를 뛰어넘었다면서도 인체에 어느 정도 위험한지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