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독도영유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교과서 검정결과를 내놓은 것은 궁극적으로는 독도를 ‘분쟁 지역화’하겠다는 노림수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도영유권 주장을 통해 한국과의 갈등을 초래해 국제적인 분쟁지역화를 꾀한 뒤 국제사법재판소(ICJ) 등에서 시비를 가리자는 속내다. 물론 한국의 실효적 지배상태를 일거에 바꾸기 어려운 만큼 분쟁화를 통해 ‘현상변경’을 꾀하자는 게 1차 목표이다.
일본 정부의 강경한 태도의 배경에는 지난해 중국·러시아와의 영토분쟁을 겪으면서 더이상 밀리지 않겠다는 정치적 판단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중·일 선박충돌 사건과 11일 러시아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쿠릴열도 방문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한 반작용으로 영토문제에 대한 입장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도 교과서’는 이런 외적 조건보다는 일본 정부가 장기간에 걸쳐 기획해온 ‘국가주의적 교육개편’의 결과물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좌표격인 교육기본법은 2006년 자민당 아베 신조 총리 당시 개정됐다. 개정법은 교육목표를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고 그것을 길러온 나라와 향토를 사랑함과 동시에 다른 나라를 존중하는 태도를 기름”이라고 규정하는 등 국가주의 색채를 짙게 띠고 있다. 이후 독도에 대한 영토교육을 강화하라는 내용의 학습지도요령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가 착착 개정됐다.
자민당에 이어 2009년 8월 집권한 민주당 정권은 역사문제 등에 대해서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영토문제에서 만큼은 자민당에 못지 않은 강경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문부과학성은 지난해 3월 초등학교 5학년 사회교과서 검정과정에서 지도상의 독도와 울릉도 사이에 국경선을 넣도록 수정을 요구했다. 지난해 작성된 방위백서도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인 북방영토와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영토문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며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주장을 되풀이해왔다.
일각에선 도호쿠 대지진 사태 이후 경황이 없는 상황을 감안하면 일본 정부의 의중이 주도면밀하게 관철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부행정 매뉴얼’에 의해 정해진 일정을 정치적 검토없이 이행했다는 시각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 검정이 1년전 고시된 일정이고 민간인 교과서검정심의회가 결정하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여지가 없다는 해명을 우리 정부에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일본정부의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 2007년 2차 세계대전 말기 오키나와 주민 집단자결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내용을 문부과학성이 삭제토록 했다가 오키나와 주민들이 강력 반발하자 되살린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사례는 검정결과가 일본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우익들의 교과서 공격 약사
일본 교과서 왜곡을 추동해온 세력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을 비롯한 우익이다. 도쿄대 후지오카 노부카쓰 교수와 니시오 간지 전기통신대 교수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새역모는 1990년대 후반부터 조선병합, 중국침략 등에 대한 반성을 ‘자학사관(자기학대적 역사관)’이라며 ‘교과서 공격’에 나섰다. 지난 50년대와 80년대도 두차례 교과서 공격이 있었지만 패전 50주년을 전후로 본격적으로 세를 불리고 있다.
새역모의 1차 목표는 중학교 교과서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표현의 삭제였다. 90년대 초반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배상요구 소송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것을 계기로 ‘위안부’ 문제를 기술한 교과서가 늘어나던 시점이었다. 우익의 집요한 공격으로 97년 이후 교과서의 ‘위안부’에 관한 기술이 점차 후퇴하더니 결국 사라졌다. 새역모는 한발 더 나아가 태평양전쟁을 ‘아시아 해방전쟁’으로 서술하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2001년 검정을 신청했다. 2001년 당시 채택률은 0.039%에 불과하던 ‘새로운 역사교과서’는 2009년 1.7%으로 높아졌다. 이런 움직임은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 내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일본 우익들이 집요하게 교과서 공격을 벌이는 것은 일본의 ‘보통국가화’라는 자신들의 미래전략과 관련이 크다. 보통국가는 다른 나라의 분쟁에 무력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군대를 보유한 국가로 아시아 패권을 쥐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우익들은 이를 위해 전쟁포기를 규정한 헌법 9조의 개정을 촉구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의 과거 침략역사를 서술한 역사교과서는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우익 교과서는 일본의 적극적인 국제공헌을 주장하면서 미래세대에 일본의 근·현대사를 긍정적으로 볼 것을 촉구한다. 우익의 논리는 보수 자민당 정권은 물론 문부과학성을 비롯한 관료집단에 침투했고 결국 2006년 국가주의적 색채를 띤 교육기본법 개정으로 성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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