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평가를 최악의 수준인 7등급으로 올린 것은 이번 사태가 그만큼 심각한 위기상황임을 뒤늦게 시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일본 정부가 그동안 사태의 은폐·축소에 급급해왔음을 백일하에 드러낸 것이다.
일본 정부는 사고 직후인 지난달 12일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에 한정해 “외부에 커다란 위험이 없다”며 4등급 사고로 평가했다가 같은 달 18일 1~3호기를 5등급으로 재평가했다. 일본 정부의 등급규정이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일본 정부는 “큰 문제 없다”는 식의 태도로 일관해 왔다.
하지만 일본 당국이 그동안 유출된 것으로 발표한 37만~63만 테라베크렐(TBq)의 방사성물질 대부분이 3·11 대지진 당일부터 같은 달 15일까지 며칠새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의 설명에 따르면 방사성물질의 대부분은 지난달 15일 2호기 폭발 당시 빠져나갔다. 일본 정부가 이미 3월중에 7등급 사고로 상향조정했어야 함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방사성물질 유출량 기준으로 7등급은 수만TBq이다. 문부과학성이 관할하는 ‘긴급시신속방사능영향예측 시스템’(SPEEDI)이 지난달 23일 방사성물질 유출량이 12만TBq에 달한다는 데이터를 내놓은 바 있지만 일본 정부는 5등급을 고수했다. SPEEDI 예측결과는 이후 공개되지 않았다.
결국 이번 등급 격상은 사태 자체가 악화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일본 정부가 초기부터 사고를 축소 평가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일본 정부의 이런 태도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200㎞ 남짓 떨어진 도쿄 등 수도권에서 초래될 지 모르는 패닉사태와 일본의 대외 신인도 추락 등을 막아보자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경제산업성 산하 원자력안전보안원은 12일에도 “(7등급 격상은) 방사성물질의 방출량을 평가한 결과에 지나지 않고, 피난 행동에 변경을 줄 만한 것은 아니다”라며 “원자로 자체가 폭발해 수십 명이 숨진 (체르노빌) 사고와는 전혀 다르다”고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하지만 원자로 1기가 폭발했던 체르노빌과 달리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4개의 원자로에서 동시다발적인 사고가 진행중인 만큼 방사성물질의 유출량이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총방출량이 체르노빌을 넘어설 수 있다”(도쿄전력 관계자)는 우려가 내부에서 나올 정도여서 당국의 사태인식이 여전히 안이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급상향을 계기로 ‘인접국에 큰 영향은 없다’는 일본 정부의 말에 의존해온 우리 정부의 방사능 오염대책도 전면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일본 기상청이 지난 5일 공개한 것처럼 한반도는 이미 방사성물질 확산 영향권에 포함돼 있는 만큼 일본 정부로부터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받아 오염 방지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물질 방출사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12일부터 이틀간 개최되는 한·일 전문가 협의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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