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일본정부 두달만에 '멜트다운' 인정

서의동 2011. 5. 14. 17:36
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원전사고에서 가장 심각한 상태인 ‘멜트다운(melt down·노심용해)’이 진행됐음을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뒤늦게 인정했다. 연료봉이 대부분 녹아내려 압력용기 바닥에 쌓이면서 구멍이 뚫렸고, 격납용기까지 손상된 상황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대책통합본부 사무국장인 호소노 고시 총리 보좌관은 13일 기자회견에서 “후쿠시마 원전 1호기 수위계의 데이터가 정확하다면 원자로의 상태가 멜트다운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며 “원자로 바닥에 거의 대부분의 연료가 녹아 모여있는 것은 생각 외의 일로 인식이 안이했음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믿을만한 데이터에 기반해 1~4호기에서 어느 정도 연료가 녹아있는지 검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도쿄전력은 지난 12일 핵연료봉이 압력용기 바닥에 쌓이면서 몇개의 작은 구멍이 뚫렸고, 압력용기를 둘러싸고 있는 격납용기도 일부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마쓰모토 준이치 도쿄전력 본부장 대리는 “원자로(압력용기) 바닥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구멍이 뚫렸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 “일부 연료가 격납용기에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며 멜트다운 단계임을 인정했다. 
 
1호기가 멜트다운 상태일 것이라는 관측은 진작부터 제기돼 왔다. 다나카 순이치 전 원자력위원장 대리는 지난 4월1일 기자회견에서 1호기 연료가 전부 녹고있으며 이로 인해 압력용기가 파손되는 멜트다운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연료 펠릿(핵 연료심)의 일부가 손상됐지만 멜트다운 단계에는 이르지 않았고 1호기는 비교적 상태가 양호하다고 강조해왔다. 원자로 압력용기 수위계의 수치를 근거로 냉각수 수위는 4m짜리 연료봉이 2.4m 정도 물에 잠긴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도쿄전력은 1호기에 대해 원자로를 대량의 물로 채우는 ‘수관(水棺)’작업을 벌여왔다. 하지만 수위계의 수치는 지진 직후부터 거의 변화가 없어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됐고, 결국 최근 작업 근로자가 원전건물에 진입해 수위계를 고치자 냉각수 수위가 4분의 1에 못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도쿄전력은 정확한 상황파악 없이 수관작업을 진행해 원전 안정화는커녕 대량의 고농도 오염수를 만들어낸 셈이 됐다. 도쿄신문은 “수관을 위해 1만t에 가까운 물을 집어넣었으나 이 가운데 6000t가량이 핵연료와 섞여 고농도 오염수로 변해 원전 바깥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2, 3호기도 수위계도 신뢰성이 높지 않다”는 도쿄전력 관계자의 말을 들어 2, 3호기도 압력용기 바닥에 구멍이 뚫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가이에다 반리 경제산업상은 이날 멜트다운 문제와 관련해 “사태 수습의 일정 변경이 필요한 큰 요인”이라며 지난달 17일 제시된 사고수습 로드맵(일정표)을 고칠 필요가 있음을 시사했다. 
 
이런 경로를 통해 대량으로 생겨난 고농도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면서 후쿠시마 근해의 오염도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 조사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에서 50㎞가량 떨어진 바다에서 지난 3일과 5일 채취한 톳 등 해조류를 조사한 결과 1㎏당 1만2000~1만3000㏃(베크렐), 원전에서 30~65㎞ 떨어진 어항 주변에 자생하는 다시마와 김 등에서는 1㎏당 1만4000~2만3000㏃의 방사성물질이 각각 검출됐다. 그린피스는 방사성물질이 요오드인지 세슘인지를 특정하지 않았으나 일본 식품위생법상 허용한도(방사성 요오드 1㎏당 2000㏃ 세슘 500㏃)를 크게 웃돌았다.
 
한편 도쿄전력은 원전 3호기에서 수소폭발이 발생하기 전 원전건물 내 방사선량이 지나치게 높은 상황을 확인했으나 이를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도쿄전력 내부문서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3호기의 원자로 건물에서 수소폭발이 발생하기 하루 전인 3월13일 오후 1시17분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이중문 안쪽의 방사선량이 시간당 300m㏜(밀리시버트)로 근로자 피폭한도(시간당 250m㏜)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이를 공표하지 않았고, 원전 근로자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결국 3월14일 오전 11시 건물 내에서 수소폭발이 발생하면서 직원 7명이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