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만수 장관의 선택

서의동 2008. 6. 17. 19:30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인적쇄신 대상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쇄신대상에서 운좋게 빠진다 하더라도 자청해서 물러나야 한다. 위기에 빠진 국정을 수습하기 위해 강 장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강만수 장관은 촛불시위 사태의 중대한 원인을 제공했다. 촛불시위는 쇠고기 졸속협상으로 촉발됐지만 요동치는 물가 또한 촛불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고유가 상황에 대응한 정책을 내놓지도 못했고 서민생활은 아랑곳없는 고환율 정책으로 물가를 솟구치게 한 책임은 어물쩍 넘어갈 수 없다. 유가와 곡물가격 급등이 아무리 대외변수라 하더라도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물가잡기에 나섰어야 할 경제팀이 거꾸로 원화가치를 떨어뜨려 물가충격을 키운 것은 어떤 말로도 변명이 안된다.

 취임초기부터 환율주권론을 내세운 그의 정책운용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강 장관과 최중경 제1차관은 한국은행과 마찰을 일으키면서까지 노골적으로 금리인하론을 주장했고 조그만 변수에도 민감하게 움직이는 외환시장에 여러차례 개입했다. 그 바람에 올초 1달러당 938원(1월2일)이던 환율은 1040원대를 넘나들고 있다. 환율을 끌어올려 수출을 촉진하는 총수요 관리정책을 통해 성장의 ‘파이’를 키우겠다는 단기부양책은 결과적으로 내수에 치명타를 입혔다.

 고환율로 대표되는 강 장관의 경제운용방향은 경제학계에선 ‘냉소’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한 학자는 고환율정책에 대해 “서민과 자영업자, 내수기업들로부터 세금을 거둬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격”이라고 잘라 말했다. 강 장관의 행보를 두고 숱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강 장관이 고환율 정책에 집착한 이유는 뭘까. 혹시 연말 경제성적(GDP성장률)에만 온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 아닐까. 민생이 엉망이 되더라도 수출을 늘리면 내수와 수출의 총합인 경제성장률은 상승할 것이고 성장률이 오르면 다른 건 ‘용서’가 된다는 판단을 했던 것 아닌가.

 그의 ‘개발경제’식 사고 때문에 서민경제는 치솟는 물가에 감내하기 힘든 국면을 맞이했고 그 응답은 거리의 ‘촛불’로 나타났다. ‘고환율 정책을 펼 당시엔 유가와 원자재 값이 이 정도로 치솟을 줄 몰랐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국내 경제의 사령탑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 할 변명은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강 장관의 환율을 정부가 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과 물가는 좀 올라도 된다는 안이한 판단, 대기업이 잘되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도 자연스럽게 좋아진다는 낡은 경제관이 정책오류를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이 학자는 “강 장관은 수출이 늘고 대기업이 투자만 늘리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며 “정책의 수혜대상이 특정계층이 집중돼 있다는 인상을 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쇠고기 사태 이후 경제정책이 어떻게 전개될지 구체적으로 전망하기는 이르지만 적어도 성장주의 정책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적을 것 같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2일 강 장관 주재로 열린 ‘서민과 물가안정을 위한 경제장관회의’에서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성장에서 물가관리로 선회했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하듯 새로운 경제정책을 이끌기 위해서는 수뇌가 바뀌어야 한다. 최고의 엘리트 관료들이 모인 기획재정부의 수장이 불과 몇달전 한 말을 뒤집어 가면서 자리에 연연할 경우 관료사회 전체에 부담을 준다. 강 장관은 깨끗이 물러나는 게 순리에 맞다. 

 2008-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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