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이 제안한 10%라는 숫자를 (소비세 인상의) 참고로 하겠습니다.”
일본 참의원 선거를 20여일 앞둔 지난해 6월17일 간 나오토(管直人) 총리(65)가 기자회견에서 느닷없이 소비세 인상방침을 꺼내들었다. 민주당 매니페스토(정권공약)에 없는 증세계획을 총리가 갑작스럽게 내놓자 국민은 혼란에 빠졌고, 이 여파로 집권 민주당은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며 여소야대를 허용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의 후임으로 6월8일 취임한 간 총리의 지지율은 취임 열흘만에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간 총리가 26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공식 퇴진을 표명해 집권 1년3개월만에 물러나게 됐다. 간 총리는 관료에 휘둘리지 않는 ‘정치주도’와 ‘최소불행사회의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집권했지만 리더십과 정책추진 및 위기관리 능력의 결여로 국민의 정치염증만 심화시킨 채 물러나게 됐다.
간 총리는 지난해 9월 당대표 경선에서 당내 최고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간사장(69)을 누르고 당선돼 재기하는 듯 했으나 같은 달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에서 벌어진 중국어선과의 충돌사건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또한번 민심을 잃었다. 특히 올해 3월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대응과정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일본 국민은 물론 미국 등 주변국으로부터도 불신을 샀다.
미 국무부 전 일본부장 케빈 메어는 최근 출간한 <결단 못하는 일본>에서 “일본 정부가 원전사고 초기 도쿄전력에 사고수습을 떠미는 태도가 미국 정부의 불신감을 초래했다”고 전했다. 비상사태 하에서도 관료를 배제한 채 총리실이 전면에 나서는 ‘정치주도’ 방식이 관료의 복지부동을 초래해 사태수습을 지연시켰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간 총리는 지난 6월초 야당의 내각불신임결의안 제출로 최대 위기에 몰렸으나 퇴진의사를 표명해 가까스로 벗어났다. 이후 올해 2차 추경예산안, 특별공채법안, 전력회사가 태양광 등 자연에너지 발전을 매입하는 재생에너지특별법안 등의 국회통과가 그나마 실적으로 남게 됐다.
요미우리신문은 “사전조정없이 돌연 새로운 정책을 꺼내는 간 총리의 정치스타일이 반발을 초래하면서 주요 정책들이 용두사미로 그치는 일이 되풀이됐다”고 평가했다. 증세의 경우 세금인상의 불가피성에 대해 먼저 국민에게 이해를 구했어야 하는 데도 돌연 증세를 기정사실화한 뒤 세율부터 제시하는 방식이 불신을 샀다.
다만, 전력회사와 정치권의 유착이 만연한 정치환경을 감안할 때 하마오카(浜岡) 원전 운전정지 등 ‘탈원전’ 정책을 사전조정없이 감행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당내 정적인 오자와의 흔들기도 정치력을 약화시킨 원인으로 꼽힌다.
외교면에서도 간 총리의 실적은 ‘낙제점’에 가까웠다. 주일미군 후텐마 기지이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미루면서 미국과의 동맹관계 복원도 달성하지 못했다. 중국, 러시아와는 영토갈등으로 관계가 악화됐다. 한국과는 독도문제로 잡음이 일긴 했지만 지난해 8월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 담화에서 식민지지배를 사죄하고 강탈한 도서 1205점을 한국에 반환하는 도서반환협정을 성립시킨 것은 평가받을 만 하다.
간 총리는 오는 29일 열리는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새 대표가 결정되면 퇴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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