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탈원전' 외쳤다가 수난당하는 일본 연예인들

서의동 2011. 9. 2. 21:06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 목소리를 내온 일본 연예인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드라마 배역이 취소되는가 하면 원전비판 노래는 전철에 CD발매 광고조차 낼 수 없다. 거대 스폰서인 원전관련 기업들의 눈치를 보느라 방송·연예계가 연예인들에 대해 ‘검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 야마모토 다로(山本太郞·36)는 지난 4월9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말없이 테러국가를 거드는 역할은 그만두겠다”며 원전반대를 표명하는 글을 올렸다가 지난 7월로 예정됐던 TV드라마 출연이 취소됐다. 그와 친한 프로듀서가 “트위터 게시글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야마모토 소속 연예기획사에 항의전화가 쇄도해 회사도 그만둬야 했다.  


야마모토는 16세에 연예계에 입문해 20년간 90여편의 TV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고, 영화 <역도산> <GO>로 한국에도 얼굴을 알린 연기파 배우다. 전력회사가 주요 스폰서인 방송·연예계 현실을 잘 알기 때문에 비판을 자제해 왔으나 정부가 어린이의 연간 방사능 피폭 허용기준을 20밀리시버트(mSv)로 지나치게 높게 설정한 소식을 접한 뒤 “더이상 나를 속이고 살지 않겠다”며 결심을 굳혔다.

그는 1일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순간 인간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면서 눈물이 솟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후쿠시마(福島)현 어린이들의 피난지원에 나서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이며 원전반대 집회 등에도 참가하고 있다.  
 
일본의 인디계열 아이돌 그룹인 ‘제복향상위원회’는 지난 6월 탈원전을 주제로 한 ‘탈, 탈, 탈원전의 노래’를 발표했으나 라디오에 단 두 차례 방송된 뒤로는 전파를 타지 못하고 있다. TV방송은 물론 방송국 주최의 이벤트 등 각종 공연참가도 취소 또는 거부되고 있다. 심지어 팬미팅에서조차 “노래는 부르지 말라“는 스폰서 등의 압력으로 팬들과 악수만 해야 했다. CD발매를 앞두고 JR과 지하철에 내려던 광고도 거절당했고, 음반매장들은 매장에 CD홍보 포스터조차 붙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 
 
반골기질이 강한 프로듀서 다카하시 히로유키(高橋廣行)가 여중고생들로 결성한 이 그룹은 ‘아이돌이지만 사회적 메시지가 있는 노래를 부르자’는 취지에서 디젤자동차의 배기가스 배출을 비판하는 노래 등을 불렀고,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인지도를 높여왔다. 탈원전 노래에는 ‘위험한 사고가 벌어졌는데도 (정부는) 당장에 건강에 문제없다고 거짓말 한다’ ‘(원전이 안전하다는) 원전추진파 당신이 가서 살아봐’ ‘세슘, 멜트다운, 마이크로시버트’ 등 직설적인 가사가 담겨져 있긴 하지만 이 정도로 따돌림당할 줄은 멤버들도 예상치 못했다. 전 멤버인 다카하시 미카(橋本美香·31)는 “전례없는 압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막강한 스폰서인 전력회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연예인들의 ‘탈원전’ 움직임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는 일본의 현실은 사회현안에 대해 소신발언을 하는 연예인인 소셜테이너가 등장하고 있는 한국과 사정이 다르다. 야마모토는 고쿄신문에 “방송에서 전력회사의 광고비중이 얼마나 큰지는 TV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며 “방송계와 연예인들이 광고주 험담을 하지 않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