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상징천황’이라는 애매모호한 지위에 있었던 일왕의 존재감이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부각되고 있다. 일본언론들은 대재난 이후에도 정치권이 여전히 국민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왕의 행보가 상대적으로 주목됐다고 평가했다.
아키히토 일왕
‘돈만 축내는’ 천덕꾸러기 자위대도 대지진 이후 복구작업에서의 활약상이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재평가되고 있다. 보수세력은 일왕와 자위대의 주가상승을 은근히 반기고 있다.
지난 27일 발매된 주간 <아에라> 최신호는 “고통에 겨워하는 피해주민들의 손을 잡아주며 위로하는 태도에서 ‘상징’이던 천황(일왕)이 비로소 실체를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지 닷새 뒤인 3월16일 대국민 화상 메시지를 발표했다. 그는 5분56초에 걸친 화상 메시지를 통해 “피해자들이 앞으로 겪을 고난을 우리 모두 조금이라도 나눠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재민을 위로했다.
이어 3월30일 도쿄도 무도관에 설치된 피난소를 시작으로 도호쿠 지방 12개 자치단체를 돌며 피해주민을 위로하는 순행을 벌였다. 피해주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비속에서 우산도 받치지 않은 채 잔해로 뒤덮인 피해마을을 향해 고개숙여 묵도하는 일왕 부부의 모습은 일본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전대미문의 사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정쟁에 매달리는 정부·정치권과 대조를 이루면서 한층 돋보였다.
동일본대지진 현장에서 자위대원들이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
자위대도 대지진과 원전사고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일본 음악 정보회사인 오리콘에 따르면 한 민간 회사가 일본 방위성의 협력을 받아 만든 ‘DVD 항공자위대의 힘-모든 일은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라는 제목의 DVD가 발매 일주일만인 28일 오리콘차트 문화·교양 부문 주간 DVD 순위에서 1위에 올랐다. 자위대원의 일상 임무와 훈련장면, 대지진 피해지 활동모습을 담은 평범한 내용임에도 이례적인 히트를 기록한 것이다.
평소 생업에 종사하다가 유사시 소집되는 ‘예비자위관보’의 인기도 높아졌다. 예비자위관보 모집에서 가나가와현의 경우 67명 모집에 270명이 몰려 4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요미우리신문이 이달 3∼4일 면접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지진 이후 활동상을 평가할 만한 조직을 복수로 고르라’는 질문에 자위대를 꼽은 이들이 82%로 가장 많았다.
자위대는 최근 세계 3위 수준의 방위비 지원을 받으면서 “하는 일 없이 돈만 축낸다”는 눈총을 받아왔다.
보수세력들은 이런 분위기를 반기고 있다. 보수유력지 요미우리신문은 “자위대에는 ‘3·11 이후’가 ‘전후(戰後)’를 대체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도코로 이사오(所功) 교토산업대 교수는 보수월간지 ‘윌(Will)’ 기고문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전국 순례를 상기시키면서 “천황이야말로 일본인들이 마음을 둘 존재”라고 주장했다.
도코로 이사오(所功) 교토산업대 교수는 보수월간지 ‘윌(Will)’ 기고문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전국 순례를 상기시키면서 “천황이야말로 일본인들이 마음을 둘 존재”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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