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끝내 옷벗은 일본 개혁파 관료

서의동 2011. 9. 28. 17:27
“관료개혁은 모든 개혁의 밑바탕이다. 개혁 없이 증세를 하게 되면 일본은 (재정위기로 경제가 파탄난) 그리스처럼 될 수도 있다.”
 

경향신문DB

 

일본에서 ‘개혁파 관료’의 상징이던 고가 시게아키(古賀茂明·56·사진) 전 경제산업성 심의관이 26일 퇴직하면서 기자들에게 남긴 말이다. 관료개혁의 포부가 무산되고 일본 관청가인 가스미가세키(霞が關)의 ‘공적’으로 따돌림당한 끝에 공직을 떠나게 됐지만 소신은 버리지 않은 것이다. 
 
고가 전 심의관은 자민당의 후쿠다 야쓰오(福田康夫) 내각 때인 2008년 관료개혁 의지를 가진 와타나베 요시미(渡邊喜美) 내각특명담당대신에 의해 공무원제도개혁추진본부 사무국 심의관에 임명됐다. 그는 연공서열 인사 폐지, 낙하산 인사 규제강화, 사무차관제도 폐지 등의 개혁안을 만드는 데 몰두했다.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한 뒤 1980년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에 입성한 고가는 통산성 내에서도 핵심보직인 경제산업정책과장을 거치는 등 손꼽히는 엘리트 관료였다. 하지만 재무성과의 영역다툼에 반발해 사무차관과 언쟁을 벌인 것이 화근이 돼 2005년부터 중소기업청을 비롯한 외청으로 떠도는 신세가 됐다. 그는 이 과정에서 패전 이후 일본의 부활을 선도했으나 어느 새 사회의 걸림돌이 돼버린 관료사회의 실상을 목도하고 관료개혁을 소명으로 삼게 됐다.
 
‘정치주도’의 기치를 내건 민주당은 2009년 6월 집권 이후 공무원제도개혁추진본부를 만들었고 고가는 핵심포스트인 보좌관에 기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재무성의 격렬한 저항 탓에 없던 일로 됐다. 집권경험이 없는 민주당으로서는 예산편성 등 현안에서 재무성의 협력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후 공무원제도개혁추진본부 간부 전원이 2009년말 해임되면서 고가가 꿈꾸던 관료개혁은 수포로 돌아갔다.
 
관료사회의 ‘공적’이 된 고가는 경제산업성에서 관방쓰키라는 대기직에서 1년9개월을 머물다 결국 사표를 냈다. 그동안 매스컴을 통해 관료사회의 문제점과 민주당 정권의 어정쩡한 공무원개혁 태도를 비판해왔다. 특히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출간한 <일본중추의 붕괴> <관료의 책임> 등 관료사회의 문제를 다룬 저서는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도쿄전력을 비판하면서는 가와사키(川岐)시 자택현관에 포유류 사체가 놓이는가 하면 동네에서 그의 집만 정전되는 등 일련의 사태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고가의 퇴장은 어느 새 흔적조자 희미해진 민주당 개혁을 상징한다. 그의 공무원 개혁작업을 저지하는 데 앞장선 후루카와 모토히사(古川元久) 당시 관방부대신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에서 국가전략 및 경제재정담당상으로 중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