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의 덫에 걸려든 한국과 일본

서의동 2011. 11. 10. 22:32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놓고 여야간에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고 있다. 현해탄 건너 일본에서도 사실상 미·일 FTA인 환태평양경제협정(TPP)협상에 참가할 지를 놓고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 본질적으로 이 두 협정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세계경제전략이 낳은 쌍둥이나 다름없다. 
 
 


TPP는 당초 브루나이, 싱가폴, 칠레, 뉴질랜드 등 4개국간의 소규모 자유무역협정에서 출발했지만 미국이 뛰어들면서 판이 커졌다. 금융위기 이후 고실업에 신음해온 미국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아시아에서 수출을 늘려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협상에 적극 나섰다. 미국을 제외한 8개 협상 참가국들이 소규모 경제여서 별 실익이 없다고 보고 일본의 참가를 독려한다. 
 
한때 한·미 FTA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양보를 추가로 얻어내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상품분야에서 한국의 대폭적인 양보를 얻어내면서 FTA를 타결짓는다. “FTA로 미국은 한국에 농산물을 많이 수출할 수 있고, 한국 서비스 시장도 확대될 것이다. 현대와 기아처럼 한국에서도 미국차들이 많이 다니기를 바란다. 이번 협정으로 미국의 수출이 110억 달러 늘어나고, 7만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다.” 지난달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나온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과 FTA를 추진한 미국의 속내를 드러낸다. 
 
내년 대통령 재선에 도전하는 오바마는 12~13일 고향 하와이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한국의 FTA 비준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의 TPP참가 선언으로 장식하고 싶어한다. 요컨대 재선가도의 스타트라인에 선 오바마에게 한·일 양국이 꽃다발을 증정하는 행사가 이번 하와이 APEC의 본질이다.
 
미국은 요즘 보호무역주의의 본색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수출은 늘리되 수입은 억제하려 하고, 기축통화의 체면도 팽개친 채 달러를 풀어 약세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TPP도 ‘윈·윈’은 커녕 미국만 일방적으로 챙기는 ‘경제블록’이 될 우려가 높다. 미국의 속내를 꿰뚫어보는 일본 전문가들은 “미국이 TPP에서 겨냥하는 것은 자유무역이 아니라 보호무역”이라고 단언한다.
 
반면 일본은 참가하더라도 실익이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자칫 중국시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일본은 최대 무역상대국인 중국에서 독일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만약 중국이 TPP에 대항해 유럽과 FTA를 맺는다면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 선박충돌로 중국의 힘을 절감한 일본은 TPP 참가로 미국의 환심을 사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다.
 
이러다 보니 TPP를 둘러싼 일본 내 분위기도 FTA를 추진하던 한국과 닮아있다. 정부와 재계는 ‘제3의 개국’이라며 참가하지 않으면 낙오된다는 심리를 부추긴다. ‘개방 아니면 북한식으로 살자는 거냐’고 몰아붙이던 국내 추진파의 논리와 흡사하다. 확연한 이득이 거의 없거나 모호하고, 관련 정보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점도 그렇고, 동맹강화론도 많이 들어본 논리다. 양국의 찬성론자들은 반대론자들이 반미(反美)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하지만, 실익이 분명치 않은 협정을 ‘일단 맺고 보자’는 찬성론이 더 신화에 가깝다. 

한국도 일본도 미국이 쳐놓은 덫에 걸려들고 있다. 1980~90년대 통상마찰 때처럼 양국이 슬기롭게 빠져나갈 가능성은?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그 반대가 될 확률이 현재로선 더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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