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절망의 회로’ 신·방 겸영

서의동 2011. 12. 7. 16:11

지난달 초순 일본 국회의사당이 있는 도쿄 나가다초(永田町)에서는 일본 전국에서 모여든 청년 농업인들이 며칠째 농성을 벌였다. 농민들은 ‘환태평양경제협정(TPP) 강력 반대’ 등의 글귀가 쓰인 깃발을 펼쳐놓고 중의원(하원) 의원회관 앞 인도에서 추운 가을밤을 지샜다.
하지만 일본의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이들의 농성소식을 다룬 곳은 거의 없었다. 민주당 TPP 반대파의 수장인 야마다 마사히코(山田正彦) 의원이 민주당 지도부를 만나고 나오는 과정을 취재한 화면에서 이들의 농성장면이 잠시 등장한 게 전부였다. 농민들이 왜 쌀쌀한 가을밤을 노상에서 지새야 하는지를 정면에서 응시하려는 언론은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 정도였다. 이들이 벌인 며칠간의 농성은 주요 언론들에 그저 정치권 동향의 자료화면에 불과했다.

물론 일본 언론들이 농업현실을 전혀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다. 농촌현장을 찾아가 농민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기사도 간혹 보인다. 하지만 농민들이 농기구를 내려놓고, 머리띠를 묶는 순간부터 이들의 목소리는 외면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들불처럼 번졌던 ‘반(反)원전시위’ 보도도 마찬가지였다. 원전 반대 의견이나 피해지역 주민들의 참상은 꽤 보도되지만 집회나 시위보도엔 극도로 인색하다. 기사판단이야 해당 언론사의 권한이겠지만 일본열도 전체가 방사능으로 뒤덮인 대재난 속에 터져나오는 반원전 목소리를 신문 한귀퉁이에 처박아두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일본 언론들은 그들이 그어둔 ‘저항의 통제선’을 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듯 보인다. 불만이 체제를 위협하는 야성으로 바뀌는 것이 두렵기 때문인가.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몇달 뒤 부흥을 외치는 분위기가 되자 일본 방송들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가까운 어느 마을에서 집 지붕을 물로 청소했더니 방사능 수치가 크게 낮아졌다는 미담을 내보냈다. 대지진 이후 몇달만에 복구된 어느 어항에 고기를 가득 실은 배들이 돌아오는 ‘훈훈한’ 장면들이 프로그램을 채워갔다.
하지만 오염제거 작업의 근본적인 한계나 후쿠시마 해역에서 잡힌 생선들의 오염상태 같은, 시청자들의 진짜 궁금증은 풀어주지 않는다. 언론들은 원전마피아들에게 잽을 날리지만 결정타는 먹이지 않는다. 여론의 3분의 2가 원전폐기에 찬성하는데도 일본 정부가 배짱 좋게 원전 재가동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에서 TV를 외면하는 ‘테레비 바나레(テレピ離なれ)’ 현상이 심각해지는 데는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언론이 바닥민심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시위뿐”이라며 거리에 나섰을까? 하지만 주류언론은 노작가의 외침마저 외면했다.

일본 언론은 1960년 안보투쟁을 정점으로 점차 저널리즘 본연의 정신에서 멀어져갔다. 권력이 방송지배권이라는 ‘당근’을 주요 신문들에 부여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다. 비대해진 언론들은 권력비판보다 체제수호를 본업으로 삼게 됐다.
여론조사나 ‘말사냥’으로 맘에 안드는 정치인들을 솎아내면서 자신에게 최적의 파트너에 권력을 부여한다. 국민과 유리된 정치권은 갈수록 언론의 눈치를 보고, 직접선거로 권력을 선출하지 못하는 국민의 열패감은 갈수록 축적돼 간다.

매스컴의 일본식 발음은 ‘마스코미’지만, ‘마스고미’로도 불린다. ‘대량의 고미(폐기물)’라는 비아냥이다. 신·방 겸영이라는 ‘절망의 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한 한국도 십중팔구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신문과 방송이 합체된 거대한 매스컴들이 정의를 수호하는 ‘철인28호’가 될지, ‘마스고미’가 될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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