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구치코에서 바라본 후지산/by 서의동
도쿄 시내에 있는 집 거실 천정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전등에 선풍기 날개가 꽃받침처럼 붙어 있는 요즘 보기드문 조명장치가 있다. 보통은 거실에서 침식을 하고 있어 자리에 누우면 머리의 위치가 조명장치 쪽으로 향하게 된다.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여진이 계속되면서 잠자리에 들 때마다 조명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잠자리의 위치를 바꾼 적도 있다. 새벽에 발생한 지진으로 집이 들썩거려 잠을 설치기도 하고, 잠자리가 편치 않은 탓인지 가위에 눌린 적도 있다.
초대형 지진이 수도권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은 10년 전부터 회자돼 왔지만 동일본대지진 이후 부쩍 현실감을 띠고 있다.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가 가동을 중단시킨 시즈오카현 하마오카(浜岡) 원전이 도카이(東海) 대지진의 진원지에 해당한다는 것은 이미 한국에도 알려진 사실이다.
3000만명이 몰려있는 도쿄와 시즈오카(靜岡), 나고야(名古屋) 일대에서 대지진이 발생하면 일본은 괴멸될 수 있다. 대지진 이후 도쿄의 서점에는 재난발생시 행동요령은 무엇인지 그림을 곁들여 설명한 책들이 서가 한쪽을 메우기도 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열도는 유동화(流動化)가 본격화됐다. 땅덩어리 자체가 동쪽으로 얼마간 움직인 것으로 측정됐고, 도쿄 북쪽 도시에는 지진으로 땅이 솟구치면서 주택과 전신주가 기울고 지하수가 지표밖으로 새어나오는 액상화 현상도 나타났다. 후지산의 대규모 분화 가능성도 더 이상 가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다.
사회적으로 감지되는 유동화의 속도는 더 빠르다. 일본의 기성질서는 1990년대 버블붕괴 이후 내재된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원전사고 이후에는 수습 불가능한 상태로 치달았다. 원전사고 대응과정에서 정부가 스스로의 신뢰를 무너뜨린 것은 결정적이다.
양순하고 참을성 많던 일본 국민은 자신들을 ‘바보’로 여기며 진실을 감추는 일본 정부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젠쿄토’(全共鬪·전학공투회의)가 주도하던 1960년대 학생운동이나 지난해 이집트 사태처럼 돌멩이와 최루탄은 오가지 않지만 시위현장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그에 못지 않다.
역사학의 ‘시대구분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60년이상 일본을 지배해온 전후(戰後) 체제는 동일본대지진을 기점으로 종막을 고했다. 다만 구체제는 무너졌으되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기 전의 혼돈, 역사학의 용어로 ‘인터레그넘(interregunum·권위부재 기간)’의 상태에 놓여 있다.
자민당 이상으로 개혁을 이룰 자원도, 리더십도 갖추지 못한 민주당 정권은 구체제의 연장일 뿐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같은 대참사를 겪고 나서도 ‘각성’ 대신 ‘관성’대로 움직이며 구체제의 균열을 막기 위해 필사적이다.
반면 새질서를 잉태하려는 움직임은 이제 누가 보더라도 명백할 만큼 가시화되고 있다. 도쿄 메이지공원에서 1980년대 이후 최대규모인 6만명이 모여 벌인 ‘탈원전’ 시위, 하시모토 도루(橋下徹)라는 우파 정치인이 기성정당 연합후보를 격파한 11월 오사카 시장선거는 각기 방향은 다르지만 구체제의 균열을 가속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일특파원으로 지난해 10개월간 목격한 일본은 한국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격변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변화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260여년을 지배해온 도쿠가와(德川) 바쿠후(幕府)가 무너지던 19세기 후반,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1945년과 비슷한 변혁의 기운이 마그마처럼 꿈틀대기 시작하고 있다. 2012년의 일본이 과연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 면일하게 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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