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TPP 2차대전 초래한 경제블록화의 신호탄?

서의동 2011. 11. 15. 22:33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2차 대전을 초래했던 ‘블록경제’의 재현인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연쇄적인 위기에 휩싸인 상황에서 주요국이 자국의 수출증대와 고용보호를 위해 배타적인 경제권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다.
 
 

환태평양협정은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간에 불거진 환율갈등이 경제블록화 경쟁이라는 제2라운드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기존의 역내 경제블록은 있었지만 세계 경제위기가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배타적 경제블록의 출현은 긴장격화로 치달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 의미가 다르다.
 
환태평양협정은 캐나다와 멕시코가 참여의사를 보여 일본을 포함해 최대 12개국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총생산(GDP)으로 치면 전 세계의 40%에 달하는 거대한 경제블록이 형성된다. 명목상으로는 다자간 자유무역이지만 이 블록에 참가하지 않는 나라에는 폐쇄적 경제권이다. 미국이 환태평양협정에 열의를 보이는 것은 아시아 지역 수출확대를 통해 경제회복을 꾀하려는 데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소비에 의해 지탱해온 미국 경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에 따른 금융위기 이후 성장동력이 바닥나자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해 초 국정연설에서 향후 5년간 수출을 2배로 늘리는 ‘국가수출전략’을 제창한 바 있다.

이 전략의 실현을 위해 미국으로서는 성장여력이 큰 아시아의 수출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주요국 중 소비여력이 비교적 큰 일본을 끌어들여 시장을 양보받으면 미국의 교역이익은 극대화된다. 일본으로서는 경제적 실익보다는 지난해 센카쿠(야오위다오) 열도 충돌이후 대중국 위기감이 커지면서 협정참가를 통해 안전보장을 받겠다는 측면이 강하다. 경제블록을 지향하면서도 중국을 포위하는 안보동맹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다분해진 셈이다. 
 
환태평양협정에 위기감이 커진 중국은 대응방안에 부심하고 있다. 유럽연합(EU)과의 FTA를 통해 대항블록을 만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당초 한·중·일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을 포괄하는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EAFTA) 창설로 역내 패권을 다진다는 구상이 일본의 환태평양협정 협상 참가로 차질을 빚게 됐기 때문이다. 중국이 유럽연합과 손잡을 경우 일본은 최대시장인 중국을 독일에 빼앗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유럽에서는 위기 타개를 위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정치동맹으로 승격시키자는 구상이 나오고 있다. 메르켈 독일총리는 지난 14일 소속정당인 기민당 정당대회에서 통화동맹인 유로존을 재정동맹을 거쳐 정치동맹으로 발전시키자고 제안했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재정동맹을 거쳐 단계적으로 정치동맹으로 (유로존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움직임들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주요국들이 주도한 경제블록화와 흡사하다. 1929년 대공황이 발발한 지 3년 뒤인 1932년 영국이 영연방경제회의를 개최해 본국과 식민지, 자치령 등을 특혜관세로 묶어 블록화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 일본도 한반도와 만주를 묶는 블록경제로 위기타개에 나선 것과 엇비슷한 흐름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제블록 간의 마찰이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제공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각국이 위기극복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성장동력 상실→환율절하에 의한 수출증대→경제블록화의 수순을 거치면서 긴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대장성(현 재무성) 관료 출신인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와세다(早稻田)대 파이낸스종합연구소 고문은 주간 아에라와의 인터뷰에서 “환태평양협정은 무역자유화가 아니라 중국배제를 내용으로 하는 미국 주도의 경제블록”이라며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된 경제블록에 일본이 참가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