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드러난 일본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는 신·방겸영에 따른 언론 다양성의 약화에서 비롯된다. 이런 일본의 잘못을 왜 한국이 따라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사노 겐이치(淺野健一·63) 일본 도시샤(同志社)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지난 5일 도쿄에서 경향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신문사에 종합편성채널을 넘겨준 것은 한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중대한 과오라고 지적했다.
by 서의동
아사노 교수는 교도(共同)통신 기자로 22년간 봉직한 뒤 대학으로 옮겨 <매스컴 보도의 범죄> 등의 저서를 통해 일본언론의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그는 “산업화된 민주주의 국가들은 크로스 오너십(신문·방송 겸영)을 대부분 금지하고 있다”면서 “과거 박정희 정권이 겸영을 금지했지만 군사정권이 금지한 것을 허용한다고 해서 민주화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사노 교수는 “1957년 시작돼 1970년대 완성된 일본의 신·방 겸영 체제 탓에 일본 신문은 정부에 대들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현재 거대 신문들이 주요 방송국을 지배하고 있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가 1957년 우정상 시절 신문에 방송면허를 준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지분조정 과정을 거쳐 요미우리-니혼TV, 아사히-TV아사히, 산케이-후지TV, 니혼게이자이-TV도쿄 등의 겸영체제가 확립됐다.
일본 정부는 1960년대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둘러싸고 여론의 강한 반대로 내각 사퇴 사태까지 겪게되자 신문사들이 갈망해온 방송지배권을 넘겨주었다. 언론에 ‘당근’을 쥐어준 덕분에 자민당은 70년의 2차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비교적 무난히 넘기며 장기집권의 길에 들어섰다.
아사노 교수는 “일본 정부는 2차대전 때 전쟁을 부추겼던 기자클럽 소속 신문사들에 방송면허는 물론 국유지를 싸게 불하하는 등 다양한 특혜를 줬다”면서 “신문사들은 권력비판에 눈을 감게 됐고, 권력의 언론통제는 더 쉬워졌다”고 말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아사노 교수는 2004년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과 3·11 동일본대지진을 겸영체제에서 언론의 비판기능이 실종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그는 “이라크 전쟁 때 일본 신문들은 정부의 지침에 따르겠다는 각서에 사장의 도장과 담당기자의 사인까지 받았다”며 “일본 언론이 문서까지 만들어 정부통제에 따른 것은 처음이지만 이런 사실은 보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판의 날을 세운 것은 TV겸영을 하지 않는 일부 지방신문 뿐이었다.
그는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 언론사에 보도자제를 요청했다는 이야기를 언론계 고위인사로부터 직접 들었다”며 “원전사고 이후 일본은 ‘보도관제’ 상태”라고 지적했다. 아사노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보도는 일본군 통합지휘 본부인 다이혼에이(大本營)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던 2차대전 당시 언론과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현장을 통제한다는 이유로 현장에 가보지 않으니 정보가 없고, 정부와 도쿄전력의 발표에만 의존하게 된다.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사고초기부터 러시아 체르노빌 규모의 원전사고라고 지적했지만 일본 언론들은 ‘괜찮다’고만 되풀이 했다. 안전하지 않은데도 안전하다고 거짓말을 한 셈이다. 일본 언론때문에 후쿠시마의 어린이와 여성들이 대량피폭을 당했다.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
아사노 교수는 “지금도 막강한 한국의 보수신문들이 전파 미디어를 장악한 것은 한국에 불행한 일”이라며 “일본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언론이 사회적 신뢰를 잃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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