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쓴 글

대기업 “직접 돈굴리자” 금융업 잇단 진출

서의동 2009. 7. 9. 20:09
ㆍ현대-자산운용사 설립, SK-카드부문 지분투자
ㆍ‘제조업에 투자않고 손쉽게 돈벌기’ 비판 목소리


지난해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주춤했던 대기업의 금융업 진출 움직임이 다시 본격화하고 있다. 현대그룹이 자산운용사를 설립해 사업영역을 넓혔고, SK그룹도 카드사업 지분투자를 위한 사전준비에 착수했다. 금융위기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을 조짐을 보이는 데다 이명박 정부의 대기업 규제 완화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이런 흐름은 올 하반기에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경제계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이 고용창출 효과가 큰 제조업에 대한 투자는 외면한 채 잇달아 금융업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대기업 금융업 속속 진출=8일 금융감독원과 금융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최근 하나금융그룹의 카드사업부문에 대한 지분투자를 위해 자산실사에 착수했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SK가 하나은행 카드사업부문의 자산가치 평가를 위한 실사를 벌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SK그룹이 하나카드 지분을 10% 이상 취득하려면 카드사 대주주 변경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하지만 SK의 대주주 자격 취득이 무난히 이뤄질 것으로 금융업계는 보고 있다. SK는 카드·주유·통신 등을 묶은 결합서비스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현대그룹이 100% 출자해 설립한 현대자산운용은 지난 7일 영업을 시작했다. 현대자산운용은 내년까지 수탁액 10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자회사인 HMC투자증권의 자산운용업 진출도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들이 자산운용업에 진출하려는 것은 그룹이 보유 중인 뭉칫 돈의 운용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계열 금융사라는 이점을 살리면 퇴직연금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재계 순위 48위 내에 있는 대규모 기업집단 중 9곳이 자산운용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롯데그룹도 지난해 대한화재를 인수해 설립한 롯데손해보험의 보유자산을 굴리기 위해 자산운용업 진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덕적 해이’ 논란도=정부의 지주회사 규제 완화 움직임으로 금융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대기업들의 부담도 줄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말 금호아시아나의 금호생명 매각 의무이행 유예기간을 연장해준 데 이어 지난 2일에는 SK그룹에 대해 지주회사 의무이행의 유예기간을 2년 연장했다. 이에 따라 SK그룹은 계열 증권사의 매각 의무를 2011년 7월까지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제조업체가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금융회사가 제조업체를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이 추진되고 있어 대기업의 금융업 진출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대기업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제조업에 대한 투자를 외면한 채 금융업으로 손쉽게 돈을 벌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대기업의 금융업 진출에 따른 ‘도덕적 해이’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정부가 인덱스 펀드에 한해 계열회사 주식취득 제한규정을 푼 이후 삼성투신이 삼성그룹 계열사에 전액 투자하는 ‘삼성그룹밸류 인덱스펀드’를 내놓은 것을 두고 투자자들의 자금을 삼성그룹 계열사 주가 띄우기용으로 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경제개혁연대는 “고객이 맡긴 돈을 그룹 계열사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심각한 이해상충의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