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원전 차라리 서울에 지으라

서의동 2012. 3. 15. 14:30

“후쿠시마에 간다면 피폭은 각오해야 합니다.”

후쿠시마 원전 반경 20km 입구. 경찰이 삼엄한 경비를 서며 출입자를 통제하고 있다./by 서의동


지난 4일 신칸센 열차 구내방송이 후쿠시마(福島)시 도착을 알리자 며칠 전 만난 원자력공학자 고이데 히로아키(小出裕章)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역을 나온 뒤 슈퍼에 들러 튼튼해 보이는 마스크를 사 얼른 썼다. 후쿠시마에서 하루 반을 머물러야 하는 취재 일정이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1년 전부터 유출되기 시작한 방사성물질은 바람을 타고 퍼지며 곳곳에 핫스팟(hot spot·주변에 비해 유독 방사선량이 높은 지점)을 만들었다. 원전 서북 방향에 나란히 위치한 이다테무라(飯館村)와 후쿠시마시는 후쿠시마현 중에서도 핫스팟에 속한다.

이다테무라에서는 대낮인데도 사람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일본의 사회인프라로 불리는 편의점조차 문을 닫았다. 달리는 차안에서도 공간 방사선량이 1마이크로시버트(μ㏜)를 간단히 넘어섰다. 나무들이 우거진 수풀 쪽의 공간 방사선량은 2μ㏜까지 치솟았다. 도쿄의 20~30배에 달하는 방사선량이다. 후쿠시마 시내도 시간당 0.6μ㏜가 넘었다. 일본 법률상 만 18세 미만 청소년들은 출입할 수 없는 ‘방사선관리구역’에 해당되는 수치다. 말하자면 원자력 실험실 같은 곳이다. 하지만 시 중심부인 신마치(新町)에서 오가는 학생들 중 마스크를 쓴 이는 없었다. ‘아이들을 방사능으로부터 지키는 후쿠시마 네트워크’ 대표인 사토 사치코(佐藤幸子)도 마찬가지였다. 사토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일상에 젖어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눈에 보이지도, 냄새도 맡을 수도 없는 방사능에 대처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긴장이 풀리면서 이틀 일정 중 마스크를 쓰고 있던 시간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기엔 날씨가 너무 화창했고, 후쿠시마의 풍광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갑갑하고, 귀찮았다. 일상의 힘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원기충만한 네댓살 아이들에게 하루라도 제대로 마스크를 씌울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도쿄와 수도권의 안락한 삶을 위해 후쿠시마는 ‘폭탄’을 끌어안은 채 수십년을 견뎌왔고, 끝내 그 폭탄이 터져버렸다. 이곳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거나, 피폭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떠나고 싶지만, 여건이 안되는 이들은 ‘원자력 실험실’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방사능과 평생 싸워야 한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주민들을 책임질 생각이 없다.” 지난 1년간 사토가 관찰해 내린 결론이다. 

만약 한국에서 후쿠시마 급의 원전사고가 발생한다면, 한국 정부의 대응이 일본보다 나을까. 아마 일본 정부와 꼭 같거나 더 무책임할지 모른다. 원자력이란 존재는 국가가 국민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명박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에도 아랑곳없이 원전 증설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 지진과 쓰나미가 없으니까 안전하다면서. 하지만 1957년 영국 윈드스케일, 1979년 미국 스리마일, 1986년 구소련 체르노빌 등 대형 핵발전소 사고 모두 자연재해와 무관했다. 지난 13일 뒤늦게 밝혀진 고리 원전 1호기의 외부 전원공급 중단 사고도 마찬가지다. 

안전한 원전은 없다. 그러기에 고리나 후쿠시마 같은 외진 곳에 발전소를 지어놓고 그 혜택을 도시민이 향유하는 차별이 벌어지는 것이다. 여차하면 발전소 주변 지역은 ‘봉인’해 버리면 된다는 안이하고도 차별적인 발상이다. ‘한국 정부가 원전을 더 짓겠다면, 그리고 원전 안전을 그토록 자신한다면 서울에 지으라. 그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 원전정책을 바꾸라.’ 현대판 게토(ghetto)가 돼버린 후쿠시마에서 이틀간 보내면서 굳힌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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