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본 청년들이 불행한 이유

서의동 2012. 4. 5. 17:13

올해 93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는 요즘도 언론에 등장해 정국 현안에 대해 왕성하게 발언한다. 신문기자를 거쳐 30여년간 정치평론가로 일해온 82세의 미야케 히사유키(三宅久之)는 올해 들어서야 TV토론 프로그램에서 은퇴했다. 79세의 극우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는 도중에 그만두지 않는 한 81세까지 지사직을 수행하게 된다. 

도쿄 도심 오피스가로 향하는 아침 전철에서는 정장을 빼입은 세련된 노신사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다. 정년이 65세까지 늘어난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들르는 동네 편의점에는 머리가 희끗한 노인 점장이 건강한 목소리로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를 외치며 분위기를 돋운다. 기업에선 후배에게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넘겨준 뒤 회장으로 물러나 앉으면서 막후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왕’들이 적지 않다. 일본기업과 거래가 많은 한국기업 주재원의 설명을 들으면 현역 사장들은 회장님 눈치를 봐야 한다. 심기를 거스르면 일을 그르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사회에선 70~80대 연령층이 아직도 사회 각 분야에서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과는 최소 10년가량 ‘체감연령’의 격차가 느껴진다. 한 경제통계를 보면 60세 이상이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4%이다. 그중 가장 소비력이 왕성한 ‘단카이(團塊)세대’(1947~1949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올해부터 은퇴를 시작하자 소비재 업계가 꿈에 부풀어 있다. 

일본의 노년층이 이처럼 기세가 등등한 반면 청년들은 ‘천덕꾸러기’나 ‘투명인간’ 정도로 취급된다. 기성세대는 혀를 찬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동차도 갖기 싫어하고, 해외유학은커녕 해외여행도 안 가려 한다. 연애도 서툴다. 꿈도 없는 불행한 세대다.’

지난해 화제가 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의 저자 후루이치 노리도시(古市憲壽)는 “젊은이들이 실제론 현실에 만족해 한다”며 반론을 폈다. 하지만 그의 논리는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기 때문에 현실을 긍정한다’는 역설에 기반을 둔다. “자신을 둘러싼 ‘자그마한 세계’에서 동료, 친구들과 소소한 행복을 누리지만 사회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는 그의 진단을 읽어보면 기성세대가 틀린 것만은 아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왜 꿈을 잃어버렸을까. 고도성장 시절 청춘을 보낸 기성세대와 달리 장기불황 시절에 나고 자라 위축된 탓도 있다. 하지만 노년층 중심의 사회질서에 목소리를 내지 않고 순응해온 책임도 있다. 1967년 67%였던 20대의 투표율(총선거 기준)이 2003년에는 35.6%까지 하락했다. 60대 투표율이 꾸준히 80%인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 정책초점도 노년층에 맞춰져 있다. 연금재원이 모자라 지급시기를 늦춰야 하는 데 연금공백기가 생길 수 있으니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식이다. 반면 행정개혁을 이유로 내년 공무원 신규채용은 2009년에 비해 56%나 삭감했다. 청년실업의 ‘개미지옥’ 같은 현실에도 정부가 태연하게 청년 일자리를 줄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청년들이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도 일본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선관위의 조사를 보면 이번 총선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20대는 36.1%이다. 18대보다 10%포인트 올랐다지만 50대 이상(72.1%)의 절반 수준이다. 이래서는 서울광장과 인터넷 공간에서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없다. 투표하지 않는 유권자를 무서워할 정부는 없기 때문이다. 

투표는 내 밥그릇을 챙기는 매우 이기적인 행위지만, 그렇다고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밥그릇은 일단 챙기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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