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중심부 긴자(銀座)거리에서 수십년간 외국인들을 상대로 가이드 자원봉사 활동을 해온 구라타 야헤에(倉田彌兵위·93)가 자택에서 장남(62)과 함께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일본을 대표하는 긴자거리의 ‘명물 가이드’로 알려진 구라타가 사회에 잊혀진 채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에 일본인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지난 3월23일 도쿄 세타가야(世田谷)구의 낡은 아파트에서 두 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불에 덮인 채 시신은 백골 상태여서 숨진 지 최소 6개월에서 3년이 지난 것으로 보이며, 또 다른 시신은 며칠 전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 조사 결과 백골 시신은 긴자의 명물 가이드였던 구라타, 자살한 이는 장남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일본 언론이 3일 보도했다.
구라타는 무역회사를 다니며 독학으로 영어를 익혔고, 2차대전 패전 후에는 미군들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그가 처음으로 거리 자원봉사에 나선 것은 도쿄올림픽이 열리던 1964년. 갈고닦은 영어실력을 발휘해 도쿄 중심부인 긴자를 찾은 외국인들을 상대로 길 안내를 했다.
회사를 정년퇴직한 197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원봉사에 나섰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주 6일간 긴자4초메(丁目) 파출소 주변에서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말을 건네던 그에겐 어느새 ‘닉 구라타’라는 애칭이 붙었다. 경찰은 그를 위해 파출소 앞에 의자를 마련해줬고, 구라타는 신입경찰에게 지리를 알려줄 정도로 긴자거리의 산증인이 됐다.
긴자의 상인들과 구라타가 속한 자원봉사단체 ‘도쿄SGG클럽’ 회원들은 ‘가슴 포켓에 스카프를 꽂은 세련된 옷차림에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던 노신사’로 구라타를 기억했다. 긴자거리를 소개하는 잡지들은 그의 인터뷰를 실었고, 말년에는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일본 정부는 2003년 자원봉사 문화 확산에 기여한 그에게 포장을 수여했고, 2005년 86세의 나이로 가이드 일을 그만둘 때엔 경찰청이 감사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은퇴한 구라타는 점차 잊혀져 갔다. 부인과 딸을 저세상으로 먼저 보낸 뒤엔 장남과 둘만의 고독한 노년을 보냈다. 가끔씩 동네 슈퍼에 물건을 사러 가는 그의 얼굴은 갈수록 수척해졌다고 주민들은 증언했다. 장남은 오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생활로 직업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힘겨운 만년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구라타가 거주하던 주택은 도쿄도가 지은 도영 아파트로 노후화가 심해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었다. 재건축을 위한 퇴거 기한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되지 않자 관리사무소 직원과 경찰이 아파트 문을 따고 들어가 두 사람의 주검을 확인했다. 도쿄도는 단신 거주자의 고독사를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안부확인을 해왔지만 장남과 함께 살던 구라타는 이에 해당되지 않았다. 구라타의 고독사는 가족해체와 고령화로 쓸쓸히 죽어가는 고령대국 일본의 어두운 단면이 다시 한번 드러낸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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