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4일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한 발언은 독도 방문 이상의 충격을 일본에 안겼다. 일본 정부는 외교 루트를 통해 공식 항의했고 정치인들도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15일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이고, 유감스럽다”고 밝혔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일왕이 방한할 환경이 아닌 상태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은 “너무도 예의를 잃었다”고 말했다.
친한 성향의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는 “일본을 이해하는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왔다”고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일·한 관계에 찬물을 끼얹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쓰바라 진(松原仁) 공안위원장은 이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뒤 “일국의 최고지도자로서 적절한 행동이 아니다”라고 발언의 강도를 높였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이후 도호쿠(東北) 지방을 강행군하며 피해민들을 위로해 일본 국민의 두터운 신망을 받아왔다. 또 평화주의자로 꼽히는 데다 조상이 한국인이라고 발언할 정도로 한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한·일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왕은 특히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왕의 지위가 상징적 존재로 격하되긴 했지만 일왕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는 아직도 각별하다. 그런 일왕에 대해 이 대통령이 힐난조로 사과를 요구함으로써 일본을 불필요하게 자극한 것이다.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외상이 14일 이 대통령 발언 직후 “보고받은 바 없다”며 대응을 피했다가 정부 차원의 공식 항의를 한 것은 도저히 그냥 넘기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만큼 이 대통령의 발언은 양국 관계에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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