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에 있는‘우익 포퓰리스트’들이 주도하고 있다. 마치 19세기 후반 도쿠가와(德川) 바쿠후(幕府)의 붕괴 직전 지방영주들이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하던 상황과 엇비슷하다.”
하시모토 도루(橋下徹·43) 오사카 시장이 21일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연행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망언을 내놓은 것을 계기로 일본내 우익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언행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시모토 시장 외에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79) 도쿄도지사, 가와무라 다카시(河村たかし·63) 나고야 시장 등이 과거사문제 등에서 막말을 쏟아내면서 정부정책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일본 3대 대도시의 자치단체장들인 이들의 언동은 무시못할 파워와 선동력을 가지면서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사쓰마(薩摩), 조슈(長州) 등 강력한 지방영주들이 허약한 중앙정부 대신 외교를 이끌어가던 19세기 후반을 연상케 한다.
이시하라 도쿄도지사가 지난 7월4일 워싱턴에서 “도쿄도가 센카쿠 열도를 구입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토지 소유자와 교섭을 벌이고 있다”고 한 발언은 중·일 간의 갈등을 격화시켰다. 그의 매입계획이 일반 국민의 큰 호응을 얻으며 일본 정부의 ‘저자세 외교’가 도마 위에 오르자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권이 부랴부랴 국유화 계획을 들고 나왔다. 이 일련의 움직임이 다시 중화권을 자극해 결국 홍콩활동가 14명의 센카쿠 열도 상륙사태로까지 번졌다.
평소 국수주의적이고, 도발적인 발언을 일삼던 그는 지난해 6월 “일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군사정권을 만들어야 하며 핵무기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나라 속국이 돼버린다”며 징병제 도입도 주장했다. 중국에 대해 경멸의 뉘앙스가 포함된 ‘시나(支那)’라는 호칭을 사용하는가 하면 외국인 지방참정권에 대해서는 “귀화하면 될 일”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은 공립학교 직원들이 학교행사 때 일본국가(기미가요)를 부를 때 국기(히노마루)를 향해 일어서 경의를 표하도록 하는 ‘기미가요 조례’를 만든 인물이다. 지난 3월 오사카의 한 중학교는 이 조례를 근거로 교장이 기미가요 제창 때 입술을 움직이지 않은 교사 3명을 적발해 징계에 처하기도 했다. 전시 군대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일어나도록 한 장본인이 그다.
그는 “지금 일본 정치에서 필요한 것은 독재다” “일본은 핵을 보유해야 하며 전쟁도 단독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등의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으며, 일본의 교전권을 부인하고 있는 평화헌법 9조의 개정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와무라 나고야시장은 지난 2월 중국사절과의 간담회에서 “일본군에 의한 난징(南京)대학살은 없었다”라는 발언으로 수교 40주년을 맞은 일·중관계를 일찌감치 냉랭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난징대학살은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7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당시 중국 수도 난징으로 진격하던 일본군이 난징과 그 주변에서 중국인을 집단 살해하고 부녀자 성폭행, 약탈, 방화 등을 저지른 사건이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정부와 군의 책임이 없다며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의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에 참여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이 기성정치권의 무기력에 염증이 난 대중들에게 신선하게 비치면서 이들의 주장이 큰 저항감없이 먹혀들고 있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헌법 체제 속에서 번영을 누려오다 1990년 이후 장기불황의 늪에 빠지면서 전후(戰後)질서에 대한 염증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언동이 대중들의 열광을 낳고 정책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들은 향후 정국의 ‘태풍의 눈’으로 자리잡았다. 하시모토가 만든 지역정당 ‘오사카유신회’는 총선거가 임박하면서 기성 정치권들로부터 꾸준히 ‘러브콜’을 받고 있다. 가와무라 시장의 ‘감세일본’도 정계진출을 꾀하고 있으며, 이시하라 지사의 신당창당 계획은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언제든 정국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성공회대 권혁태 교수는 “리더십 부재의 중앙정치와 비효율적인 관료행정 속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곳을 찾지 못한 유권자들의 분노가 하시모토 등 우익 정치인들을 통해 탈출구를 찾으려고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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