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자민당은 과반수를 크게 상회하는 대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정권에 복귀했다. 하지만 선거에선 승리를 했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민당의 승리는 ‘리버럴(자유주의 세력)’인 민주당의 집권 3년3개월이 실패한 데 따른 ‘반사이익’일 뿐이라는 평가들도 적지 않다.
최근 선거정세를 다룬 일본 신문들의 보도에는 ‘소거법(消去法)’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수학용어인 소거법은 여러 선택항목 중에서 명백히 틀린 것이나, 있을 법하지 않은 항목들을 순서대로 지워나가 최종적으로 남은 항목을 답으로 판단하는 방식이다. 12개 정당이 난립한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다른 당들이 탐탁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민당을 선택한 것일 뿐 유력한 대안으로 생각한 이들은 적다는 의미다.
실제로 일본 언론들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자민당은 선거막바지까지 지지율이 20%대를 맴돌았다. NHK가 지난 1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민당 지지율은 26.6%로 민주당(16.1%)과 일본유신회(4.7%)보다 높지만 여전히 “지지 정당이 없다”(33.5%)는 답이 가장 많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재 개인의 인기도 저조하다. “누가 총리로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에 아베 총재(28%)는 노다 총리(19%)보다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두 사람 다 아니다”는 응답이 47%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자민당이 지난 3년간 야당으로서 정권탈환을 위해 뼈를 깎는 쇄신노력을 한 흔적도 찾기 어렵다. 정권이 코너에 몰린 2009년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은 세습금지 규정을 마련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입후보자(337명)의 약 30%를 세습정치인으로 채웠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목청을 세운 반면 민생분야에선 퇴행적인 공약이 적지 않다. 육아대책의 경우 민주당은 보육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보육시설의 확충 등을 공약으로 내놨지만, 자민당은 ‘가족의 책임’을 강조하며 취업여성의 육아휴직률을 높이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유아사 마코토(湯淺誠) 빈곤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빈곤·격차가 확대되는 일본 사회에서 필요한 것이 사회보장 확충인데 자민당은 ‘육아는 엄마가 가장 잘한다’는 식의 과거회귀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집권하면 사회복지예산 삭감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발등의 불로 떨어진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도 ‘지속가능한 에너지원 구성을 10년 이내에 확립한다’며 큰 그림을 제시하지 않은 채 안전한 원전부터 재가동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도 자민당이 총선 승리를 하게 된 데는 리버럴 정권이 일본사회에 두텁게 쌓인 열패감과 위기감을 불식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으로 설명된다. 시민운동가·구사회당 세력 등 리버럴 세력이 결집한 민주당은 20년 장기침체, 저출산·고령화 등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진단에서는 틀리지 않았지만 ‘아마추어식’ 해법으로 실점을 되풀이했다. 특히 중국, 한국과의 영토·과거사 갈등에서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한 것이 ‘리버럴=무능·유약’ 이미지를 굳히면서 극우세력들에게 공간을 내줬다.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내셔널리즘’이 분출되는 사회분위기가 ‘강한 일본’을 내세우는 자민당 등 보수정당에게 유리한 지평을 제공했고, 총선을 목전에 둔 지난 12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 투표율이 2009년보다 낮았고, 선거 직전까지 부동층이 절반 가까이 차지한 점을 감안하면 ‘자민당의 정권탈환’으로 마무리된 이번 선거결과를 일본 사회가 흔쾌히 받아들이는 분위기로 보긴 어렵다. 정권교체의 열망이 표출된 2009년에 비하면 냉랭함마저 감지돼 자민당 정권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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