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의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무제한으로 돈을 풀고, 건설국채를 중앙은행이 전량 매입하도록 하겠다.”
아베 신조(安倍晋三·58)가 이끄는 차기 자민당 정권의 경제정책은 아베 총재가 지난달 15일 한 이 말에 압축돼 있다. 발언 직후 비난이 쇄도하면서 말을 조금씩 바꾸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취지는 변하지 않았다. 돈을 풀어 엔화 약세를 유도해 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윤전기 아베’의 노림수다. 엔화 약세는 기업수익을 늘리고, 주가를 띄워 경제전반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강력한 경기부양책이다.
향후 10년간 200조엔을 지진과 쓰나미, 태풍 등에 대비한 방재 인프라에 집중 투자하는 ‘일본판 뉴딜정책’도 주요 공약중 하나다. 민주당 정권이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 구호 아래 불필요한 공공사업을 줄여온 정책을 뒤집어 ‘구시대형 토건국가의 부활’을 예고한 것이다.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해 막대한 국가부채로 재정여력이 없는 정부를 대신 중앙은행의 발권력이 필요한 만큼 자민당은 일본은행 총재 인사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아베 차기 총리는 총선 승리가 확인된 16일 밤 기자회견에서 내년 4월로 퇴임하는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총재의 후임에 대해 “자민당이 제시한 물가상승률 목표에 찬성하는 인물을 희망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만성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재 1%인 소비자물가(인플레이션) 목표치를 2%로 높이겠다는 자민당의 공약을 이룰 인물을 앉히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베노믹스’(아베의 경제정책)의 핵심은 금융완화와 토목건설 투자 등 고강도 경기부양책을 통해 일본을 침체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겠다는 데 있다. 아베는 2006년 총재 선거 당시에도 경제성장률 3% 목표를 내걸고 ‘성장 없이는 일본의 미래가 없다’고 외쳤던 ‘성장주의자’이다.
이런 정책이 과거회귀적일 뿐 아니라 막대한 국가부채를 짊어진 일본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지만 자민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민주당 정권 들어 일본 경제 쇠퇴에 가속도가 붙은 것이 정권몰락을 재촉했음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중국에 밀려 세계 3위로 추락했고 일본의 자존심이던 제조업체들이 세계시장에서 참패하면서 곤두박질친 것이 민주당 정권에서 특히 두드러진 것도 사실이다.
아베 정권은 경제부문에서 단기간에 성과가 가시화되도록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노믹스가 순조롭게 작동할 경우 기업 경쟁력이 높아지고 국내외의 신뢰가 회복되면서 일본 경제는 선순환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기대감을 반영해 17일 국제금융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한때 84엔대로 급등해 엔화가 1년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닛케이 주가도 상승했다. 씨티뱅크 관계자는 “향후 3개월간 달러당 엔화가 87엔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원전재가동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에 도쿄전력 등 전력회사의 주가도 17일 폭등했다.
자민당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실물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기대가 많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물가상승률이 2~3%가 될 경우 GDP의 2배가 넘는 막대한 국가채무의 이자부담이 폭증할 수 있다. 금융완화를 한다 해도 투자심리가 살아날지도 의문이다. 일본 BNP파리바증권의 고노 류타로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정·금융정책으로 일시적으로 수요를 일으키더라도 결국은 ‘돈풀기’에 그칠 수 있다”며 “사회보장제도 정비 등을 통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없애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막대한 건설국채를 발행할 경우 대외신인도가 악화할 가능성도 있다. 기업단체인 ‘경제동우회’ 하세가와 야스치카(長谷川閑史) 대표는 “무제한의 금융완화는 시장의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아베노믹스가 대기업만 중시하고,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와 서민들은 배려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본의 금융완화가 글로벌 환율전쟁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는 데다, 일본 기업들이 엔화약세를 업고 수출경쟁력을 회복할 경우 한국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고전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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