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정치인 아베 신조(安倍晋三·58)의 자민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헌법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 우경화 정책들이 현실의 영역으로 다가서고 있다. 자민당 단독으로 294석이라는 압도적인 의석을 획득한 데다 일본유신회(의석 54석) 등의 협력을 얻으면 우익들의 숙원이 풀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공명당이 우경화를 견제하고 있고, 일본 언론들도 아베 정권의 폭주를 견제하고 있어 당분간은 ‘정중동’의 자세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총재는 17일 기자회견에서 헌법개정 구상의 일단을 비쳤다. 우선은 헌법개정 절차를 완화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헌법 제96조에 규정한 개헌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의 발의 요건을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참원)의 3분의 2에서 과반수로 완화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겠다는 것이다. 평화헌법을 바로 손대는 데는 저항감이 큰 만큼 헌법 개정의 벽을 낮춘 뒤 궁극적으로 평화헌법을 개정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참의원의 경우 민주당이 아직 제1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세력이 3분의 2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아베 정권은 내년 참의원 선거 이전까지는 경제대책에 전념해 국민의 신임을 얻어 참의원에서 승리한 뒤 개헌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원(242명)의 절반을 선출하는 내년 선거에서 자민당 등 개헌세력이 80%가 당선돼야 3분의 2를 채울 수 있어 만만치는 않다.
헌법개정에 비해 일반 법률은 마음만 먹으면 입법화할 수 있다. 공명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할 경우 의석수는 중의원 의석(480명)의 3분의 2가 넘는 325석이 돼 참의원에서 부결된 법안을 중의원에서 재가결할 수 있다. 일본 헌법 59조는 중의원에서 가결된 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될 경우 60일 이내 중의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재가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동맹국이 공격받는 경우 일본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권리인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영토·영해 경비 강화를 위한 ‘영해경비법’ 법 등 외교안보 관련 법안이나 자위대 군비 강화 예산은 자민당과 공명당의 의석만으로 단독처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공명당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나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만큼 집단적 자위권 행사나 헌법 개정 추진을 위해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가 이끄는 일본유신회나 다함께당 등과 정책 연합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국가안전보장기본법 제정은 일본유신회와 공조할 경우 참의원에서 반대해도 중의원 재가결로 바로 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중의원 다수를 내세워 강행처리할 경우 야권의 반발은 물론 국민 여론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집단적 자위권 역시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 이후로 미룰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17일 자민당이 총선 승리에 도취해 폭주하지 말고 겸허하게 행동할 것을 주문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자민당이 소선거구제에서 조직표를 앞세워 압승했지만, 정당 지지율이 20%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대승에 우쭐하지 말고 겸허한 자세로 국정에 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신문은 “자민당은 공약으로 헌법 개정을 통한 자위대의 국방군 전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센카쿠에 공무원 상주, ‘다케시마의 날’ 행사의 정부 주최 등을 내놨으나 이런 정책 공약이 정말로 일본의 안전에 도움이 되느냐”면서 “미국에서도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도 사설에서 민주당 정권의 실정에 편승한 ‘바람없는 압승’을 아베 총재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신문은 일본유신회를 포함해 중의원에서 개헌파가 상당한 세력을 확보했다고 해서 졸속으로 개헌을 서둘러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요미우리신문 역시 사설에서 힘을 앞세워 국정 운영을 할 경우 다음 참의원 선거에서 민심의 이반을 부른 전례가 있는 만큼 겸허한 정국 운영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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