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의 급락세가 진정기미를 보이지 않자 처음엔 엔화하락을 반기던 일본이 이제는 부작용을 걱정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엔저로 수출기업들은 형편이 풀렸지만, 가솔린 가격이 치솟고 수입물가도 들썩거리면서 가계부담이 커지는 역풍이 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의 경제멘토가 과도한 엔화약세에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21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하마다 고이치(浜田宏一)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는 지난 20일 도쿄에서 기자들과 만나 “(엔저정책 기조가) 과하게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렇게 되면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의 ‘경제멘토’로 불리는 하마 교수는 “(엔저가 과도하게 진행되면) 필요할 때 통화 완화 기조를 조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마다 교수는 지난 18일만 해도 “110엔이 되면 조금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달러당 95∼100엔 정도는 문제가 없고 바람직하다”고 했으나 엔화가 고삐풀린 듯 급락하는 현상은 우려스럽다고 본 것이다.
앞서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경제재정·경제재생 담당상도 지난 15일 “엔화 가치가 지나치게 하락해 수입 물가의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며 우려했다. 그는 “(엔화 가치 하락은) 수출에 혜택일 수 있으나 국민들의 생계 유지에 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마다 교수와 아마리 경제재정상의 발언은 일본 정부가 엔화의 적절한 균형점을 고심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일본경제는 내수비중이 큰 만큼 과도한 엔화하락은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일본언론들은 엔화의 급격한 약세가 일본의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은 21일 “엔화약세로 원유의 수입가격이 상승해 가솔린의 가격이 높아지고 있는가 하면 수입식품의 가격상승도 우려되고 있다”며 “엔화약세에 동반한 물가상승이 가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자원에너지청에 따르면 지난 15일 가솔린의 평균소매가격은 1ℓ당 150엔으로 1주일전에 비해 1엔20전 상승했다. 가솔린 가격은 6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등유가격도 7주 연속 올랐다. 스미토모화학은 원자재가격 상승에 따라 플라스틱 제품원료인 폴리에틸렌 가격을 2월1일부터 1㎏당 15엔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폴리에틸렌은 생필품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만큼 생활용품 가격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수입식품 물가도 꿈틀거리고 있다. 일본제분은 “일본의 밀가루 수입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밀가루 가격이 오르면 빵과 면류 등의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엔화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뉴욕시장에서 한때 1달러당 90.21엔으로 2010년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21일 도쿄외환시장에서는 오후 3시현재 89.56엔으로 하락세가 다소 주춤했다. 지난해 9월28일 1달러당 77.62엔이던 것에 비교하면 석달여 동안 15%가량 절하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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