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1일 밤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NHK가 코하쿠우타갓센(紅白歌合戰)을 방영했는데 여기서 작은 해프닝이 빚어졌다. 사이토 가즈요시(齊藤和義)라는 가수가 기타를 둘러메고 나와 '야사시쿠 나리타이(상냥해지고 싶어-やさしくなりたい)'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는 2011년 일본에서 시청률 40%를 기록하며 그해 최고의 드라마로 등극한 <가정부 미타>의 주제가다. 아빠의 불륜으로 엄마가 자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뒤 붕괴위기에 처한 일본의 한 중산층 가정에 '미타'라는 이름의 가정부가 와서 이 가정을 살린다는 다소 엽기적인 내용이다.
드라마 <가정부 미타>
오랫만에 마쓰시마 나나코(松島奈々子)가 주연으로 등장해 물이 오른 절정의 연기를 선보였고, 스토리 구성도 참신해 큰 인기를 모았다.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상처받은 일본의 상황과도 맞물리는 분위기여서 나도 열심히 시청했다. 사이토는 이 드라마가 끝날 때 나오는 노래를 불렀는데, 드라마가 뜨면서 이 노래도 크게 히트했다. 그 바람에 사이토가 코하쿠우타갓센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날 벌어진 해프닝은 그가 들고 나온 통기타의 어깨끈에 <NUKE IS OVER>라는 반핵 메시지가 쓰여있었고, 이 메시지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여과없이 방영된 것이다. 시청률이 40%를 넘어섰으니 반핵 시위로는 엄청난 효과를 거둔 것이다.
고하쿠우타갓센에서 사이토가 노래부르는 장면. 어깨끈에
올해 46세인 사이토는 1992년에 데뷰한 싱어송 라이터로 CM송 등의 작곡으로 두터운 팬들을 확보하고 있으며 반핵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계속 좋아했었다(ずっと好きだった)'라는 자신의 노래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뒤 일본 정부와 '원전마피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가사를 바꿔 불렀다. '계속 거짓말이었다(ずっとウソだった)'는 이 노래가 화제를 모으면서 그는 '반원전' 가수로 널리 알려졌다. 사이토가 후쿠시마에서 열린 어느 콘서트에서 '계속 거짓말이었다'를 열창하는 장면도 유투브 등에서 볼 수 있다. 후쿠시마 현에서 가까운 도치기 현 출신인 그는 1999년 이웃 이바라키현에서 1999년 벌어진 JOC 방사능 임계사고 등을 접하면서 '원전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어느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불퉁한 표정에 무뚝뚝한 성격인 그는 우타갓센 출연이 결정된 뒤 기자회견에서 "(올해 출연하는 바람에) 같은 시간대에 다른 방송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못보게 됐다"는 멘트를 날려 NHK를 긴장시켰다. 그는 코하쿠우타갓센생방송에 나와서도 "(내가 나오게 된 게 방송국의 )착오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나도 이 장면을 봤지만 이런 반핵 이벤트가 벌어진 줄은 이후 올초 발매된 <슈칸분슌(週刊文春>를 보고 뒤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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