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홍백가합전서 벌어진 '반핵 퍼포먼스'

서의동 2013. 2. 1. 17:46

지난해 12월31일 밤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NHK가 코하쿠우타갓센(紅白歌合戰)을 방영했는데 여기서 작은 해프닝이 빚어졌다. 사이토 가즈요시(齊藤和義)라는 가수가 기타를 둘러메고 나와 '야사시쿠 나리타이(상냥해지고 싶어-やさしくなりたい)'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는 2011년 일본에서 시청률 40%를 기록하며 그해 최고의 드라마로 등극한 <가정부 미타>의 주제가다. 아빠의 불륜으로 엄마가 자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뒤 붕괴위기에 처한 일본의 한 중산층 가정에 '미타'라는 이름의 가정부가 와서 이 가정을 살린다는 다소 엽기적인 내용이다. 


드라마 <가정부 미타>



오랫만에 마쓰시마 나나코(松島奈々子)가 주연으로 등장해 물이 오른 절정의 연기를 선보였고, 스토리 구성도 참신해 큰 인기를 모았다.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상처받은 일본의 상황과도 맞물리는 분위기여서 나도 열심히 시청했다. 사이토는 이 드라마가 끝날 때 나오는 노래를 불렀는데, 드라마가 뜨면서 이 노래도 크게 히트했다. 그 바람에 사이토가 코하쿠우타갓센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날 벌어진 해프닝은 그가 들고 나온 통기타의 어깨끈에 <NUKE IS OVER>라는 반핵 메시지가 쓰여있었고, 이 메시지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여과없이 방영된 것이다. 시청률이 40%를 넘어섰으니 반핵 시위로는 엄청난 효과를 거둔 것이다. 


고하쿠우타갓센에서 사이토가 노래부르는 장면. 어깨끈에 란 글자가 선명하다./NHK방송화면 캡처



올해 46세인 사이토는 1992년에 데뷰한 싱어송 라이터로 CM송 등의 작곡으로 두터운 팬들을 확보하고 있으며 반핵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계속 좋아했었다(ずっと好きだった)'라는 자신의 노래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뒤 일본 정부와 '원전마피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가사를 바꿔 불렀다. '계속 거짓말이었다(ずっとウソだった)'는 이 노래가 화제를 모으면서 그는 '반원전' 가수로 널리 알려졌다. 사이토가 후쿠시마에서 열린 어느 콘서트에서 '계속 거짓말이었다'를 열창하는 장면도 유투브 등에서 볼 수 있다. 후쿠시마 현에서 가까운 도치기 현 출신인 그는 1999년 이웃 이바라키현에서 1999년 벌어진 JOC 방사능 임계사고 등을 접하면서 '원전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어느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불퉁한 표정에 무뚝뚝한 성격인 그는 우타갓센 출연이 결정된 뒤 기자회견에서 "(올해 출연하는 바람에) 같은 시간대에 다른 방송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못보게 됐다"는 멘트를 날려 NHK를 긴장시켰다. 그는 코하쿠우타갓센생방송에 나와서도 "(내가 나오게 된 게 방송국의 )착오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나도 이 장면을 봤지만 이런 반핵 이벤트가 벌어진 줄은 이후 올초 발매된 <슈칸분슌(週刊文春>를 보고 뒤늦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