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북한, 일본의 국경과 내셔널리즘에 구애받지 않는 ‘월경인(越境人)’ 육성을 목표로 2008년 설립된 일본 오사카 코리아국제학원이 재정난 등을 이유로 결국 한국학교로 전환하기로 했다. 경계를 넘나드는 세계인을 길러내기 위해 남북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려던 ‘중립교육의 실험’이 기로에 놓인 것이다.
29일 오전 일본 오사카부 이바라키(茨木)시의 코리아국제학원(중·고교)에서는 태극기 게양식이 열렸다. 이날 게양식에는 이 학교 설립자인 재일동포2세 문홍선 (주)아스코홀딩스 회장과 엄창준 교장, 이현주 주 오사카 총영사 등이 참석했다. 태극기 게양식은 이 학교로서는 의미심장한 행사다. 지난해 11월 한국 정부에 재외 한국학교로 승인해달라고 신청한 데 이어 한국학교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게양식을 연 것이다. 2008년 4월6일 설립한 지 약 5년만에 이 학교 교정에 태극기가 올라가게 된 데는 깊은 사연이 있다.
29일 열린 오사카 코리아국제학원의 태극기 게양식/연합뉴스
일본 여자축구의 간판스타인 사와 호마레(澤穗希) 등을 보유한 ‘아이낙 고베’ 구단주이기도 한 문홍선 설립자(사진)는 총련계 조선학교를 나온 뒤 북한과 합영사업을 해오다 환멸을 느끼고 수년전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조선학교를 대체할 수 있는 민족학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수십억원의 사재를 털어 코리아국제학원을 설립했다. 이 학교는 동아시아의 편협한 내셔널리즘을 초월한 국제적 인재를 육성하자는 취지에서 남북한 중립을 표방했다.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였다. 이 학교는 한국 교과서와 민단 교재로 한국사를 가르치지만 독도 영유권 등의 문제에는 일본 교과서도 객관적으로 비교할 기회를 부여한다.
코리아국제학원은 2011년 3월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각종 학교’ 인가를 받아 일본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기존 한국계 학교와 달리 일본 정부의 간섭없이 교육과정을 짤 수 있게 됐다. 중고교 각 학년 정원은 25명의 소수정예로 재일동포와 한국 뿐 아니라 일본 학생들도 입학한다. 2010년도 고교 졸업생 12명은 서울대, 와세다대, 런던예술대 등에 진학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낸 학비 이상의 운영비를 동포사회의 십시일반으로 감당해오다 재정난에 빠져 결국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재외 한국학교 등록신청을 하게 된 것이다.
재일동포 사회는 한국학교로의 전환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국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은 좋지만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자신의 아이덴터티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고 배우는 국제학교로, 국가와 경계를 넘나들며 활약하는 ‘세계인’ 육성을 목표로 한다’는 건학이념이 변질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동포들은 한국정부가 지원을 하되 내셔널리즘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이 학교 졸업생의 부친인 재일동포는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의 검정 교과서로 가르치는 여타 한국계 학교에도 재정지원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코리아국제학원에 대해서도 재정지원을 해주되 건학이념을 살릴 수 있도록 배려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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