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즐길줄 모르면 좌파가 아니고, 하면서 신나게 일하지 않으면 운동이 아니다. 모든 엄숙주의와 모든 '묻지마 일
벌레'들은 결국 위선으로 그 세월을 보답한다.
난 오늘을 희생하며 내일을 기약하는 그 어떤 설교도 믿지 않는다. 천국을 팔고 예수를 팔아 배타적인 좁은 길속에서 사람을 가두는 기독교, 민중을 팔아 개인적 욕구를 폄하하고 집단주의에 사람을 복속시키는 자가당착의 낡은 정치집단을 믿지 않는다.'(이밖에도 무수한 구절이 가슴에 남는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을 지냈던 목수정씨의 책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의 한 대목이다.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을 서점에 갈때마다 함 봐야지 하고 맘먹었는데, 며칠전에야 샀다. 보고 싶었던 책이라 잘 넘어갔다.
한국에서 문화관련 일을 하다 개인적 사건을 겪은 뒤 프랑스로 날아가 파리8대학에서 문화정책을 공부하던 중 프랑스 예술가인 희완 트호뫼흐를 만난다. 그와 결혼하지 않은 채 딸아이 칼리를 낳고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민주노동당에서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정책위원을 지내는 기간 동안 생활과 삶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 동시에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다. 목씨가 경험하고 겪었던 프랑스의 생활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고비였을 뿐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때인 것 같다. 그 찬란함을 엿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의 경이로움, 사회속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들은 상당한 울림을 준다. 페미니즘에 대해 그리 부정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깊이 알지도 못하는 (나같은)이 방면 초심자들에게는 목씨의 생각줄기들이 화두가 될 만하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에 관한 소개다. 동성애자간의 동거, 혹은 결혼을 거부한 채 애만 낳아 기르고 사는 동거 등 결혼이라는 기존질서로는 포괄할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커플관계를 사회적으로 지지해주기 위해 마련된 것이 1999년 도입된 시민연대계약이다. 도입은 이 무렵 됐지만 국회에서 법제화되는데는 난관이 많았던 것 같다.
사회적 논란이 한창이던 무렵 파리시장이자 사회당 국회의원인 베르트랑 들라노에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했다. 그의 용감한 폭로가 이법이 통과되는데 물꼬를 텄다는 것이다. 저자와 프랑스남성인 희완도 이 시민연대계약을 했다. 이 계약을 체결하면 결혼한 것 처럼 세금감면이나 국적 취득 등 제도적 혜택을 프랑스인과 동등하게 누릴 수 있다고 소개돼 있다.
프랑스가 이처럼 진보적(진부한 표현이지만) 가치들을 중시하는 사회로 변모한 것은 68혁명이라고 한다. 그전까지만 해도 드골식 엄숙주의가 지배했다는 설명도 들어있다.
프랑스에 관한 책이라곤 홍세화씨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든가, '프랑스의 노숙자운동'정도의 백짓장이어서 내용전반이 흥미로왔다. 파리에선 왜 사람들이 패션에 민감한 것인지도 책에 답이 나온다. '한국=가부장적 질서'라는 등식이 왜 절대적으로 맞는 것인지도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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