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이번 휴가때 두편 연달아 읽었다. <회랑정살인사건>은 그중 한권. 30대 여자인 주인공이
60대 노파로까지 분장해서 자신과 애인을 해친 범인을 찾아내는 스토리 전개가 꽤 탄탄하다.
하지만 이 책은 추리소설의 본령에서는 약간 비껴나 있다. 막판 반전이 주는 쇼킹함은 평가할만 하지만 반전을 위한 복선이 거의 막판까지 조금이라도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 아쉬움이다. 추리소설은 작가와 독자간의 두뇌게임이라는 말도 있지만, 반전을 위한 도구를 작가가 독점해 버리는 구조가 약간의 실망감을 갖게 한다.
일본 소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일본인들은 복수를 꼭 제손으로 하겠다는 집념이 강한 것 같다. 사법기관에 맡겨놓기엔 원한이 풀리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적당한 흥정과 타협으로 범죄에 대한 단죄가 유야무야 돼버리는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이 작가들에게 짙게 깔려 있는 것인지.
화상을 입은 주인공이 병원을 몰래 빠져나가 바닷가 바위에서 투신자살한 것 처럼 위장한 뒤 돌아오는 장면, 생전에 의지가 됐던 혼마상을 찾아갔더니 벌써 숨진 뒤였고, 그의 시신을 벽장속에 암장하고 시멘트까지 바르는 장면은 일본소설 아니면 보기 힘든 엽기가 아닐까. 오싹오싹하는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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