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전기업 소니가 휴대용 음악 재생기기 ‘워크맨’을 내놓은 것은 1979년. 이미 휴대용 녹음기가 팔리던 시점에서 단순 재생기기를 상품화하겠다고 창업자인 모리다 아키오(盛田昭夫)가 발표하자 사내 직원들은 맹렬히 반발했다. 경영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손바닥만한 크기에 재생기능만 갖추면 헤드폰을 끼고 길거리에서도 스테레오 고음질의 음악을 즐길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었다. 당시만 해도 전용 재생기기는 없었고, 녹음기는 교과서만한 크기여서 휴대하기 불편했다.
워크맨에 대해 창업자를 제외한 임직원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워크맨의 광고·선전 담당자는 단 2명에 예산도 거의 붙지 않았다. 하지만 워크맨에 호기심을 가진 젊은 사원이 자발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워크맨을 허리에 차고 헤드폰을 낀 이 사원이 휴일 전철에 오르자 승객들은 호기심이 일었다. 소니가 무료로 나눠준 워크맨을 허리춤에 낀 연예인들은 걸어다니는 광고탑이었다. 얼마 안가 워크맨은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며 시대를 주도하는 상품이 됐다. ‘시장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교육하는 것’이라는 모리다 창업자의 철학이 적중한 대표적인 사례다.
워크맨 외에도 소니는 가정용 비디오카메라, 비디오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평면 컬러TV ‘베가’ 등 독창성과 기술력이 돋보이는 제품을 속속 내놓았다. 하지만 2000년을 고비로 소니는 시장을 주도하는 제품을 내놓지 못하면서 2011년까지 4년 연속적자를 기록했고, 2012년(회계연도 기준)에도 3분기까지 508억엔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정보기술(IT)분야 저널리스트인 다테이시 야스노리(立石泰則)가 쓴 논픽션 <잘가, 우리들의 소니(さよなら! 僕らのソニㅡ)>(분게이슌주)는 과거 가전왕국 일본에서도 ‘모노즈쿠리’(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 만들기)의 선두에 섰던 소니의 몰락을 진단한 책이다. 2011년 말에 출간됐지만 경영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일독할 가치가 있다.
1994년부터 17년간 취재해온 저자는 소니의 경영진이 바뀌면서 기술과 독창성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히트상품을 내놓지 못하게 됐고, 이런 사풍에 실망한 기술진들이 회사를 빠져나간 점 등을 몰락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가전기업에서 출발했지만 영화제작, 은행·보험업으로 사업분야를 확장하면서 정체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중시하던 회사가 어느날 갑자기 세계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목표로 내거는 식으로 경영 일관성이 사라진 것도 ‘소니다움’을 상실한 원인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예를 들면 도시바가 2004년에 하드디스크 내장형 TV를 처음으로 내놨을 때 제품개발 중이던 소니는 시장성을 살피며 우물쭈물하다 실기하고 만다. 소니가 2003년에 내놓은 네트워크 접속형 PDA는 전화기능만 붙이면 지금의 스마트폰과 다를 것이 없는 혁신적인 제품이었지만, 더 나아가지 못했다. 디지털 시대를 예견하지 못하고 브라운관 공장에 투자를 하는 등의 시대착오적 경영도 소니를 뒤떨어지게 했다.
저자의 진단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들도 있다. 저자는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사장이나 하워드 스트링거 등 소니의 경영자들이 하드웨어와 콘텐츠의 융합을 추진하면서 소니를 더 망가뜨렸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세계적인 IT기업인 애플은 이를 훌륭하게 융합시킨 사례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저자는 책 출간 이후 한 토론회에서 소니가 다각화한 사업을 정리하고 ‘기술의 소니’ 본연의 태도로 돌아갈 것을 강조했다.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서 ‘가전왕국’으로 군림하던 과거 영광을 재현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지만, 냉철한 조언이라기보다는 ‘노스탤지어’가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정보기술 기업의 앞날을 예측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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