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 8

[서평]개혁적 진보의 메아리(경제학자 김기원 유고집)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의 유고집이다. 블로그 등을 통해 틈틈이 쓴 글을 지인들과 후학들이 책으로 냈다. 실제 책을 읽어보면 단순 블로그글이라고 하기엔 아까울 정도로 김교수의 혜안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그는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에 나타나는 타성적 사고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거대기업과 공공부문의 ‘노동귀족’의 문제를 방치할 게 아니라 적극적인 해법을 모색하려는 그의 치열함이 곳곳에 나타나 있다. 책 내용에서 참고할 만한 대목을 그대로 옮겨놓는다. (산별노조 왜 안되나)한국에서도 산업별 노조를 만들려고 오랫동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헛수고입니다. 이미 거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임금격차가 굳어진 상황에서 임금수준을 비슷하게 만드는 산업별노조를 거대기업 노동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지요..

읽은거 본거 2016.12.26

[서의동의 사람·사이]<판도라>박정우 감독 “과장된 허구? 사고 터지면 현실은 그 이상”

핵연료는 늘 찬물에 잠겨있어야 한다. 열을 식히지 않으면 핵반응이 과도하게 진행되면서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멜트다운(melt down)’이 발생한다. 이 때부터 핵은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나 폭주한다. 동일본대지진이 있던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에서는 전원공급이 끊겨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자 곧바로 멜트다운이 시작됐다. 지진으로부터 88시간만에 4개 원자로 중에서 3곳의 건물이 수소폭발을 일으키고 방사성물질이 대량 유출되는 최악의 참사로 이어진다. 도쿄특파원 업무를 시작한지 닷새 뒤 벌어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재임기간 3년간 주된 취재대상이었다. 현지취재를 몇차례 하면서 피폭 걱정이 떠나지 않던 ‘실존’문제이기도 했다. 재난 블록버스터 는 세계최대의 원전밀집 지역인 동남권에서 원전..

사람들 2016.12.26

[서의동의 사람 사이] 박주민 의원(풀버전)

※12월17일자 지면에 실린 기자보다 조금 긴 원문입니다. 박주민은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큼지막한 백팩에 치약·치솔, 물티슈, 휴지 따위를 챙겨 다닌다. 언제 어디서 ‘노숙’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에는 세월호 유족들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사흘, 지난 9월에는 백남기 농민이 누워있던 서울대 병원에서 이틀을 보냈다. 잠이 모자라면 아스팔트, 병원 탁자, 본회의장 가리지 않고 곯아 떨어진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국회표결을 앞두고 국회로비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불펴고 철야하는 사진이 돌자 ‘민주당이 박주민 때문에 거지당이 돼 간다’는 글이 달렸다. 부스스한 머리, 넓은 이마에 선명한 주름살, 약간 졸려 보이는 눈매는 온라인 ‘드립’의 딱 좋은 소재다. ‘노숙자처럼 초췌한 모습, 만성 수면부족..

신문에 쓴 글 2016.12.19

[책]조선에서 보낸 하루

저자인 김향금 선배가 쓴 책. 본다본다 하면서 책장에 꽂아놨다가 오늘 다 봄. 18세기말 한양을 1일투어 하듯 둘러본 역사 기행서다. 가볍고 경쾌한 필체속에 당시 정치체제는 물론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전반의 풍경을 담았다. '내가 조선시대를 이렇게 몰랐던가'라는 자괴감이 드는 책. 듣도보도 못한 옛 어휘들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여기 등장한 어휘만 익혀도 역사소설 읽을때 요긴할 것 같다. 동궐 = 창덕궁과 창경궁을 함께 이르는 말 파루 = 새벽 4시에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33번의 종소리 문루 = 성문위에 지은 다락집 궐내 각사 = 궁궐안에 지은 관청구종 = 관에 속한 노비로 벼슬아치들의 출근을 돕기 위해 아침마다 파견됨초헌 = 외바퀴 수레로 주로 판서급이 타고 다닌다벽제 = 지위가 높은 사람이 지..

읽은거 본거 2016.12.11

[책]특혜와 책임-한국 상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연세대 송복 명예교수는 흔히 보수로 분류돼 있어 그다지 그의 주장에 대해 눈여겨보지는 않았다. 그러다 그의 책 (시루, 2014년)을 보고 다시 보게 됐다. 은 올해 8월에 낸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상층의 '천민성'을 다양한 각도로 지적하고, 상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한국사회가 한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역사적 동력이 된다고 강조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한마디로 '특혜'받는 사람들의 책임이다. 특혜받는 사람들의 책임은 세가지로 나타난다.의 세가지는 '희생'이라는 말 하나로 축약되고 그 희생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첫째 목숨을 바치는 희생이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혹은 심각한 안보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보다 앞장서 '내 목숨'을 내놓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누온 특혜의 대가다. 둘째 ..

읽은거 본거 2016.12.11

우리의 소원은 전쟁

요즘 핫한 소설가 장강명의 장편소설이다. 지난해 를 읽은 뒤 이 작가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가 최근 나온 신작이라고 해서 냉큼 사봤다. 본문만 508페이지의 짧지 않은 분량이지만 술술 읽힌다. 액션영화 같은 속도감이 느껴진다. 줄거리는 김씨체제가 붕괴된 이후 유엔 평화유지군이 진주해 있는 북한 황해도가 주 배경이다. 권력의 공백이 생기고 '자본주의'가 도입되자 돈맛을 알아버린 군부가 마약생산에 나서고 조폭을 기반으로 한 지역 토호들이 마약을 남쪽으로 밀수출한다. 이 과정에서 신천복수대로 불리는 북한의 특수부대 출신 군인, 지역 조폭 사업가, 평화유지군 파견군인, 지역 상인들이 뒤얽혀 배신과 복수의 드라마를 펼치고 있다. 장강명은 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붕괴의 가장 밝고 이상적인 시나리오를 고른 것"이라고 ..

읽은거 본거 2016.12.05

한국인만 모르는 일본과 중국

10년간 세차례에 걸쳐 한국 근무를 경험한 일본 외교관 미치가미 히사시의 한국비판론. 거슬리는 내용이 많지만 새겨들을 대목도 많다. 전체의 톤을 보면 아주 심하게 한국을 디스한 내용이다.근데 사실 그럴만도 하다. 지금의 한국외교는 외교라 할 수 없다. "20세기 후반의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도 일본의 식민지도 아닌 독립된 국가였다. 어엿한 두 국가가 협상 끝에 합의하고 맺은 조약을 '강제된 것'이라고 말하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국가간의 약속도 나중에 돌이켜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강제된 것'이라고 한다는 말인가. 국제 관계에서는 상대가 어느 나라더라도 상대국의 입장, 관련국들의 입장을 감안한다."(100p)"국제사회에서 '역사'란 '민족의 스토리'가 아니다. 이 두가지는 긴장관계에 있다. 단순한..

읽은거 본거 2016.12.05

[아침을 열며]벳푸 온천에서 체감한 일본의 상인정신

일본 오이타현 벳부(別府)에 있는 ‘효탄온천’은 미슐랭가이드가 발행하는 관광가이드 일본판에 2007년부터 5년 연속으로 최고등급인 ‘별3개’를 받았다. 온천이 널린 규슈(九州)지역에서 세계 최고 권위의 여행정보안내서의 ‘별3개’ 인증을 받은 곳은 공공 미술관과 이 온천 뿐이다. 등재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홍보거리이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별3개 표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으쓱했죠. 근데 생각해보니 이게 오히려 손님들의 신뢰를 잃는 독이 될 것 같아 더럭 겁이 났어요.”(고노 준이치 사장) 이런 정도로 ‘별3개’씩이나 받느냐고 욕먹을까봐 홍보 팜플렛에도 넣지 않았다. 일본내 온천수 용출량 1위를 자랑하는 간나와(鐵輪) 지구에 있는 이 온천 입구에는 ‘순간냉각장치’가 전시돼 있..

칼럼 2016.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