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31. 21:4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진원지인 중국 우한 경향신문DB

아시아에 대한 유럽인들의 공포는 기원후 5세기 아틸라가 이끈 훈족의 침략에서 비롯됐지만, 유럽이 세계패권을 틀어쥔 근대 이후에는 서양 주도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색채를 띠어갔다. 19세기 말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주창한 ‘황화론(黃禍論)’은 급부상하는 일본을 견제하고, 유럽의 중국 침략을 뒷받침하는 국제정치적 담론이었다. 
 

2차 세계대전 패전의 충격을 딛고 전후 고도성장을 일군 일본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미국 기업을 사들이던 1980년대 황화론은 다시 등장하며 플라자 합의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1985년 주요 5개국 장관들이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엔화가치를 올리고 달러가치를 떨어뜨리는 데 합의하면서, 일본 경제는 거품처럼 부풀다 꺼져버렸고, 황화론도 다시 잠잠해졌다.
 

황화론은 21세기 들어 중국 공포증, 즉 ‘시노포비아(sinophobia)’에 자리를 내줬다. 아시아 전체에 대한 견제에서 중국에 초점을 맞춘 어휘의 등장은 중국 패권에 대한 서양의 위협감을 대변한다. 서양이 노화하는 동안 굴기한 ‘청년중국’에 대한 시기심도 엿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중국은 일자리를 훔치고, 기술을 빼내기 위해 스파이 짓을 하는 적”이라며 시노포비아를 확산시켰다. 그의 집권 이후 미·중 무역전쟁,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규제 등 미·중 갈등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물론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백도어’(인증되지 않은 사용자에 의해 컴퓨터의 기능이 무단 사용될 수 있도록 설치된 장치) 의혹을 벗지 못하는 등 중국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 서양 민주국가를 전복시키고, 미국이 중국의 식민지가 될 것이다” 같은 미국 정가의 담론들 역시 비이성적이다.
 

중국 우한에서 발현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를 공포에 빠뜨리면서 ‘시노포비아’는 ‘혐중’(嫌中)으로도 의미가 확장됐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서방과 담론·체제 경쟁을 본격화하고 세계 질서를 주도하며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노포비아’라는 적을 쓰러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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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31. 21:38

청소년 환경운동가 툰베리 경향신문DB

지난해 1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25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인류 공동의 과제인 기후대응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체제가 얼마나 무력한 ‘거버넌스(지배구조)’인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 총회의 목표는 2015년 채택된 파리협정을 이행하기 위한 17개 규칙을 완성하는 것이지만, 회기를 이틀 연장하고도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기후대응이 차일피일 늦어지는 가운데 세계 곳곳의 자연은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희생돼가고, 자연은 기후이변으로 복수하고 있다. 세계정부 대신 국가들 간의 연맹체를 만들자는 칸트의 구상은 세계평화는 물론 기후대응에도 무력하기만 하다.
 

그런 점에서 기후 대응을 위한 강력한 주체가 금융계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수백조~수천조원을 굴리는 글로벌 거대 기관투자가들이 환경파괴, 탄소배출 관련 회사에 대한 투자 철회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마드리드 당사국 총회 다음날 골드만삭스는 성명을 내고 기후변화와 환경파괴 우려가 높은 사업에 대해 금융제공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북극유전 개발이나 알래스카 국립야생보호구역 개발 사업,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 등을 투자철회 대상으로 올렸다.  
 

7조달러를 굴리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도 지난 15일 투자대상 기업 최고경영자들에게 보내는 2020년 연례서한에서 “총매출의 25% 이상을 석탄화력 생산·제조 활동에서 벌어들이는 기업의 자산(주식·채권)을 올해 중반까지 매각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움직임은 국부펀드 쪽이 앞서 있다.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열대림을 파괴하는 30여개 팜유회사에 대한 투자를 철회했다.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도 2017년부터 석탄화력발전 회사에 대한 신규투자를 중단했다. 수익성을 추구하는 민간 자산운용사들도 이 대열에 뛰어든 것은 기후가 현실의 리스크가 돼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엔의 기후대응에 대한 실망이 커지면서, 툰베리의 기후파업에 이어 금융회사들이 기업에 혈액(돈)의 공급을 중단하는 파업에 들어갔다. ‘돈주’들의 기후 행동주의가 지구를 구하는 유력한 수단이 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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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31. 21:35

미국의 표적공습으로 살해된 가셈 솔레이마니 경향신문DB

제3차 중동전쟁은 1967년 6월5일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이날 새벽부터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의 비행장을 공습해 이집트 공군전력의 80%를 괴멸시키며 하루 만에 제공권을 장악했다. 지상전에서도 이스라엘군은 파죽지세로 요르단에 있는 예루살렘,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점령했고, 골란고원에서 시리아군을 몰아냈다. 이스라엘로서는 두차례 중동전쟁 이후 아랍국가들의 보복 위협이 상존하는 가운데 “당신을 죽이러 오는 자가 있으니 일어나서 그를 먼저 죽이라”는 히브리 속담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동분쟁의 씨앗을 뿌린 셈이 됐다. 이 선제공격론은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미국 안보전략의 중심에 서게 된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2002년 국가안보전략에서 테러분자들의 위협에는 선제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며,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려는 불량국가들에 대해서도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선제공격을 취할 수 있다고 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은 이를 최초로 적용한 것이다.
 

유엔헌장은 제2조 4항에서 국가 간 무력사용 및 위협금지 원칙을 명시하면서도 제51조에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 개별적 혹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고유한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무력공격’의 범위를 실제 공격을 받았을 때로 한정하지 않고, ‘임박한 위협’을 받았을 때로 넓혀 선제공격까지도 자위권 행사에 포함시키고 있다. 하지만 ‘임박한 위협’에는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소지가 커 대체로 강대국에 유리하게 해석되게 마련이다.
 

미국의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 제거 작전을 둘러싸고 ‘임박한 위협’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미 하원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불러 솔레이마니 암살이 임박한 위협에 대한 자위권 행사에 해당하는지를 따지려 했으나 폼페이오 장관은 출석 요청을 거부했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임박한 위협’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성공한 공격이니 이유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것인가. 어떻게 귀결되건 이번 논란은 국제사회의 ‘자위권 행사’ 원칙이 현실 국제역학 앞에선 ‘허울’에 불과할 뿐임을 재차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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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31. 21:33

호주 산불 현장에서 구조된 코알라 경향신문DB

산불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자연현상이지만 기후변화 탓에 지구가 감내할 범위를 넘어선 재앙이 돼버렸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고 가뭄이 길어지면서 화재가 더 자주, 더 크게 발생하는 것이다. 호주 대륙에서 지난해 9월부터 다섯달째 지속되며 남한의 절반이 넘는 6만㎢를 태운 대형 산불은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기록적 고온이 원인이다.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2년 연속 발생한 대규모 산불도 시베리아 지역의 온난화로 눈이 평소보다 빨리 녹는 바람에 지면이 건조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2011년 보고서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대형 자연화재들이 이산화탄소 대량 배출과 산림 파괴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기후변화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호주 산불 현장에서는 불꽃이 하늘로 치솟는 ‘화염 토네이도’ 현상과 마른 번개가 나타난다. 공기가 고온·건조해지면 상승하면서 회전하는데 이때 주변에 불꽃이 있으면 이를 빨아들이며 시뻘건 불기둥이 만들어진다. 대규모 화재로 발생한 뜨거운 열과 공기가 상승해 형성된 ‘산불 적란운’은 비는 뿌리지 않고 번개만 치면서 다른 곳에 새로 불을 놓는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호주의 하늘 사진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다. 기후재앙으로 인한 아포칼립스(세계의 종말)가 이런 광경일지 모른다. 
 

인간들이야 그나마 덜 다쳤지만, 야생동물의 피해는 치명적이다. 호주에서만 서식하는 코알라는 이번 산불로 8000마리가 죽은 것으로 추정돼 ‘기능적 멸종’ 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코알라는 호주 고유의 유칼립투스 삼림지에서만 서식하며 이 나뭇잎을 주로 먹고 산다. 동작이 느려 산불이 나도 나무에서 자다가 그대로 타죽는 일도 있다고 한다. 
 

기후재앙은 북극의 빙하를 녹이고, 남태평양 섬나라 키리바시와 인도양의 몰디브를 가라앉히고 있다. 폭염과 가뭄, 홍수와 태풍은 매년 극심해지고 있다. 매일 150~200종의 지구 생명체가 멸종(유엔환경계획)되고 있다. 아직도 기후변화라는 추상적인 위험 때문에 현재의 풍요로움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인간들에게 코알라가 경고한다. ‘다음 차례는 인간 당신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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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31. 21:30

평양 미래과학자 거리 경향신문DB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은 “중국 공산당은 법을 통해서 통치해야 한다. 법과 제도는 지도자가 교체된다고 해서 바뀌면 안된다”고 했다. 중국은 수차례 헌법개정을 통해 어떤 조직이나 개인도 헌법과 법률을 초월하는 특권을 갖지 못한다는 법치주의 원칙을 확립했다. 시장경제를 뒷받침하는 민법과 상법도 정비됐다. 중국 공산당이 법치주의를 강화한 이유는 해외투자 유치 때문이기도 하다. 투자자의 재산권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경제성장의 마중물인 외국인 투자유치에 필수적이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법치주의 강화는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이와 유사한 움직임 김정은 시대의 북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 가족농 중심의 포전담당책임제 등 경제개혁 정책을 추진하면서 2014년 기업소법과 농장법을 개정했다. 특히 2014년 개정된 기업소법은 기업에 생산조직권, 노력조절권, 품질관리권, 무역·합영합작권, 재정관리권, 가격제정권·판매권 등을 부여했다. 자본주의 국가의 민간기업과 거의 같은 수준의 경영자율권을 보장한 것이다.
 

시장경제가 확산되고 관련 법들이 정착되면 법률서비스 수요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북한에서 로펌의 등장은 법률서비스 시장이 북한 내에서도 성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11일 로펌 ‘룡남산법률사무소’가 최근 홈페이지를 개설했다면서 “기관, 기업소, 단체들과 개별적 공민 또는 외국법인·외국인의 재산상, 인신상 분쟁과 관련해 민사소송이나 국가중재 및 국제중재 대리 업무를 진행한다”고 업무를 소개했다. 이 중 개별적 공민의 재산상 분쟁과 관련한 민사소송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은 시장경제 발전에 따라 재산권 분쟁사례가 늘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우리나라를, 법이 인민을 지키고 인민이 법을 지키는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 법치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덩샤오핑을 떠올리게 한다. 비핵화 협상, 대북제재 같은 키워드만으로는 북한의 실체를 제대로 ‘검색’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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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31. 21:24

일본 와이드쇼 경향신문DB

일본에서 오전 또는 낮 시간대 TV를 켜면 어느 채널이건 예외 없이 ‘정보프로그램’을 방영한다. 사회자 외에 5명 안팎의 패널이 등장해 뉴스와 예능, 생활정보 등에 대해 제작진이 마련한 리포트를 보고 의견을 주고받는다. 테마가 다양하고 방송시간도 2시간이 넘기 때문에 ‘와이드쇼’로도 불린다. 1964년 일본교육방송이 미국 NBC의 뉴스·정보프로그램 <투데이>를 본떠 만든 <모닝쇼>가 성공을 거두자 다른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와이드쇼는 시청률 확보를 위해 뉴스프로그램과 달리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이야기식으로 연출하며, 전문가 외에 입담 좋은 예능인들도 패널로 출연시킨다. 시청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취재 가이드라인을 일탈하는 일도 심심치 않다. TBS 와이드쇼 제작진이 1989년 10월 옴진리교 비판에 앞장서온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의 취재영상을 옴진리교에 노출시켰다가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족이 신도들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대표적인 폐해로 꼽힌다.  
 

와이드쇼의 가장 큰 문제점은 뉴스의 희화화다. 심각한 사안을 흥미 본위의 만담거리로 만들어 시청자들의 정치의식을 마비시킨다. 일본 미디어비평가들은 국회에서 중대한 법안 등이 다뤄질 때마다 와이드쇼가 연예계 스캔들 등을 떠들썩하게 방영해 유권자들의 눈길을 돌려왔으며, 때로는 정권이 방송사에 그런 주문을 해온 의혹도 있다고 지적한다.
 

와이드쇼는 한·일 갈등 국면에서 혐한 정서를 확산시켰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조국사태’가 한창이던 9~10월 일본 TV들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의혹 보도 건수(878건)가 비슷한 시기 가와이 가쓰유키 일본 법무상의 부정선거 스캔들 보도(181건)의 5배 가까운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4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포럼에서 이홍천 도쿄도시대학 교수는 “일본 법무상의 이름은 기억 못해도 조국 장관 이름을 모르는 일본인이 드물 정도”라고 했다. 이 교수는 “한국 정치와 한국인을 바보 취급하는 보도나 네트우익의 논리를 와이드쇼가 여과 없이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타국에 대한 편견과 증오를 부추기는 와이드쇼를 ‘혐한 증폭기’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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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31. 21:20

복역중인 청주교도소에서 독서하고 있는 고 김대중 대통령 경향신문DB 

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감옥은 대학이었다. 김 대통령은 1980년부터 2년반 동안 수감생활을 했던 청주교도소의 독방을 탐구의 공간으로 활용했다. 러셀의 <서양철학사>, 플라톤의 <국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를 비롯해 철학·신학·정치·경제·역사 등 다방면의 책을 읽었다. 푸시킨·투르게네프·도스토옙스키·톨스토이 등 러시아 문호들의 소설을 탐독했고, <논어> <사기> 등 동양 고전을 섭렵했다. 이 기간 중 이희호 여사가 구해 들여보낸 책만 600여권이다. 이 여사는 프랑스어 공부를 하고 싶다는 김 대통령을 위해 <불란서어 4주간>을 넣어주기도 했다. 영어실력을 결정적으로 다진 시기도 1976년부터 1980년에 걸친 수감·연금생활이었다. “내가 감옥에 있지 않았더라면 어찌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서 감히 영어를 공부했겠는가.”(김대중 자서전)
 

국내 1세대 환경운동가인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1975년 명동성당 사건으로 투옥된 뒤 옥중에서 공해문제를 다룬 일본 서적 250권을 읽고 환경운동을 삶의 목표로 정했다. 작가 장정일은 폭력사건으로 소년원에서 1년6개월을 지내는 동안 책을 접하며 문학에 눈을 떴다. 장정일은 출소 후 펴낸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최연소(25세)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옥중독서가 출소 이후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례들이다. 
 

법무부가 교도소 등 교정시설 수용자에게 우송·차입 방식의 도서 반입을 원칙적으로 불허하기로 했다고 한다. 수용자들은 영치금으로만 책을 살 수 있고, 우편이나 민원실을 통해 들여올 수 있는 책은 학습·종교·법률 서적으로 제한된다. 법무부는 음란서적 등의 반입을 막기 위한 조치로, 유해간행물을 제외한 도서는 대부분 전달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사회단체 간행물 등 비매품이나 중고서적 반입은 어려워지고, 수감자의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교정당국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멀쩡한 책에 ‘유해간행물’ 딱지가 붙어 반입이 불허될 우려도 적지 않다. 불과 몇 년 전 국방부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을 금서로 지정했던 일이 기억에 선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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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31. 21:16

독일 드레스덴 전경 경향신문DB

엘베 강변에 형성된 독일 작센주의 주도(州都) 드레스덴은 옛 동독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힌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츠빙거 궁전을 비롯해 오페라극장인 젬퍼오퍼, 호프 교회와 레지덴츠 궁전 등 다양한 건축물이 황홀한 자태를 뽐낸다. 드레스덴은 이런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극우운동 조직 ‘페기다(서방의 이슬람화에 저항하는 애국적 유럽인들)’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페기다의 시위가 젬퍼오퍼 앞 광장에서 열리는 것도 아이러니다.  
 

극우세력들의 발호가 심상치 않자 급기야 드레스덴 의회가 지난달 말 극우주의를 배격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작센주와 튀링겐주를 비롯한 동독 지역에서는 극우성향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부상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이 지났지만 독일의 동서 간에는 여전히 ‘마음의 장벽’이 건재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통일 이후 동독 지역의 각종 지표들은 현저히 개선됐지만, 동서 간 격차는 여전하다. 동독의 고학력층과 젊은이들은 서독으로 이탈했고, 동독에 남은 이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잃은 채 ‘2등 국민’으로 강등됐다. 서독인 3만~4만명이 동독으로 건너와 은행장, 법원장, 병원장 등 주요 지위를 차지하면서 동독의 엘리트를 밀어냈다. 대학 총장 중 동독 출신은 한명도 없고, 정교수 중에서도 동독 출신은 5%에 불과하다고 한다. 통독 이후 동독체제는 나치 수준으로 ‘악마화’됐고, 동독인들의 삶의 방식은 부정됐다. ‘극우 포퓰리즘’은 이런 상실감과 좌절감을 먹고 자란다. 
 

서독은 1970년대부터 동방정책을 수립해 동독과의 화해·협력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은 1989년 11월9일 여행자유화에 관한 포고령을 발표하던 동독 공산당 간부의 실언으로 촉발됐지만, 동방정책의 결실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30년이 지나도록 후유증이 남은 것은 통일의 완성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웅변한다. 
 

한국 사회의 ‘북한 악마화’는 독일과는 비교불가의 경지다. 탈북민들이 겪는 차별을 생각한다면, 남북의 통일은 독일과는 차원이 다른 후유증을 몰고올 우려가 크다. 올해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그저 ‘그날의 감격’을 되새기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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