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5. 15:41

경향신문DB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한국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8년 2월9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인사들과 함께 비행기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다. 다음날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고,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을 함께 관람하는 등 2박3일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갔다. 고전적인 헤어스타일에 수수한 옷차림의 ‘백두혈통’ 김여정은 방한기간 중 품격 있는 태도로 한국 사회에 깊은 인상을 심었다. 2018년 세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분주히 움직이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내는 모습에 ‘신스틸러’ ‘열일하는 김여정’ 같은 수식이 붙기도 했다.

그런 김여정이 지난 3일 밤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전날 있은 북한군의 방사포 발사훈련이 자위적 차원임을 강조하면서 이에 우려를 표명한 청와대를 거친 어조로 비난했다. F-35A 전투기 등 첨단무기들을 잇따라 들여놓으면서 북한의 무기개발을 비판하는 남측 정부의 태도도 지적했다. “전쟁연습놀이에 그리도 열중하는 사람들이 남의 집 군사훈련을 가타부타하는 것은 적반하장의 극치이다” “몰래몰래 끌어다놓는 첨단전투기들이 우리를 치자는 데 목적이 있겠지 농약이나 뿌리자고 끌어들여 왔겠는가.”

‘화해의 전령사’이던 김여정의 품격 잃은 대남 비판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겁을 먹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는다고 했다” “청와대의 행태가 세 살 난 아이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등 감정을 여과없이 배출했다. 우리가 본 그 김여정이 맞나 싶을 정도다. 다만 그의 담화에는 조금 색다른 면도 있다. 거친 문구 앞에 ‘참으로 미안한 비유이지만’ ‘이 말에 몹시 기분이 상하겠지만’ 같은 전제를 달았고,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이 아닌 것을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 것”이라며 수위조절에 신경 쓴 흔적도 보인다.

남북관계는 거울 앞에 서 있는 사람에 비유된다. “내가 웃으면 거울 속의 상대도 웃고, 내가 주먹을 들면 상대도 주먹을 든다.”(<70년의 대화>(김연철)> 지금의 남북관계는 거울 앞에서 주먹을 쥐고 서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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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5. 15:39

출처 경향신문 DB

서울은 나날이 새로워진다. 이건 찬사가 아니라 비아냥이다. 오래된 거리와 가게를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을 오랜만에 찾은 외국인들이 예전 들렀던 가게를 찾아갔다가 사라져 낙심하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임대료가 턱없이 오르기 때문이다. 철거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노포(老鋪) 냉면집 ‘을지면옥’도 결국 철거될 운명이다. 숱한 근대유산들이 표지석 하나 달랑 남기고 스러졌다. 지대추구라는 불가사리는 600년 도시 서울에 쌓인 ‘세월의 더께’까지 남김없이 먹어 치운다.

저금리하에서 대량으로 풀린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한국 경제의 밑동이 썩어간다. 자발적인 근로의욕과 창의력, 높은 저축열, 모험적인 기업가정신이 넘치던 성장시대의 다이너미즘은 말라붙은 지 오래다. 지금은 어린 학생들조차 ‘강남 건물주’를 꿈꾼다. “‘지대추구 경제’가 현재 대한민국 경제를 설명할 수 있는 적합한 표현이다.”(하승수 <배를 돌려라-대한민국 대전환>) 자영업이나 소규모 창업이 ‘개미지옥’이 돼가고, 청년들이 창살 없는 감옥 같은 방에서 버텨야 하는 것도 턱없는 임대료 탓이다.

임대료 폭등은 유럽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다. 독일 베를린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여년간 임대료가 2배 이상 치솟았다. 시 주민의 85%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이 들고일어나 시 당국을 압박한 결과 향후 5년간 주택 임대료를 동결하는 법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공익을 위해 사유재산권에 제약을 가한 파격적 실험이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한국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영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커지자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낮추는 ‘착한 임대료’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 건물주들이 지난 12일 임대료를 3개월 이상, 10% 이상 내려주겠다며 불을 지핀 것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감염병이 몰고온 뜻하지 않은 기적이다.

운동에 호응해 정부가 임대료 인하분의 절반을 세액공제로 건물주에게 되돌려주는 방안을 내놨다. 그런데 취지는 좋지만 정부 지원이 부유한 건물주에 집중되는 결과를 빚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운동의 취지가 퇴색되지 않고, 세금도 새지 않도록 정교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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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5. 15:33

영화 <GO>의 한 장면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지난해 여성들과의 부적절한 신체접촉으로 구설에 오르자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스트레이트 암 클럽(straight arm club)에 가입하라”고 충고했다. 한쪽 팔을 뻗은 정도로 상대방과 거리를 두라는 의미다. 재일코리안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樹)의 소설 <GO>에서 왕년의 복서였던 아버지는 권투를 배우려는 아들을 걱정하며 말한다. “지금 네 주먹이 그린 원의 크기가 대충 너란 인간의 크기다. 그 원 안에서 꼼짝 않고 앉아서, 손 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에만 손을 내밀고 가만히만 있으면 넌 아무 상처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주먹을 뻗어 그린 반지름 1m의 원이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안전과 존엄을 지킬 수 있는 ‘퍼스널 스페이스’인 셈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이 공간이 제대로 지켜지기는 쉽지 않다.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이용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타인과의 신체접촉이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하철에서 ‘쩍벌남’이라도 만나게 되면 신체접촉도 그렇지만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당했다는 불쾌감이 든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퍼스널 스페이스가 중요해졌다. 바이러스 감염이 비말(飛沫), 즉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튀는 작은 물방울을 통해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퍼스널 스페이스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외출을 줄이고 모임을 꺼린다. 신체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악수 대신 주먹을 댄다.

상황이 한층 심각해지면서 아예 ‘비대면·비접촉’이 트렌드로 되어가고 있다. ‘언택트(untact) 사회’의 도래다. 언택트는 콘택트(접촉) 앞에 부정의 접두어(un)를 붙인 신조어다. 버스 손잡이, 엘리베이터 버튼 등 불특정 다수의 손이 닿는 기물을 꺼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서울 어느 아파트에선 엘리베이터 버튼을 손으로 직접 누르지 않도록 이쑤시개와 비닐장갑을 비치했다고 한다. 한 유통업체는 모든 주문 물량에 대한 ‘비대면 언택트 배송’을 선언했다. 바이러스가 물러간다고 해도, 온라인 쇼핑, 무인점포, 신선식품 택배 배송 같은 언택트 마케팅은 한층 가속화될 것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가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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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5. 15:30

영국에서 벌어진 시위에 등장한 아기트럼프 풍선 출처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하던 지난해 6월 트럼프를 형상화한 6m 크기의 대형 풍선이 런던 국회의사당 상공에 떠올랐다. 알몸에 기저귀를 찬 채 잔뜩 찡그린 ‘아기 트럼프’가 한 손에 휴대전화를 쥔 모습이다. 무릎을 칠 만큼 트럼프의 특징을 잘 잡아낸 ‘베이비 트럼프’ 풍선은 영국은 물론, 미국 내 반(反)트럼프 시위대의 인기 아이템이다.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언행을 유아행동론으로 분석한다. 떼쓰기의 절정기인 ‘미운 두 살(terrible two)’의 행태라는 것이다. “두 살 때는 세상에 대한 인식이 제한돼 이랬다저랬다 하고, 자신의 힘을 착각해 무모한 실험을 하며, 타협과 양보를 할 줄 모르며, 남을 괴롭히고도 억울하다고 주장한다”(워싱턴포스트). 이런 트럼프를 상대해야 하는 미 의회의 고충도 여간하지 않을 것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지난해 6월 트럼프가 관세 부과 위협으로 멕시코와 불법이민 방지 협상을 타결하자 비판 성명을 내고 “위협과 유아적 분노발작(temper tantrum)은 외교 협상의 방법이 아니다”라고 했다. ‘tantrum’은 주로 유아들이 발작적으로 성질을 부리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다. 두 사람의 대립은 지난 4일 트럼프의 국정연설이 열린 미 하원 회의장에서 극적으로 표출됐다. 펠로시 의장이 관례상 악수를 청했으나 트럼프가 무시했고, 펠로시는 연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설문 사본을 북북 찢어버렸다. 펠로시도 심했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그간 얼마나 힘들면 저랬을까’ 하는 동정론도 일었다.

트럼프의 ‘유아적 성벽(性癖)’은 동맹국이건 뭐건 대상을 가리지 않고 발산된다. 한국에 대한 ‘안보 무임승차론’은 대표적인 거짓말이고, 방위비 분담금 50억달러 요구는 전형적인 떼쓰기다. 이번엔 아카데미 영화상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을 걸고넘어졌다. “(한국은) 무역과 관련해 우리를 죽이고 있다. 무역에서 우리를 때리고 빌어먹을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탔다”(21일 라스베이거스 집회 연설). 외국어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온 그에겐 부아가 날 일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트럼프의 발언으로 상처입은 것은 <기생충>이 아니라 미국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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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5. 15:28

영국과 일본은 대륙에 인접한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징 외에도 왕실제도, 차량 좌측통행 등 닮은 것들이 꽤 많다. 1926년 창립된 NHK와, 4년 앞서 개국했다가 1927년 왕실특허를 받고 공영기업이 된 BBC도 운영구조가 흡사하다. BBC NHK는 오랜 기간 공영방송의 대표 격이었지만, 최근에는 둘 다 형편이 썩 좋지 못하다.

영국 정부가 지난 5일 BBC 수입의 근간인 수신료 제도에 대한 재검토에 착수했다. 수신료 미납을 형사처벌하는 현행 제도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조사로, 자칫 수신료 폐지로 이어질 개연성도 있다. 이번 조사가 보리스 존슨이 이끄는 보수당 정권과 BBC 간의 마찰에서 비롯된 정치보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영국인들의 BBC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높다. 왕실, 군대, 의료보험제도와 더불어 영국을 대표하는 존재로 친다. 신뢰의 근간은 공정성과 중립성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된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영국 정부의 문건이 이라크 위협을 과장하는 쪽으로 윤색됐다는 보도로 BBC는 토니 블레어 정부와 전면전을 치러야 했다. 이때도 영국인들은 법관 허튼 경이 이끈 진상조사단이 정권을 편드는 내용으로 작성한 최종보고서 대신 BBC를 더 신뢰했다. 그레그 다이크 전 BBC 사장은 “집권당은 언제든 자신들 노선을 지지해 주도록 압력을 넣었지만 이를 거부해온 게 BBC의 역사”라고 했다. BBC가 이번 위기도 어떻게든 극복하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근거다.

반면, NHK의 위기는 좀 더 심각해 보인다. 아베 신조 총리가 집권 초기부터 NHK수뇌부를 장악한 이후 눈에 띄게 퇴행하고 있다. NHK 회장이 취임 회견에서 “정부가 오른쪽이라고 하는 걸 (NHK가) 왼쪽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모미이 가쓰토 전 회장)고 할 정도다.

NHK는 지난해 7월 한국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에 대해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의 말 한마디에 ‘수출규제’를 ‘수출관리’로 명칭을 바꿨다. 지난 1월 취임한 마에다 데루노부 회장도 친아베 인맥이다. 일본의 코로나19 방역대책이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것과 공영방송 NHK의 퇴행이 전혀 무관하다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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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5. 14:57

 

미 해군  존 C. 스테니스 항공모함(왼쪽)과 영국의 인빈시블급인 일러스트리어스 항공모함. 출처 위키백과 

2차 재난지원금이 선별지급으로 낙착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자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재정상 어려움이 크다면서 한정된 재원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재정 형편은 현실적인 이유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재정지출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세수는 제자리걸음이어서 내년에도 적자살림이다. 허리끈을 조이자는 설명을 이해 못할 건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군비에 뭉텅이로 돈을 쏟아붓는 걸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정부는 지난달 국방중기계획에서 향후 5년간 방위력 개선에 100조원을 포함해 301조원의 국방비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규모도 천문학적이지만, ()항공모함과 극초음속 미사일, 북한 장사정 포탄 요격용 아이언돔 등 타당성과 현실성이 떨어지는 무기 도입에까지 돈을 쓰겠다는 데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항공모함은 원거리 전쟁 때 군용기의 해상 출격기지 노릇을 한다. 미국이 항모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은 태평양·대서양 너머 유라시아에서 작전을 펼치기 위해서다. 한국은 원거리 전쟁을 할 일이 없는 데다 영해 면적도 작다. 한반도의 좁고 길쭉한 지형 자체가 불침항모(不沈航母)’. 갑판 격인 내륙 기지에서 전투기가 출격하면 된다. F-35A의 경우 작전 반경이 1100로 북한뿐 아니라 일본, 중국까지 커버할 수 있다. 일본도 경항모 도입을 추진하니 우리도 하자는 논리는 호소력은 있을지 몰라도 설득력은 약하다. 일본은 센카쿠열도를 포함한 동중국해, 도쿄 남쪽 1700에 있는 오키노도리시마를 포함한 태평양에 걸쳐 영해가 꽤나 넓다.

 

경항모 건조와 함재기 구입에만 1척당 5조원이 들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적의 유도탄 공격에서 항모를 보호하는 이지스함을 비롯해 구축함, 잠수함 등을 갖춰야 한다. 1개 전단을 구성하는 데 적어도 12조원, 운영유지비를 포함하면 30~40조원에 달할 거라는 추정이 나온다. 3면이 바다이니 1척만으로 끝날지도 의문이다. 군은 경항모 도입에 대해 초국가·비군사적 위협을 포함한 전방위 위협에 대응하고 한반도 인근 해역과 해상교통로를 보호하기 위해라고 했다. ‘초국가·비군사적 위협이라는 설명도 모호하지만, ‘해상교통로 보호라면 남중국해 같은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 한국도 발을 들이겠다는 뜻인지 궁금하다. 보수야당조차 과도한 안보수요’(신원식 국민의힘 의원 825일 국방위 질의)라고 할 정도다.

 

북한의 장사정 포탄을 유도탄으로 방어하겠다는 아이언돔 구상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비정규전 부대의 산발적인 로켓탄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이스라엘에서 개발된 무기체계인데, 수백기에 달하는 북한의 장사정포에서 강철비처럼 쏟아지는 포탄을 어떤 한국형 신기술로 막아낼지 의문이다. 더구나 주택 공급을 위해 태릉골프장을 헐어야 할 처지인데 사격통제센터와 탐지레이더, 유도탄 발사대, 통신소 등이 한꺼번에 들어갈 포대 부지를 서울에서 확보할 수 있을까. 음속보다 5배나 빠르다는 극초음속 미사일도 북한 위협 대비용이라면 과잉투자고, 그렇지 않다면 주변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뿐이다. 이런 과잉투자라도 해서 전시작전통제권을 되찾아올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차질이 생기면서 전작권 반환 과제는 차기 정부로 사실상 넘어간 상태다.

 

과도한 군비증강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북한 비핵화를 저해할 수 있다. 신형 무기체계 도입으로 한국은 의도치 않게 미국의 불침항모노릇을 할 공산도 커진다. 반중전선에 발을 들이게 되면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온 외교전략이 차질을 빚게 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청와대가 왜 군비증강의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지 요령부득이다.

 

전쟁 위협을 줄이고 북한과 단계적 군축을 하겠다던 정부의 초심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여의치 않자 ‘5대 군사강국업적쌓기로 방향을 바꾼 것인가. 진보정부가 안보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듣지 않으려 군비증강에 열심이고, 보수야당도 크게 제동을 걸지 않아 군비가 부풀어 오르는 폐단이 이번 정부에서 두드러진다.

 

선별지원을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토록 재정 형편을 우려하는 정부가 군비증강에 한없이 관대한 이 상황이 과연 정상인지는 의문이다. 두뇌(전작권) 없이 덩치만 키워봐야 헛일인데도 대중의 열광에 기대 자주국방신화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열광의 뒤안길에서 스러져가는 민생은 어찌할 건가.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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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5. 14:54

이승만 정부의 토지개혁은 불꽃이 튀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화약통’ ”(미 군정 정치고문 배닝호프) 같던 한국 사회를 진정시켰다. 이승만 대통령은 초대 농림부 장관에 사회주의자 조봉암을 파격 기용했고, 조봉암은 당시 정부가 용인 가능한 가장 급진적인 인물로 토지개혁팀을 구성했다. 농림부의 초안은 지주세력이 중심이던 민국당의 반발로 좌초했지만 이승만은 전국 각지에서 청문회를 개최하는 등 대중동원 선풍을 일으키며 지주들을 압박했고, 개혁은 모처럼 언론과 농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추진됐다.

 

인구의 70%가 농민이고 그중 80%가 소작인이던 당시 남한에서 토지문제는 가장 정치적인 의제였다. 토지개혁이 이승만 정부가 사회에 침투하고 지지를 이끌어내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는 평가(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는 이후 농민은 (한국의) 강력한 안정요소라는 무초 주한 미대사의 보고로 뒷받침된다. 개혁의 완료시점 등은 좀 더 규명이 필요하지만, 민심과 거리가 멀었던 이승만이 토지개혁만큼은 열의를 보이면서 신생 한국은 위기를 넘기고 발전의 토대를 확보했다. 학자들은 1960~70년대 한국 고도성장의 주요 배경으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실현한 토지개혁을 꼽는다. 높은 소작료 부담이 사라지면서 농민들의 삶이 안정됐고, 교육 수준의 향상으로 이어지면서 개천에서 용이 나기시작했다.

 

40년 뒤 노태우 정부가 시도한 토지개혁은 미완에 그쳤다.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으로 시중 자금이 몰리며 땅값이 폭등하자 서민 불만은 임계점으로 치달았다.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으로 기층 세력이 성장한데다 총선 참패로 정국 주도권이 약화된 노태우 정부는 개혁하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난다”(문희갑 당시 경제수석)고 여길 정도로 절박했다. 택지소유상한법,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법 등 토지공개념 3이 만들어졌고,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강제 매각 조치가 발동됐다. 하지만 토지공개념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힘이 빠지더니 노무현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정책으로 일부 계승되는 듯하다 보수정권 들어 폐기됐다. 이후 부동산은 성장률에 민감한 정권의 경기부양 수단으로 동원되면서 불가사리로 자라났다.

 

2020년 한국은 해방 후 지주-소작제가 부활한 듯한 형국이다.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주택가격은 34%가 올랐고, 아파트는 52% 상승했다. 직장인이 20년치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서울에서 가장 싼 아파트조차 살 수 없다. 반면 임대사업자들은 세금특혜까지 받아가며 수백채씩 집을 사들였다. 세입자들은 많게는 수입의 절반 이상을 주거비용으로 내야 하는 소작농신세다. 의욕적으로 창업한 청년들이 임대료에 채어 넘어지니, 학생들이 지주(건물주)를 꿈꾸는 것도 말리기 어렵다. 한때 노동의욕과 창의력, 기업가 정신이 이끌던 한국 자본주의는 건강을 잃었다. 토지모순을 해소하지 못하면 한국 자본주의의 엔진은 꺼져 버릴지 모른다. 코로나19 이후 뉴노멀 시대를 돌파하기 위해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내놨지만, 더 시급한 것은 2차 토지개혁이다. 뒤늦게나마 정부·여당이 부동산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개혁은 좀 더 전복(顚覆)적이고, 전면적이어야 한다.

 

해법들은 이미 나와 있다. 다주택 소유를 규제해 처분토록 하면 공급부족은 간단히 풀린다. 하승수는 “3주택 소유자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내에 처분하게 하고, 이후 국가가 사들이자고 제안한다.(<배를 돌려라-대한민국 대전환>)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국민연금기금에 매각해 마련한 재원으로 다주택자들이 처분한 집을 사들이는 방안도 있다. 이를 장기 공공임대주택으로 돌리면 서민 주거안정도 꾀할 수 있고, 국민연금기금도 월 임대료로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으니 주식투자보다 낫다. 종합부동산세는 전국 토지를 용도 구분 없이 과세하는 국토보유세로 강화하고, 이 세금은 공공임대주택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유력해 보인다.

 

이승만이 조봉암과 손을 잡고 지주세력을 고립시키며 농민 편향의 토지개혁을 밀어붙인 것이나, 노태우가 토지공개념을 강행한 이유는 정권 안위가 컸을 테지만, 그 결과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공헌했다. 그러므로 ()시장적이니 편가르기니 하는 비판은 귀담아듣지 않아도 된다. 보수세력들이 국부(國父)로 숭앙하는 이승만도 토지개혁 당시 반시장적이었고, 편가르기의 귀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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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15. 14:51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장면 출처 조선중앙통신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북한의 불만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 폭파로 이어진 6월의 격동은 남북관계의 흑역사로 남게 됐다. 그 바람에 한국전쟁 70의 현재적 의미를 차분히 성찰할 기회도 사라졌다. 그렇다 해도 지난 한 달간 북한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를 짚어보는 일마저 생략해선 안 된다.

 

 4·27 판문점선언은 21항에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지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한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이는 애초부터 지켜질 가능성이 낮은 거품조항이었다. 반북주의가 뿌리 깊은 한국 사회에서 대북전단 규제는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 이상으로 풀기 힘든 난제이기 때문이다.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가 안 되는 것은 미국 탓이라도 할 수 있지만, 전단 규제는 한국 정부의 역량과 의지, 여론 설득 능력과 직결돼 변명의 여지도 없다. 대북전단은 북한에 대한 극도의 증오와 저주를 담고 있고, 음란비디오 표지에 최고지도자 부인 얼굴을 합성하는 따위의 저속한 지라시도 있다. 규제가 마땅한 헤이트 스피치’(증오표현)의 일종이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허울 아래 보호돼 왔다. 북한에 대해서라면 명예훼손도, 거짓말도 용서되는 반북무죄사회이니 대수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판문점선언 이후 북한은 남측의 이행 여부를 주시했을 것이다. 민간이 하는 일을 규제할 수 있을지 의심하면서도, 남측이 남북화해를 제도화할 의지가 있다면 노력하는 시늉이라도 낼 것으로 기대했을 법하다. 하지만 판문점선언 이후 64일 김여정 담화 이전까지 대북전단이 한국 사회의 주요 현안이 된 적은 없었다. 탈북민단체들은 버젓이 전단을 살포했고, 정부·여당의 입법 노력은 없다시피 했다. 자유북한연합은 지난해에만 11차례 대북전단을 날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년 전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발표돼도 이행되지 못하면 기대를 품었던 분들한테 더 낙심을 줄 것이라고 했는데, 말한 그대로였다.

 

거품은 또 있었다. 남북은 판문점선언 32항에서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했다. 9·19 남북군사합의도에서도 단계적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한 판문점선언을 구현하기 위해 실행 대책들을 협의하기로했다. 군사합의 직후 남북은 접경지역 일대에서 적대 행위를 중단했고, 비무장지대 감시초소를 시범 철수했으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비무장화도 이뤄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2019년 들어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 계획을 내놨고, F-35 스텔스기 등 공격형 첨단무기를 잇따라 들여왔다. 2018년엔 중단한 한·미 연합훈련도 재개했다. 8월 훈련 때는 수복지역에 대한 치안·질서유지’, 즉 북한 점령훈련도 실시됐다. F-35는 레이더에 발각되지 않고 평양 상공까지 침투해 선제타격할 수 있는 무기로 북한의 전투기와 지대공 미사일로는 대응할 수 없다. F-35가 지난해 3월부터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비상이 걸린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 개발로 맞대응했다. 이쯤 되면 우리를 겨냥한 최신 공격형 무기 반입과 미국, 남조선 합동 군사연습은 군사 분야 합의서에 대한 난폭한 위반이며 도전”(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이라는 북한의 비판을 생트집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F-35 도입은 박근혜 정부 때 이뤄진 계약이어서 어쩔 수 없고, 국방비 증액도 전시작전권 전환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정부는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이유가 어찌됐건 군사적 긴장해소와 신뢰구축을 거쳐 단계적 군축으로 나아가자는 합의의 취지와 어긋나는 건 분명하다. 군사적 신뢰구축과 전작권 전환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는 두 마리 토끼. 전작권 전환을 임기 중 달성하려 했다면 남북군사합의를 굳이 할 이유가 없었다.

 

1990년대 이후 남북 간에는 적지 않은 합의들이 도출됐지만 이행된 것은 드물다. ·미관계의 부침에 따른 북한의 태도 변화, 5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한국의 권력구조 등이 장애물일 것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검토해야 할 사안들까지 일단 내놓고 보는 단기 성과주의가 대북정책에서도 작동한 흔적이 엿보인다. 어찌됐건 지금대로라면 판문점선언, 9·19 군사합의도 부도수표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부도 위기에 놓인 합의를 살려내기 위한 실행계획을 짜는 것이다. 남북관계 복원, ·미 대화 중재는 그다음 일이다.

Posted by 서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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