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708

[여적]포털 종합상사(2021.3.4)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한창이던 1974년 일본의 세지마 류조(瀨島龍三·1911~2007) 이토추(伊藤忠)상사 회장이 방한해 이낙선 상공부 장관에게 ‘한국에서의 종합상사 설립에 대한 계획서’를 건넸다. 중소 섬유수출업체 이토추상사를 세계적인 종합상사로 성장시켜 ‘전설의 상사맨’으로 통하는 세지마는 한국이 ‘수출입국(立國)’을 하려면 종합상사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이듬해 정부는 상공부 고시로 종합상사 제도를 도입하고 대우실업, 삼성물산, 쌍용, 국제상사 등 7개사를 지정했다. 한국 종합상사의 역사는 곧 수출의 역사이다. 종합상사들은 정부의 각종 세제·금융 혜택을 받으며 빠르게 수출 주역으로 자리잡았다. 종합상사를 통한 한국의 수출비중은 1999년 51%에 달했다. 전체 수출액의 절반을 종합상사가 책임졌던 것..

여적 2021.05.25

[경향의 눈] ‘헬조선’과 ‘국뽕’을 넘어서려면(2021.2.25)

1980년대 중반의 ‘사회구성체 논쟁’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신식국독자’(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인가, ‘식반’(식민지반봉건사회)인가를 둘러싼 논전이 대학가를 달궜다. 어떤 쪽이건 한국 경제가 대외종속적이고 전근대성을 면치 못하니 변혁이 필요하다는 인식론이었다. 하지만 당시 경제는 1970년대 말 불황과 1980년대 초반 외채위기를 딛고 재도약하던 참이었다. 이론이 미처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경제가 역동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은 민주주의는 후퇴시켰으나 경제 볼륨과 역량을 키우는 데는 소홀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노동은 물론 자본도 통제하는 총력전 방식으로 ‘원시적 축적’을 꾀했다. 박정희식 국가자본주의가 막을 내린 것은 1997년 외환위기다. 김대중은 국제통화..

칼럼 2021.05.25

[여적]‘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2021.2.17)

유럽의 마녀사냥은 15~18세기의 광범위한 기간에 걸쳐 이뤄졌다. 이웃들의 신고로 붙잡힌 마녀들은 특별재판소에서 이단심문관에게 죄를 추궁당하는 과정에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살아남더라도 처형되기 일쑤였다. 마녀를 가리는 기준은 야간 집회인 ‘사바트’에 참가했는지 여부였다. 사바트에서는 악마숭배, 유아살해, 인육섭취 등이 저질러졌다고 당시 사람들은 믿었다. 마녀사냥의 극성기인 1560~1660년대는 종교개혁이 한창이었다. 종교개혁의 거센 도전에 위기감을 느낀 가톨릭 교회는 중세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 마녀재판과 마녀사냥에 매달렸다. 흑사병을 비롯한 감염병, 경제위기 등으로 흐트러진 민심을 다잡는 데 마녀사냥은 안성맞춤의 제의(祭儀)였다. 마녀사냥으로 대표되는 희생양 찾기는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되..

여적 2021.05.25

[여적] 개성공단 폐쇄 5년 '유감'(2021.2.9)

개성공단 가동 초기이던 2006년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 광저우와 선전을 시찰했다. 1979년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후 괄목상대하게 성장한 선전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저개발국의 경제특구는 초기 노동집약적 위탁가공업에서 시작해 기술집약적 산업을 거쳐 하이테크 산업으로 옮겨 가는데 선전이 그 대표 사례다. 선전과 개성은 닮은 점이 많다. 홍콩과 인접한 선전이 초기 화상(華商)자본으로 성장했듯 개성공단도 남한 기업들 투자가 자양분이다. 홍콩에서 관광객들이 버스로 1시간 거리의 선전을 찾는데, 서울 은평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개성도 관광 여건이 그 못지않다. 김정일 위원장이 초기에 북측 노동자들의 급여를 월 50달러만 받겠다고 한 것은 개성공단의 먼 미래를 내다본 결정이었을 것이다. 남북관..

여적 2021.05.25

[경향의 눈]'먹방' 대신 배달을 해보라(2020.1.28)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3일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어묵을 먹었다. 민주당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들이다. 국민의힘 나경원 예비후보는 같은 날 양천구 신월시장에서 호떡을 먹었다. 선거철임을 알리는 정치인들의 ‘먹방’ 사진들이 포털 뉴스난을 장식했다. 그런데 올해 먹방투어는 안 하느니만 못해 보인다. 코로나 시대에 예비후보와 수행원, 기자 수십명이 비좁은 시장통로에 뭉쳐 있는 것부터 우선 거슬린다. ‘국민들은 5명도 못 만나게 하면서 정치인들은 떼로 몰려다니냐’는 기사 댓글들은 틀린 게 없다. 모처럼 시장까지 와놓고 상인들과 제대로 대화하는 것 같지도 않다. 경기가 바닥이니 딱한 사정들을 꽤나 들을 법한데도 동영상을 보면 ‘어묵이 진시황 때 만들어졌다’ 따위의 ‘..

칼럼 2021.05.25

[여적]손정의의 ‘경계넘기’(2021.1.29)

재일동포 기업인 손 마사요시(孫正義·64)는 고교 시절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를 읽고 에도시대 말기의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에 매료됐다. 시코쿠의 하급무사였던 료마는 시대를 뛰어넘는 혜안과 지략으로 일본 근대화의 길을 연 인물이다. 료마가 탈번(脫藩·자신이 속한 제후국을 벗어남)의 결행을 통해 새 시대를 연 것처럼 손 마사요시도 16세의 어린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오름으로써 ‘경계를 넘는’ 인생을 펼쳐갔다. 손 마사요시는 귀국 후 후쿠오카에서 ‘유니슨 월드’라는 컴퓨터 도매회사를 차렸다가 이듬해인 1981년 소프트웨어 도매, 컴퓨터 잡지 출판 등을 하는 소프트뱅크를 창립했다. 소프트뱅크는 1994년 상장 이후 1996년 야후저팬을 인수하며 성장궤도에 올랐다. 2006년에는 영국의..

여적 2021.05.25

[여적]한·일 가교 이수현 20주기(2021.1.22)

일본의 전철망은 촘촘하기로 유명하다. 광역자치단체를 잇는 간선철도부터 짧은 구간을 오가는 ‘마을 전철’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플랫폼 스크린도어 설치는 2010년대 들어서야 본격화됐고, 그 전까지는 사람이 선로에 뛰어들거나 떨어지는 사고가 잦았다. 일본 철도는 정시운행이 잘 지켜지지만, 인명사고가 많은 노선에선 열차가 서서 낭패 보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사고의 절반 이상이 ‘자살’이라는 사정을 고려하면 가볍게 불평할 수만은 없다. 2005년부터 10년간 철도 자살 사건은 6000건에 달했다. 2001년 1월26일 저녁에도 한 취객이 선로에 뛰어들었다. 도쿄 도심을 순환하는 JR야마노테선의 신오쿠보역이다. 플랫폼에 있던 일본인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당시 47세)와 유학생 이수현씨(26세)가 취객을 구..

여적 2021.05.25

[여적]북한 지도자 직함(2021.1.12)

미·중 갈등이 신냉전으로 치닫던 지난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국과 중국 지도자에 대한 호칭 격하(格下)운동이 벌어진 바 있다.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PRC)이나 ‘차이나’ 대신 ‘중국 공산당’으로, 시진핑 국가주석을 ‘주석(president)’이 아니라 ‘총서기(general secretary)’로 부르는 식이다. 총서기는 시진핑 주석이 겸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직함이다. 대중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 운동을 확산시켰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 권위주의 체제를 비판하려는 일종의 ‘색깔공세’였다. 운동은 꽤 조직적이어서 지난해 5월 발간된 백악관의 대중전략 리포트에는 시진핑 주석의 직함이 모두 ‘총서기’로 표기됐다. 미 의회 공화당 의원들은 공문서에서 ..

여적 2021.05.25

[경향의 눈]국가보안법 놔두고 ‘표현의 자유’ 외치나(2020.12.31)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누명을 썼다가 지난 25일 대법원 판결로 7년 만에 무죄가 확정된 홍강철씨는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받은 경험을 묻자 “1주일이 아니라 하루도 버티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가 갇힌 독방은 안에서는 열 수 없는 구조였고, 폐쇄회로(CC)TV가 24시간 감시했다. 구치소에 머물며 검찰에 가서 조사받는 방식과 달리, 생활공간과 조사공간이 동일할 경우 피조사자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한다. 실상이 폭로되면서 조사기간이 단축되고, 독방 수용은 폐지됐다. 국가정보원법 개정으로 대공수사권도 3년 뒤 경찰로 이관된다. 하지만 국정원이 탈북인들을 조사하는 기본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홍씨 변호인인 장경욱 변호사는 “이대로라면 국정원의 간첩 생산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칼럼 2021.05.25

[여적]'깜깜이' 예산 소소위(2020.12.5)

국회가 지난 2일 본회의에서 558조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깜깜이’ 심사와 나눠먹기 증액이 되풀이됐다. 지역구 민원이 집중되는 국토교통위, 농림축산해양위, 산자위 등을 중심으로 증액 요구가 쇄도하면서 상임위 예비심사에서만 정부 예산안보다 9조6000억원이 불어났다. 예결위에서는 예산안 제안설명→전문위원 검토보고→종합정책질의→부별 심사 또는 분과위원회 심사→예산안 조정소위 심사→찬반토론의 순서를 거쳐 예산안을 확정한다. 예결위 의원만 50명에 이르다 보니 본격 심사는 여야 의원 15명으로 구성된 예산안 조정소위가 맡는다. 하지만 심사 막바지 국면이 되면 ‘소(小)소위’로 불리는 비공식 협의체가 등장해 최종 조율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올해에는 정성호 예결위원장과..

여적 2021.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