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영토분쟁에서 역사분쟁으로’ 동북아 긴장 고착화
ㆍ장기집권 발판 마련하자 평화헌법 무력화 ‘본색’
지난해 독도·센카쿠 영유권을 둘러싸고 불거진 동북아의 긴장은 올해 들어 고착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갈등이 영토분쟁에 집중됐다면 올해 갈등은 역사인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 중심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자리 잡고 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베 정권에 한국과 중국은 반발하며 관계 회복을 미루고 있다. 아베 정권은 참의원 선거 승리로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하자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을 가속화하면서 긴장을 키우고 있다.
지난 4~5월에 걸쳐 불거진 ‘역사인식’ 파동은 아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히면서 일단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지만 아베 총리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진정한 반성을 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는 지적이 일본에서도 제기된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가 월간지 ‘세카이(世界)’ 최근호에 기고한 ‘아베 총리에게 있어서의 역사인식 문제’를 보면 아베 총리는 지난 4월22일 국회 답변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시작으로 한 일련의 발언으로 국내외 비판을 받으며 궁지에 몰렸다. 이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수습에 나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혔고, 아베 총리도 5월15일 “담화를 계승해나가겠다”고 답변했지만 핵심 어휘인 ‘식민지 지배’와 ‘침략’은 끝내 입에 올리지 않았다. 와다 교수는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수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베 정권의 이런 역사인식은 ‘탈자학사관(自虐史觀)’을 바탕으로 한다. 아베 총리가 지난 3월12일 태평양전쟁 책임자들을 처벌한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을 “승자의 판단에 의한 단죄”라고 발언한 것은 이들의 본심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아베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이란 낱말을 입에 올리기를 꺼린 것은 일본이 과거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단지 전쟁에 졌기 때문에 죄를 뒤집어쓴 것이라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아베 정권이 목표로 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및 헌법 9조 개정, 무라야마 담화 수정 등은 결국 전쟁에 패배한 대가로 지게 된 ‘전후(戰後)체제의 멍에’를 걷어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베 정권은 참의원 선거 승리로 장기집권의 발판이 마련되자 자위대의 실질적인 군대화를 꾀하기 위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본격 추진하면서 동북아에 새로운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아베 정권에 대해 강경 태도를 풀지 않고 있다. 중국은 아베 총리가 우경화 행보를 지속하면서 중·일 관계를 1972년 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고 보고 있다. 1972년 국교정상화 협상에 참여했던 중국 외교부 퇴직 간부 장페이주(江培柱)는 14일 신화통신 기고문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가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를 서로 거론하지 않기로 하는 ‘센카쿠 유보론’에 합의했다고 증언하면서 일본 정부는 역사와 사실을 돌아보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정경분리를 앞세워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으나 중국은 냉랭한 분위기여서 상당 기간 관계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일본과 협력할 것은 협력하되 원칙 문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기조하에 ‘원칙의 영역’에 속하는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 대응을 펼치고 있다. 반면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과 헌법 개정 등에 대해서는 일단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중립을 지키면서도 한·일 갈등의 장기화에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시드니 사일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담당 보좌관은 지난 1일 “(한·일) 두 나라는 해결해야 할 20세기의 어려운 역사 문제를 갖고 있다”며 “양국은 이런 문제에서 협조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한다면 모두 이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인권 차원에서 일본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지난해 국무부 내부회의에서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라고 불러야 한다며 강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위안부 문제는 2007년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 통과 이후 인권 차원에서 미국 내 유권자들에게도 호소력이 있기 때문에 미·일 동맹 관계의 성역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돼 있다. 하지만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위안부 문제는 인권의 관점에서 일본을 비판하지만, 그럼에도 미국의 동북아 외교에서 미·일 동맹이 갖는 중요성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라고 말했다.
<도쿄 | 서의동·베이징 | 오관철·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지난해 독도·센카쿠 영유권을 둘러싸고 불거진 동북아의 긴장은 올해 들어 고착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갈등이 영토분쟁에 집중됐다면 올해 갈등은 역사인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 중심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자리 잡고 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베 정권에 한국과 중국은 반발하며 관계 회복을 미루고 있다. 아베 정권은 참의원 선거 승리로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하자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을 가속화하면서 긴장을 키우고 있다.
지난 4~5월에 걸쳐 불거진 ‘역사인식’ 파동은 아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히면서 일단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지만 아베 총리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진정한 반성을 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는 지적이 일본에서도 제기된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가 월간지 ‘세카이(世界)’ 최근호에 기고한 ‘아베 총리에게 있어서의 역사인식 문제’를 보면 아베 총리는 지난 4월22일 국회 답변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시작으로 한 일련의 발언으로 국내외 비판을 받으며 궁지에 몰렸다. 이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수습에 나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혔고, 아베 총리도 5월15일 “담화를 계승해나가겠다”고 답변했지만 핵심 어휘인 ‘식민지 지배’와 ‘침략’은 끝내 입에 올리지 않았다. 와다 교수는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수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베 정권의 이런 역사인식은 ‘탈자학사관(自虐史觀)’을 바탕으로 한다. 아베 총리가 지난 3월12일 태평양전쟁 책임자들을 처벌한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을 “승자의 판단에 의한 단죄”라고 발언한 것은 이들의 본심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아베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이란 낱말을 입에 올리기를 꺼린 것은 일본이 과거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단지 전쟁에 졌기 때문에 죄를 뒤집어쓴 것이라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아베 정권이 목표로 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및 헌법 9조 개정, 무라야마 담화 수정 등은 결국 전쟁에 패배한 대가로 지게 된 ‘전후(戰後)체제의 멍에’를 걷어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베 정권은 참의원 선거 승리로 장기집권의 발판이 마련되자 자위대의 실질적인 군대화를 꾀하기 위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본격 추진하면서 동북아에 새로운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아베 정권에 대해 강경 태도를 풀지 않고 있다. 중국은 아베 총리가 우경화 행보를 지속하면서 중·일 관계를 1972년 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고 보고 있다. 1972년 국교정상화 협상에 참여했던 중국 외교부 퇴직 간부 장페이주(江培柱)는 14일 신화통신 기고문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가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를 서로 거론하지 않기로 하는 ‘센카쿠 유보론’에 합의했다고 증언하면서 일본 정부는 역사와 사실을 돌아보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정경분리를 앞세워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으나 중국은 냉랭한 분위기여서 상당 기간 관계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일본과 협력할 것은 협력하되 원칙 문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기조하에 ‘원칙의 영역’에 속하는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 대응을 펼치고 있다. 반면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과 헌법 개정 등에 대해서는 일단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중립을 지키면서도 한·일 갈등의 장기화에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시드니 사일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담당 보좌관은 지난 1일 “(한·일) 두 나라는 해결해야 할 20세기의 어려운 역사 문제를 갖고 있다”며 “양국은 이런 문제에서 협조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한다면 모두 이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인권 차원에서 일본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지난해 국무부 내부회의에서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라고 불러야 한다며 강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위안부 문제는 2007년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 통과 이후 인권 차원에서 미국 내 유권자들에게도 호소력이 있기 때문에 미·일 동맹 관계의 성역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돼 있다. 하지만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위안부 문제는 인권의 관점에서 일본을 비판하지만, 그럼에도 미국의 동북아 외교에서 미·일 동맹이 갖는 중요성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라고 말했다.
<도쿄 | 서의동·베이징 | 오관철·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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