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도 두드려본다’는 속담이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돌다리를 너무 두들겨 다리를 무너뜨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고 한국에 우호적인 아사히신문에서 20년째 한국을 취재하고 있는 하코다 테쓰야(箱田哲也·48.아래 사진) 논설위원은 “박 대통령이 아베 정권에 불안을 느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나치게 신중하다 보니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 대일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코다 논설위원은 1994년부터 국제부와 서울지국(두 차례 10년)에서 한국과 한반도를 담당해온 대표적인 지한파 언론인으로, 지난 3월 서울지국장을 마치고 귀국했다. 지난 16일 도쿄 시내에서 만난 그는 일본 사회의 반한정서와 양국관계에 대한 생각을 가감없이 털어놨다. 최악 상태의 양국관계를 안타까워하는 일본 내 지한파들의 심정이 묻어났다.
-최근 일본 주간지 등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반한’ 기사가 많다. 재특회(재일특권을 용인하지 않는 시민모임)의 혐한 ‘헤이트 스피치’(증오발언)도 횡행한다.
“5년 전만 해도 주간지들이 ‘반한’ 기사를 팔아도 장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귀국해보니 일본에는 ‘재특회 예비군’이 상상 이상으로 많지 않나 걱정될 정도다. 아직은 혐한파가 소수이지만 양국관계가 이 상태로 가면 예비군이 더 늘어나고, 지금의 예비군들이 ‘헤이트 스피치’의 현역이 될 것이다. 혐한파가 늘어날지는 한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이들이 일본사회에서 다수가 될지, 소수로 남아있을지 지금이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그만큼 우경화됐기 때문이라고 보는가.
“정확히는 ‘정치의 우경화’다. 1994년 선거제도가 바뀐 영향이 크다. 과거 중·대 선거구 시절에는 자민당에서도 보수와 진보·리버럴 인사가 동반당선되곤 했지만, 1명만 뽑는 소선거구로 바뀌니 강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주로 당선되면서 정치의 자정기능이 약해졌다. 예전 정치권에는 한국 등에 대한 속죄의식, 일본의 국익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아시아를 중시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으나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
-한국의 대일 태도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이 문제발언을 하기도 하지만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은 어디까지나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담화로, 이는 대한(對韓)정책의 ‘바이블’이다. 아베 신조 총리나 주요 장관이 이를 부정한다면 엄중히 비판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한국에선 대통령, 외교장관 등 외교라인의 핵심인사들이 ‘일본은 사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일본으로서는 ‘함께 만들어온 양국 관계사가 모두 부정된다’는 기분이 들고, 앞으로 한국과 뭔가를 함께 할 수 없게 되는 것 아니냐 생각하게 된다.”
하코다는 식민지 사죄와 반성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나 위안부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가 한국 정부와의 물밑협의를 거쳐 만들어진 것이고, 일본 정부는 이를 계승해 오고 있음을 한국이 평가하지 않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아직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들의 대일정책 실패에 지나치게 신경쓰는 것 아닌가. 그간 한국의 역대정권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 중에서 최소한 한 분야에서는 양국관계를 진전시켜왔다. 잘 안풀린 분야만 말고 발전한 분야도 주목하면 좋겠다.”
지난 8일자 아사히신문 1면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 참가국 기념촬영에서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와 박 대통령이 활짝 웃는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진이 실렸다. 그는 “사진을 보며 ‘이웃나라 정상들은 현안없이도 가볍게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돼야 하는 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사진이 사내에서 화제가 됐다고 소개했다.
“아베 총리와 박 대통령이 만나지 않는 것은 정상으로서의 책임포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본 국민은 아직도 박 대통령에게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아키에 여사를 만날 때 보여준 ‘박근혜 스마일’을 일본 국민에게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하코다 논설위원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간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 당시 양국 정상이 특별한 의제없이 매년 정기적으로 만나는 ‘셔틀회담’에 합의했던 점을 상기시켰다.
“취임 이후 한 번도 안 만났으니 서로 인사하는 기분으로 만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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