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일본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시의 크리넥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일본시리즈 라쿠텐(樂天) 골든이글스 대 요미우리(讀賣) 자이언츠의 7차전 9회초.
전날 시합에서 160구를 던진 라쿠텐의 에이스 다나카 마사히로(田中將大·25)가 피로를 무릅쓰고 또다시 마운드에 오르자 감격한 2만8000여명의 관중들은 일제히 일어나 그의 주제가인 가요 <하나 더>를 합창했다.
TV화면에 비친 관중들의 얼굴은 빗물과 눈물이 뒤섞여 번들거렸고, 빗줄기가 굵어지는 늦은 가을밤임에도 경기장은 열기에 휩싸였다. 올해 리그에서 24승 무패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도호쿠(東北) 연고의 라쿠텐을 리그 1위로 끌어올린 다나카가 일본시리즈 통산 23승에 도전하는 부동의 최강자 자이언츠의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으며 두손을 번쩍 들자 관중들은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을 지르며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2004년 도호쿠 지방을 연고지로 창단한 라쿠텐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8시즌 동안 2009년(2위)을 제외하곤 만년 하위에 머물던 약체팀이었다. 창단 첫 해에는 롯데에게 26-0의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적도 있다. 그런 라쿠텐이 면모를 일신한 계기는 2011년 3월11일 발생해 2만명이 희생된 동일본대지진이었다.
지진으로 홈구장이 파손돼 1개월 뒤에야 돌아온 선수들은 쓰나미로 괴멸된 피해지의 참상을 접하고 ‘이 상황에 야구가 무슨 소용인가’라며 한때 회의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경기에서 이겨 주민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얼마 뒤 홋카이도에서 열린 부흥지원 시합에서 선수회장인 시마 모토히로(嶋基宏·29)는 “야구의 저력, 도호쿠의 저력을 보여주자”고 선언했다.
라쿠텐은 가설주택의 피해주민 6500명을 경기에 초대하고, 피해지를 70회 이상 방문해 주민들을 위로하는 한편 야구교실을 여는 등 지역과 밀착했다. 유니폼에는 ‘힘내라 도호쿠’라는 문장을 새겼다. 이런 노력에 감동하면서 홈구장을 찾는 관중이 불어나 2010년 110만에 그친 관객동원수는 리그 1위로 올라선 올들어 128만명으로 불어났다.
일본대지진(3.11)발생일을 거꾸로 뒤집은 ‘11.3의 우승’은 라쿠텐 팀과 도호쿠 주민들이 이처럼 서로 하나가 돼 일궈낸 기적이었다. 2011년부터 라쿠텐팀을 맡은 호시노 센이치(星野仙一·66) 감독이 승리 직후 인터뷰에서 “대지진으로 고난을 당한 여러분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지난 3년간을 싸워왔다. 팬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고 하자 관중들은 환호했다.
이날 센다이는 물론 도호쿠 전체가 흥분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최종전이 열린 야구장 인근 육상경기장에서 대형모니터로 경기를 지켜본 1만여명의 관중과 센다이, 미나미산리쿠초(南三陸町) 등 피해지의 가설상가에서 함께 TV를 지켜보던 주민들은 ‘도호쿠의 저력을 보여주겠다’던 라쿠텐의 승리에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센다이 가설주택 주민 아사노 가쓰노리(69)씨는 아사히신문 취재에 "부흥으로 가는 길은 험하고 멀지만 모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라쿠텐의 우승은) 그런 곳에 최고의 선물이 됐다"고 말했다.
특파원으로 부임한 뒤 일본의 도호쿠(東北)지방이라 부르는 후쿠시마, 미야기, 이와테 현에 5번을 다녀왔다. 3.11대지진 사흘뒤 신간센 조차 끊겼을 때 렌트카를 빌려 무려 20시간 걸려 센다이에 도착해 4일간 취재했다. 센다이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미나미산리쿠초에 갔을 때 건물잔해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마을을 둘러보며 가슴이 꽉 막혔다. 도쿄에서 출발할 때 날씨가 따뜻해 양복만 걸치고 갔지만 도호쿠는 진눈깨비가 휘날리는 겨울이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마을에서 만난 주민은 얇은 양복차림의 나를 오히려 걱정했다. "그러다 감기든다"고.
이후 6개월뒤 후쿠시마현 고리야마를 다녀왔고, 가을엔 센다이에 다녀왔다. 작년 3월엔 대지진 1년을 맞아 르뽀를 다녀왔다. 현장에서 만난 40대 남성은 실종된 아이 3명을 아직도 찾아다니고 있었다. 눈에 핏발이 선 채로. 올해도 후쿠시마와 미야기, 이와테를 다녀왔다. 도쿄는 이미 대지진을 잊어버린 듯한 분위기지만 그쪽은 2년이 지나도록 부흥은 커녕 복구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 만큼 라쿠텐에 거는 주민들의 기대는 남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도호쿠 비극을 조금이나마 접해봤기 때문에 나도 도호쿠 팬들만큼은 아니지만 라쿠텐의 승리를 염원했다. 어제 저녁 시합은 일본 야구사에 하나의 전설로 남을 것이다. 라쿠텐의 슈퍼에이스 다나카의 역투 때문만이 아니다. 라쿠텐의 분투에서 희망을 보려했던 도호쿠 주민들과 야구팀이 하나로 뭉쳐 일궈낸 승리였기 때문이다.
다나카가 9회초에 등판했을 때 흘러나오던 펑키멍키베이비의 <하나 더(あとひとつ)>를 일제히 일어나 합창하던 팬들의 얼굴은 비와 눈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그 정도의 간절한 마음으로 승리를 염원한 팬들이 또 있을까? 그런 팬들의 성원을 업은 팀도 아마 없을 것 같다. 일본 고교야구 고시엔 응원가로도 유명한 <하나 더>의 가사는 이렇다. ‘앞으로 한방울의 눈물과 한번의 용기로/소원이 이뤄지는, 그런 날이 올거라고/나는 믿었기 때문에, 너도 포기하지 않았고/몇번이고 이 두손을 저 하늘높이’
라쿠텐과 도호쿠 주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어제는 감동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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