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늘

동북아 격랑인데…아베 ‘폭주’ - 일본 총리론 7년4개월 만에 야스쿠니신사 참배

서의동 2013. 12. 26. 15:36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 오전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일본의 현직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은 2006년 8월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 이후 7년4개월 만이다. 한국 정부는 야스쿠니신사를 일본 총리가 참배한 데 대해 강력 비판했다. 한·일, 중·일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11시30분쯤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구단시타(九段下)에 있는 야스쿠니신사에 관용차로 도착한 뒤 본전에 올라 참배했다. 아베 총리는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라는 글귀가 쓰인 꽃을 헌화해 총리 자격으로 참배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참배 뒤 기자들에게 “일본을 위해 귀중한 생명을 희생한 영령에게 존숭의 뜻을 표하고,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에 괴로움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부전(不戰)의 맹세를 했다”면서 “중국, 한국민들 기분을 상하게 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베 정권의 1년을 보고하는 의미에서 정권 출범 1주년이 되는 오늘을 택했다”면서 한국, 중국 정상에게 “(참배 취지를) 직접 설명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 대변인인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외교부 청사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아베 총리가 이웃 나라들과 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범들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데 대해 정부는 개탄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는 잘못된 역사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한·일관계는 물론 동북아시아 안정과 협력을 근본부터 훼손시키는 시대착오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일본 정치 지도자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정부 대변인 명의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앞서 오전 청와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외교·통일·국방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신사 참배에 대한 정부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다. 김규현 외교부 1차관은 구라이 다카시(倉井高志)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대사 대리 자격으로 불러 “이번 참배로 비롯된 모든 책임은 일본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고 강력 항의했다. 


중국 외교부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역사 정의와 인류 양식에 공공연히 도전하는 행위로 강력한 분노를 표시한다”고 비판했고, 청융화 주일 중국대사가 이날 오후 사이키 사무차관을 만나 항의했다. 주일 미국대사관도 이례적으로 공식 성명을 내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이다. 그럼에도 이웃 국가들과의 긴장을 악화시킬 수 있는 조치를 취해 실망했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1차 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 때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못한 것을 ‘통한의 극치’라고 수 차례 밝히는 등 재임 중 참배 의지를 피력해왔다.



아베 2년차 ‘보수본색’…외교 갈등보다 ‘지지층 결집’ 우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전격 참배한 것은 관계 개선의 전망이 서지 않는 한국·중국을 의식하기보다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것이 정권운영에 유리하다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경제살리기에 치중해온 아베 정권이 집권 2년차로 접어들면서 ‘보수본색’을 뚜렷하게 드러낼 것임을 예고하는 메시지로도 풀이된다. 




아베 총리는 “1차 내각(2006~2007년) 당시 야스쿠니 참배를 하지 않은 것이 통한의 극치”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도 집권 1년간 세 차례 주요 절기에 참배를 미루는 등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한국,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는 데다 동북아 갈등을 원치 않는 미국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아베 총리는 취임 이후 줄곧 ‘정상회담의 문은 열려 있다’며 한국, 중국 등에 정상회담을 여러 차례 희망해왔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갈등은 계속 꼬여가고,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강경태도로 정상회담 전망이 전혀 보이지 않자 지지세력이 원하는 야스쿠니 참배를 보류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이날 실린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취임 1년 기념 인터뷰에서 “나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역대 총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며 “모든 총리가 인권을 존중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법의 지배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한국·중국과의 우호를 희망해온 리더들이었다”고 밝혔다. 한국·중국과의 관계 개선과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모순되지 않는다는 새로운 논리를 들어 참배 강행을 예고한 셈이다.

 

미국이 우려는 하겠지만, 지난 1년간 미·일관계를 복원시킨 만큼 반응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도쿄의 외교소식통은 “아베 총리가 취임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가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미국을 지지해왔으며, 미·일간 대표적 현안인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진척을 보인 것도 참배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일본을 방문한 존 케리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지도리가후치(千鳥ヶ淵) 전몰자 묘원을 일부러 참배하는 등 아베 정권의 야스쿠니 참배를 강하게 견제해온 점을 감안하면 아베의 참배는 오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관료들 사이에선 “총리의 참배로 미국에 외면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이번 참배가 아베 정권이 집권 2년차로 접어들면서 보수색깔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낼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특히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 등 안보 과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지지층을 결집해 정치적 동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베 참배 후 문답]


“중국, 한국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려는 의도는 털끝 만큼도 없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6일 오전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마친 뒤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전범을 숭배하는 행위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주변국의) 비판이 있다”면서 이같이 강변했다. 군국주의 망령이 잠든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참배강행이 불러올 중국, 한국의 반발에 개의치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한술 더 떠 “반드시 중국과 한국 지도자에게 (참배의 취지를) 직접 설명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참배 취지에 대해 “일본을 위해 희생된 영령들에 대해 존숭의 염을 표하고, 평화를 기원했다. 두번 다시 전쟁의 참화에 괴로움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부전(不戰)의 맹세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신사 경내에 있는 친레이샤(鎭靈社)를 찾아 외국인을 포함해 전장에서 숨진 모든 희생자들을 위령했다고 덧붙였다. 친레이샤는 외국인을 포함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지 않은 전장에서 숨진 이들을 기리는 곳으로, 이번 참배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전쟁에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행위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어 취임 1년을 맞아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지만 참배가 정치 외교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그런 중에 아베 정권의 1년을 보고하고 두번 다시 사람들이 전쟁의 참화로 괴로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맹세와 결의를 전하기 위해 1년째 되는 날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전쟁에서 숨진 영령의 명복을 빌고, 손을 모으는 것은 세계 리더들의 공통된 자세”라며 중국, 한국의 반발이 부당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한발 나아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등 전후 야스쿠니를 참배한 역대 총리들이 중국, 한국과의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기를 희망해왔다”면서 “일중, 일한관계는 중요하고, 확고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양국 지도자들에게 설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베는 향후 정기적으로 야스쿠니를 참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향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답변을 피하겠다”고 “향후 참배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