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재직 중엔 원전이 가장 안전하고 저렴하다는 전문가들의 말을 믿었지만, 3년 전 원전사고를 겪은 뒤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재임 중의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했기 때문에 ‘탈원전’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2일 오후 도쿄 중심부인 긴자(銀座) 네거리. 미쓰코시 백화점 부근 도로변 유세차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76) 전 총리의 지지연설에 나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72) 전 총리가 마이크를 잡자 인도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박수와 환호로 호응했다.
“처음엔 (가두연설을) 하루이틀하고 그만두려 했지만, 많은 시민들이 발길을 멈추고 뜨거운 성원을 보내와 그만둘 수 없습니다.”
유세 강행군으로 목이 반쯤 잠겼지만 ‘일본 최고의 선동가’라는 명성에 걸맞는 고이즈미의 박력있는 호소에 청중들은 열띤 반응을 보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왼쪽)가 2일 도쿄 시내 긴자에서 열린 도쿄도지사 선거유세에서 ‘탈원전’을 내건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오른쪽)를 지지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도쿄 _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오는 9일 치러지는 도쿄도지사 선거를 1주일 앞두고 열린 이날 휴일유세에서 전·현직 총리가 도쿄 중심가인 긴자에서 정면대결을 펼쳤다. 호소카와 후보의 유세가 열리기 1시간 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지지하는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전 후생노동상의 지지연설에 나섰다.
마스조에의 지원유세에는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대표,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환경상 등 거물들이 총력전을 폈다. 아베 총리는 “결단력과 실행력, 구체성있는 정책으로 도쿄도가 안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 등에 대응할 수 있는 이는 마스조에 후보밖에 없다“며 ”그의 실행력을 활용해 도쿄를 세계 제1의 복지도시로 만들자“고 호소했다.
반면 고이즈미와 호소카와는 ‘탈원전’에 집중했다. 호소카와는 “전후 일본은 원전, 콘크리트, 철도, 플라스틱에 의존해 경제를 발전시켜 왔지만 인구가 줄어드는 앞으로는 물과 녹색, 태양광 등 자연의 힘을 이용해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리유세로만 본다면 호소카와 측이 마스조에 후보를 압도하는 분위기였다. 트위터 등에서는 “청중수가 2배 이상 많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하지만 아베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지니는 이번 선거판세는 아직 여당 지원을 업은 마스조에 후보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탈원전을 희망하는 표가 일본공산당과 사회당이 지지하는 시민변호사 우쓰노미야 겐지(宇都宮健兒)후보와 호소카와 양쪽으로 분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호소카와 연설을 보러 유세장을 찾은 이치노세 기요미(一ノ瀨淸美·57)는 “두 후보가 단일화하지 않는 한 고이즈미 전 총리가 아무리 전폭 지원을 해도 호소카와 후보가 이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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