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쓴 글

김대중 경제정책의 공과

서의동 2009. 8. 20. 18:13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정보기술(IT) 등 신성장 산업의 기반을 다졌으나 과도한 금융시장 개방과 부동산·신용카드 거품(버블)을 방치하는 등 부정적 유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경제를 신자유주의 체제에 진입시켰다는 비판도 있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후보자 신분으로 1997년 11월 말 IMF에 협정의 내용을 충실히 지키겠다는 각서를 쓰는 등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충실한 이행자가 돼야 하는 운명에 놓였다. 이로 인해 지속가능한 경제와 대중의 참여에 의한 균형성장을 핵심으로 하는 그의 ‘대중경제론’을 실현할 기회는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았다.

 김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부실화된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구조조정과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 우리 경제를 이른 시일 내에 정상화시켰다. 2001년 8월 IMF 구제금융 195억달러의 상환을 완료하면서 3년9개월 만에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났다. 
 그의 재임기간 중 거시 경제지표는 성공적으로 관리됐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5년간 906억달러나 늘어났고, 97년 말 204억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액도 1214억달러로 증가했다. 집권 첫 해 마이너스 6.9%였던 경제성장률도 2002년에는 7.2%로 높아졌다. 기업 구조조정으로 재벌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이 강화됐고, 소액주주 권리강화·사외이사제 도입을 통해 투명성도 제고됐다. 

 김 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힌 대로 재임기간 중 IT산업 육성에 주력한 것은 우리 경제가 지식기반경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노사정위원회 도입으로 노동계를 대화상대로 끌어들였고, 분배와 복지를 주요 국정지표로 내세우며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한 것은 IMF관리체제라는 한계 속에서도 그의 경제철학을 접목시킨 사례다. 대북 포용정책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위험)를 안정시켰고, 개성공단 설립 합의로 남북경협이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 것도 업적으로 꼽힌다.

 하지만 내수경기 부양을 위해 단행한 신용카드 규제완화는 카드부실로 이어지며 400만명의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를 양산했고, 부동산 규제완화는 집값 폭등으로 이어졌다. 과도한 금융시장 개방에 따른 후유증, 사회양극화 심화, IT 거품 붕괴 등도 김 전 대통령의 경제운용 실패 사례로 꼽힌다.

 김대중 대통령 시대는 개발독재의 성장지상주의 논리와, 경제자유주의 이념, 복지국가의 개념에 IMF의 신자유주의 체제 개편요구가 서로 치열하게 맞붙던 혼돈의 시대였다.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한국경제의 성장동력도 떨어져가고 있던 시대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혼돈의 과정에서 나름대로 의미있는 모색을 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진보진영이 폄하하는 대로 신자유주의 체제진입의 파일럿 역할만 했다고 매도하기엔 그가 직면해야 했던 한계상황과 그 한계 내에서 해왔던 모색의 과정을 사상시켜 버릴 위험성이 있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이 IMF관리체제라는 한계 속에서도 복지와 분배개념을 경제정책에 도입한 것은 의미있는 시도였다”며 “그의 경제정책을 단순히 신자유주의로 규정짓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