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FTA 도마’에 오른 한국 노동권

서의동 2019. 8. 4. 22:38

2019.01.22  

2007년 7월18일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본부에서 열린 한국과 EU 간의 자유무역협정(FTA) 2차 본협상. 이날 EU 측이 제시한 협상의제 중 상당수는 한국에는 생소한 것들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동물복지’로 축산용 가축들도 도축 전까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양계장에서 닭이 안심하게 쉬도록 횃대를 설치하고, 밀집사육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리적표시제도 새로운 통상의제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샴페인, 보르도, 파르마 등은 유럽의 지리적 명칭이면서 그 자체로 증류주, 와인, 햄을 나타내는 상표인 만큼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보호 대상이라는 것이다. 공항·음식점 등 공공장소에서 음악을 틀 경우 가수 등 저작 인접권자에게 보상금을 주는 공연보상청구권 등도 낯선 통상의제였다. 단일국가인 미국과의 FTA 협상 때와 달리 EU는 경제·문화적 배경이 다른 28개국의 연합체인 만큼 요구조건이 그만큼 다양했던 것이다.

 

한국은 협상 과정에서 동물복지와 지리적표시제를 수용했다. 정부는 FTA 발효 이듬해인 2012년 동물보호법을 개정해 농장동물의 복지수준을 높였고 인도적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농장에 동물복지 인증제도 도입했다. 무역이 재화와 서비스만이 아니라 ‘가치와 철학의 교환’이기도 하다는 점을 FTA가 한국 사회에 환기시킨 셈이다.

 

EU가 당시 제기한 통상의제 중에는 한국이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을 국회 비준하고 노동관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점이 포함돼 있었다. 정부는 이를 약속했으나 2011년 FTA 발효 이후 8년이 다 되도록 이행하지 않고 있다. 급기야 EU 측이 이를 무역분쟁 대상으로 삼았다. “한국이 FTA의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부문에서 이행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EU의 지적에 따라 지난 21일 EU 대표단과 고용노동부 협상단이 참석한 정부 간 협의가 열렸다. EU는 한국의 노동관계법이 해고자·실업자와 특수고용노동자를 ‘근로자’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는 점을 문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EU가 어떤 의도로 문제제기를 했건, 한국의 열악한 노동권 실태가 무역분쟁 대상에까지 오르게 된 것은 부끄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여적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지정학 리스크  (0) 2019.08.04
[여적]수난의 베네수엘라  (0) 2019.08.04
[여적]영국과 유럽  (0) 2019.08.04
[여적]센카쿠와 한·일 레이더 갈등  (0) 2019.08.04
[여적]명태의 귀환  (0) 2019.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