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당신의 계급은 무엇입니까

서의동 2010. 2. 11. 10:46

(한달에 한번씩 쓰는 칼럼인데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한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귀족학교의 학생들은 툭하면 ‘천민’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하녀들이 무릎꿇고 ‘귀족’들의 구두를 닦거나 귀족 자제의 한나절 파티 복장에 1억원을 쓰는 장면도 나온다. 지난해 이 드라마가 별 소란 없이 방영된 것을 두고 내심 놀랐다. 꽃보다 예쁜 남자들의 환상적인 판타지 때문일까. 평등지향성이 강한 국내 시청자들이 ‘오냐 오냐’ 하며 넘어간 것이 신기했다.

어쨌건 <꽃보다 남자>는 알게 모르게 한 가지 메시지를 던져놨다. ‘한국 사회는 계급사회다.’ TV 앞에 앉은 시청자들도 되묻지 않고 받아들였다.

‘계급’(class)이란 주로 물질적·객관적 기반에 입각해 사회구성을 밝히는 개념이다. ‘계층’보다는 층간의 이동 가능성이 많지 않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용어다.

‘계급’은 한국전쟁 이후 금기어였다. 총력안보와 총화단결을 저해하고 적대감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80년대 학술논문에는 ‘계급’이 들어갈 자리에 ‘계층’이 대신 쓰이기도 했다. 고도성장으로 사회이동이 활발해졌고, 중산층의 볼륨도 덩달아 커지던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사회에서 ‘계급’은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2010년. 지난 10여년간 두차례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계급’은 우리 사회에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자가 급증하고 대기업에 밀린 동네 슈퍼들이 간판을 내리면서 계급과 신분을 지칭하는 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학교 안에 세가지 계급이 있다. 싸움 잘하는 일진은 ‘귀족’, 공부 잘하고 돈 많은 ‘양민’, 공부 못하고 소심한 ‘천민’이다. 천민은 귀족·양민의 매점 빵 심부름을 도맡아 ‘빵셔틀’이라고 불린다.” 지난해 가을 학교폭력의 변종인 ‘빵셔틀’이 문제가 됐을 때 인터넷에 떠돌던 글이다. ‘자녀를 서울대에 보내려면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필요하다’는 농담도 2~3대 이상 축적된 재력이 있어야 자녀를 제대로 공부시킬 수 있는 계급사회의 속살을 드러낸다.

이런 계급사회에서 ‘천민’들이 잘 살아보려면? 돈을 많이 벌면 되겠지만 ‘바늘구멍’이다. 결국은 내 계급이 뭔지 깨달은 뒤 같은 계급끼리 힘을 보태는 일이 정답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유럽과 선진국의 노동계급이 자신의 삶을 향상시켰다는 것을 역사는 기록해 왔다.

그러나 한국에선 제약들이 많다. 남북분단과 20년이 넘는 독재체제, 순치된 언론, 지지층과 따로 노는 정당구조가 ‘천민’들로 하여금 다른 삶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임금을 깎고, 기업에 세제 혜택을 줘야 나라경제가 잘 되고 그러면 우리도 잘 살게 된다는 보수언론의 논리에 맞장구치고, 개발되면 제일 먼저 쫓겨날 텐데도 뉴타운 공약을 내건 후보를 찍는 ‘천민’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누가 내 편인지 알고는 있으되 의사표시를 생략하는 이들도 많다. 찍는다고 별 수 있겠느냐는 열패감 탓이다. 이러다 보니 민주당이 어설프게 한나라당을 흉내내며 뉴타운을 들고 나오는 코미디가 전개된다.

‘한국 사회는 계급사회다’. 이렇게 뚜렷하게 선을 긋고 시작하자.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리듯 시야도 맑아질 것이다. 출발점도 확실해지고, 목표도 뚜렷해진다. 삶이 피곤하고 고달플수록 자신의 계급이 뭔지 생각해보자. 내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해줄 집단이 누구인지, 쉽게 가려진다. 매일 아침 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의 계급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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