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국철도와 인천공항의 운명

서의동 2010. 7. 1. 14:07
1997년 영국 런던 서부의 사우스올에서 그레이트 웨스턴 급행열차가 화물열차와 충돌해 7명이 숨졌다. 2년 뒤인 99년 10월 런던 패딩턴역 부근 래드브로크 그로브에서도 열차가 충돌해 31명이 죽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기관사가 위험신호를 무시하고 마주오는 열차의 진로에 들어서다 벌어진 후진국형 사고로, 웬만한 국가들에 다 있는 자동보호장치만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선로 관리를 맡은 민간회사들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투자하려 하지 않았다. 2000년 10월에는 햇필드 근방에서 달리던 열차가 전복됐고, 2002년 5월에는 런던 근교 포스터바 역에서 탈선사고가 발생했다. 이번엔 선로에 발생한 균열을 방치한 것이 원인이다.


96년 철도산업이 민영화된 이후 영국인들에게 철도여행은 공포 그 자체가 돼 버렸다. 요금은 천정부지로 오른 반면 사고 위험은 높아지고 서비스 수준은 최악이었다. “열차편으로 런던에서 노팅엄까지 가는 데 평소 1시간45분 걸리던 것이 9시간 걸렸다. 열차 동력이 끊겨 4시간 연착됐고 선로 유지보수 작업으로 한쪽 노선이 폐쇄됐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신문에 실린 승객들의 증언이다.

민영화된 회사들은 선로나 열차 보수를 위한 투자는 외면하면서도 요금을 올리고 정부 보조금을 받아 챙겼다. 시민 분노를 견디다 못한 영국 정부는 2002년 마침내 열차운행사, 선로유지보수회사, 여객차량 임대회사 등 100여개로 쪼개진 철도산업의 재국유화를 단행했다.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민영화’를 포장해온 이명박 정부가 올 하반기 인천국제공항공사 지분 49%를 매각하는 작업에 시동을 걸 전망이다. 연내 지분 15%를 민간에 팔고 나머지 34%는 단계 매각하겠다는 계획도 이미 공개했다. 정부는 “선진해외공항의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전수받아 인천공항을 세계적인 허브공항으로 육성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매각논리는 4대강 사업만큼이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인천공항은 이미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동북아의 허브공항이다. 국제공항협회가 선정한 최우수서비스 공항에 4차례나 올랐다.

지분 51%를 정부가 보유하는 만큼 공공성 훼손 우려는 기우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그리스 정부가 55%의 지분을 보유한 아테네공항은 독일자본에 지분 45%가 팔린 뒤 시설 사용료가 5배나 뛰었다.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의 공항이용료는 13만원 안팎에 달하지만 서비스가 형편없기로 악명높다. 매쿼리 그룹에 매각된 호주 시드니공항의 장기사용 주차료는 연간 1600만원에 달한다. 정부는 요금 인상을 제한하겠다고 하지만 사적 자본의 영리추구 행위에 대한 규제가 어디 쉬운 일인가.


국제공항협의회에 등록된 공항 중 민영화된 공항이 4%에 불과한 걸 보면 민영화가 세계적인 추세도 아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제공항다운 구색을 갖추고, 국가의 ‘가’급 보안시설이기도 한 인천공항의 지분 매각은 여러 모로 무리가 따른다. 돈되는 부문은 팔되 돈 들어가는 시설관리는 국가가 맡는다는 구상도 이해가 안간다.

어떤 이는 국가의 건전재정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정확충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고소득자 증세도 방법이다.

정권을 쥐고 있는 2년반 기간만을 생각한다면 별 문제가 아니라고 간주할 수 있겠지만 알짜 국가자산의 섣부른 매각은 영국철도에서 보듯 엄청난 후유증을 가져온다. 인천공항 매각을 강행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먹튀 정권’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