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로리타 패션'을 한 사회운동가

서의동 2010. 9. 17. 11:51


ⓒ서의동

아마미야 카린
을 만난 것은 지난달 9일이다.

출장전 메일을 주고받았고, 그가 쓴 책들을 조금 살펴보면서 괴짜가 아닐까 생각했다. 만나자고 한 장소도 도쿄의 매우 비싼 호텔 아서원(일본말로는 가죠엔)이어서 약간 당황했다. 

메구로에 있는 가죠엔은 정말 호화스런 호텔이었다. 
좀 사는 상류층의 자제들이 결혼하는 장소라고 들었는데 비싼 기모노와 혼수품 판매장도 있고, 심지어 1층 화장실에는 잉어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1층 라운지에서의 차값은 아이스커피가 845엔으로 우리돈을 1만2000원 쯤 될라나.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나중에 왜 여기서 하자고 했느냐 물었더니 집이 가까워서라고 한다) 
 


                                                                                                                      ⓒ서의동

아마미야 카린(35). 

일본 작가겸 사회운동가로 당사자운동의 기수로 꼽히는 여성이다. 

그의 복장은 요란하다. 이른바 소녀 취향의 요소를 강조한 '로리타 패션'이다. “존재감이 없고 침묵을 강요당하는 빈곤층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 그는 2006년부터 일본의 20~30대 비정규직을 가리키는 ‘잃어버린 세대’ 들을 대변해 사회 각성을 촉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반빈곤네트워크 부대표와 진보계열 주간지 <주간 금요일>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일본 사회의 고용인식 변화에 대해 “일본 사회가 불안 노동을 ‘자기책임’이 아닌 ‘사회책임’임을 점차 깨달아가기 시작한 것이 긍정적”이라며 “최근 활발해지고 있는 당사자운동도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도쿄 시내에서 그를 만났다.


                                                                                                                아마미야 카린 제공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벌어진 파견근로자 대량해고 사태는 어떻게 해결되고 있나.

“금융위기 이후 인식이 약간 바뀌고 있지만 노동전반에 대한 근본개혁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다만, 정부가 제2의 사회안전망을 만들어 돈을 받으며 취업훈련을 하거나 집없는 사람들에 집세를 빌려주는 것이 변화다. 
자치단체들이 재정지출 증가를 우려해 빈곤층의 생활보호 신청을 받으려 하지 않는 태도에도 변화가 있었다. 위기이후 사람들이 당장 죽지않을 정도의 대책은 만들어진 셈이다.” 

-금융위기 이후 노동계의 노력은 어땠나. 
“그간엔 불안정 노동에 별 관심없던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가 2007년 비정규직센터를 만든 것은 평가할 만 하다. 
하지만 렌고 산하의 일부조직은 파견노동 규제를 반대한다. 젊은 세대들은 렌고에 대해 잘 모르고 기대도 하지 않는다. 나도 2006년 운동하기 전까지 ‘렌고’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간 일본사회에서는 노조가 존재감이 없었고, 렌고도 마찬가지였다.

-당사자 운동이 일본사회에 미친 영향을 평가한다면.
“90년대 버블붕괴 이후 프리터 등이 많이 생겨났지만 이들은 기성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받아왔다. 젊은 실업자들에 대해 ‘자기책임’이라는 논리가 횡행했다. 
그러나 NHK가 2005년 ‘프리터 표류’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한 이후 가혹한 노동현실이 여론화되기 시작했다. 이어 파견근로와 위장도급 문제가 부각되면서 당사자 운동이 본격화됐고 프리터 메이데이 등이 생겨났다. 당사자들이 ‘내가 못나서 그런게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고 깨닫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다. 
하지만 인식만 확산됐을 뿐 운동으로 연결된다는 느낌은 아직 들지 않는다. 2~3년전엔 젊은 빈곤층이 휴지통을 뒤지면 크게 놀랐지만 지금은 ‘이런 시대가 돼버렸구나’하고 이미 익숙해져 버린 느낌이다.” 

-과거 단카이 세대처럼 격렬하게 싸워서 성과를 낼 수 없나. 
“일본 사회는 60~70년대 학생운동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 격렬하게 투쟁해서 성과를 내지도 못하고 적군파 사태처럼 사람들 죽이고 끝났다는 트라우마가 있다. 
그리고 대부분 생활에 쫓기거나, 내가 부족해 이렇게 됐다는 의식이 강하다. 특히 어릴 적부터 ‘남에게 폐끼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아와 소란을 피우는 것이 터부시되는 분위기도 있다.” 


                                                                                               아마미야 카린 제공


-사운드 데모가 위화감을 줄 수 있지 않나.
“맞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축제같은 느낌이다. 도쿄 시부야 등지에서 하면 500명으로 시작해 1000명으로 늘어나곤 한다. 
흥겨워 보이니까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것이다. 무시와 따돌림당하던 이들이 데모에 참석하면서 스스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 것 같다. 사실 이런 식의 데모도 그간 일본 사회에서 없었던 일이다.”

-일본 사회는 어떤 사회라고 생각하나.
“과거 아버지 세대에는 30년쯤 일하면 집한채를 가질 수 있는 사회였다. 노동에 대한 대가가 고르게 지불되는 사회였다. 하지만 90년대 이후에는 일부에게만 보상이 주어지고 나머지는 탈락하는 사회가 됐다.” 

-아마미야씨가 쓴 책에는 비정규직에 대한 회사측의 가혹행위가 만연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직원들을 넘어뜨려서 얼굴을 발로 밟고 하는 가혹행위가 실제로 많이 일어난다. 버블이 꺼지기 전까지는 기업들이 여유가 있어 그런 현상이 드물었지만 최근 들어 그렇지 못하면서 착취구조가 형성되면서 하급직으로 압력이 전달된다.” 

-일본 사회에서 기본소득 논의는 주목받고 있는가. 
“4년전에는 정말 극소수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젊은 층에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당사자 운동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하나.
“프리터나 프레카리아트 운동 등이 조금씩 본격화되면서 200개 이상의 노조가 생겼다. 그동안은 하소연하기 힘든 프리터나 파견노동자들이 상담할 수 있는 창구가 만들어졌다. 
심지어 캬바쿠라 여성들도 노조를 만들어 프리터 노조의 지회로 등록했다. 이 역시 지금까지 일본사회에서 전혀 없었던 현상이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노조가 나서면 어떤 형식으로든 해결되는 경험이 축적되는 것도 성과다.”